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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도에 잠자다 죽어도, 비닐하우스서 살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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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평화-인권-환경 연구자인 황준서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주.

이주노동자와 주거권

2020년 12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영하 20도에 달하는 한파 속에서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이 노동자가 거주하던 공간은 비닐하우스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생을 끝내야 했던 노동자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지만, 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주거공간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외침에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이주’가 우리 사회에서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몇 달전까지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장관 시절 “이민에 따른 갈등 예방과 사회통합 정책을 전담하기 위해” 이민청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같은 당 모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월 100만원 이하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자고 나섰다. 그는 해당 주장에 대한 숱한 비판에도 그것이 저출생과 (‘내국인’)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강변했다.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주민의 수는 점점 증가 추세다.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장기 거주 이주민의 수는 2021년에 비해 12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이주민 중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주거, 이동, 복지 등 삶의 조건을 결정하고 있다. 이기호 연구자는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침해가 지속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2023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주거권에 관한 인권규범

주거권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권리 중 하나로서,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적절한 생활수준이란 주거공간의 물리적인 규모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환경적 측면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을 의미한다.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에 관한 국제규범으로는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하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 규약), 이주노동자협약, 인종차별철폐협약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제정된 주거기본법에 주거권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으며, 외국인도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에서 사업주가 제공해야 할 주거환경(특히 기숙사)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주거권 보장 의무를 담지해야 하는 정부가 사업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주거권을 둘러싼 사업주와 노동자 간 갈등을 유발하고, 방조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주거권 투쟁의 흐름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상황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묘사할 수 있다. 즉, 차별 없이 모두에게 적절한 주거를 보장해야 한다는 국제규범과 국내법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현실은 그 수준에 훨씬 뒤쳐진 상황이 공존하는 중이다.

이기호 연구자는 2004년 고용허가제 이후 2013년까지를 이주노동자 주거문제가 사회적으로 등장한 시기로 본다. 이 시기에는 생산직 인력난 해소를 이유로 1993년에 도입된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가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자, 2004년에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대체되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대우한다는 의의가 있지만, 주거권 보장은 미미했다. 오히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가 증가하고, 숙식비를 임금에서 공제하는 사례들이 증가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2014년부터 2019년 사이에는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 주거권 운동이 조직되었고,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주노동자 주거권 운동을 이끌었던 ‘지구인의 정류장’ 등 단체 활동가들은 주거권 보장을 위한 항의 농성, 담당자 면담, 영상 제작, 사례 발표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였다. 이 운동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이주노동 연구자, 법률가 등 다양한 집단이 결합하면서 주거권 주장을 강화하였고, 이주노동자 보호에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를 움직였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부에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을 설치한 경우는 ‘비주거용 숙소’에서 제외하는 등 실효성 없는 대책을 제시하여 비판을 자초하였다.

2020년에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고용노동부가 문제 삼지 않았던 비닐하우스 내 구조물에서 한파를 버티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이주노동자 주거권 운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적절한 주거환경 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운동의 확산을 계기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에 관한 언론보도가 증가하였고, 정부의 실효성 없는 대책도 조금씩 개선되었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로열호텔 앞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주여성인권센터,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등 여성·노동 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규탄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인간으로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 중심 접근

이기호 연구자가 지적하듯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그 제도의 이름부터 국가와 자본의 관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하겠다는 의도가 짙다. 가뜩이나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은 더욱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은 주거권을 비롯하여 행복추구권, 건강권, 이동의 자유 등 다양한 권리를 주장하며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차별 받을수록 모든 노동자의 처우가 악화된다”는 한 노동운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가장 배제되고 소외된 집단을 외면할수록 모두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삶의 최저기준이 점점 낮아진다는 경고이다.

정부가 당장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노동자의 권리 보장 관점에서 개선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는 작년에 이주노동자의 지역 간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권리를 주장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그 성과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창출하면서 권리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선순환 속에서 언젠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권리 관점에서 이주노동자 보호 제도를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 <소개논문> 이기호. 2023. “이주노동자 주거 문제의 인권적 접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인권연구』 6(2): 189–243.

<다운로드 방법>

링크 클릭→(오른쪽) ‘KCI 원문 내려받기’ 클릭

http://journal.kci.go.kr/jhrs/archive/articleView?artiId=ART00303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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