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개식용금지법’이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거나 도축하면 처벌대상이다. 법 공포 3년 뒤부터 시행한다.
개고기를 안 먹은지 오래 되지만 이런 걸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반대한다. 개는 가족 같아서 먹으면 안된다면, 소, 돼지, 닭 가족 같이 키워서 고기로 팔아먹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국회의원들은 굳이 안 해도 될 일에는 부지런하다. 아무튼 김건희 여사가 주도해 속칭 ‘김건희법’으로 통했으니, 윤석열 대툥령이 확실히 거부권 행사 안할 법 하나 나왔네.
*아래는 작년 9월 15일자에 게재된 “개, 혀?” 암호같은 물음… 여당의원들의 아첨 끝판왕 ‘김건희법’ 제목의 최보식 칼럼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사망 사건 뒤로 거의 한달 간 거리시위가 있었다. 그러다가 경찰의 수배령에 시위지도부들이 잡히지 않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성당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둘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검문검색했다. 지도부들은 체포는 안 됐지만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됐다.
지금은 훨씬 심했지만, 그때도 시위지도부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었다. 매일 아침 이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신문 기사들을 공개 성토했다. 그러면 동조자들에 의해 조롱과 비난이 뒤따랐다. 해당 언론사 기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틀째인가, 내가 “당신들은 지금 기자회견을 하느냐 인민재판을 하느냐. 요즘 세상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라고 따졌다. 이들은 “봐줬더니, 조선일보는 앞으로 회견장에 입장을 불허한다”고 나왔다. 한창 때라 나도 지지 않고 “이런 인민재판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 내가 거부한다”라고 퇴장했다.
타사 기자들은 회의를 갖고는 내 입장을 지지했다. 이들은 “지도부가 이 사안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도 기자회견에 응하지 않겠다”고 전달했다. 그러자 지도부(전교조 소속)가 찾아와 내게 유감이라고 표시했다. 그 뒤 회견장에서 신문사 기사를 성토하는 일이 없어졌다.
싸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드는 것인지, 명동성당으로 도피해온 지도부가 어느 날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겨레신문에게나 해야 할 말을 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명동성당 입구를 경찰이 지키고 있어 한 달 가까이 나가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식료품 등을 반입하는 것도 막혔다. 솔직히 여기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그렇겠구나. 뭘 어떻게 해주면 좋겠나?”
“…보신탕이 먹고 싶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명동성당 앞 골목에 ‘성심옥’이라는 보신탕집이 있었다. 나는 후배기자에게 돈을 줘 보신탕 한 바케쓰를 사갖고 오라고 해서 전달해줬다. 그 뒤 “오랜만에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얼마 뒤 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때 보신탕 값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갔을까.
이처럼 내가 신문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보신탕을 많이 먹었다. 상대와 식사 약속을 잡을 때 “개, 혀?”라고 암호처럼 묻기도 했다. 당신은 개를 먹느냐는 간단 질문이다.
매 끼니를 상식(常食)하는 신문사 선배도 있었다. 얼굴에서는 늘 윤이 났고 눈에는 정기가 돌았다. 그는 “보신탕” 말만 들어도 벌써 침이 꿀꺽 넘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름이 ‘김낭기’였는데, 우리끼리는 “낭구 선배”라고 호칭했다.
취재원들 자리나 신문사 회식에서 ‘보신탕집’으로 의견이 일치되면 상당히 괜찮은 날이었다. 유명 보신탕집은 소고기집이나 일식집보다 더 비싸고 귀했기 때문이다. 같은 세대이고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도 보신탕을 먹지 않았을까 싶다. 별세한 LG 구본무 회장도 여의도에 그분의 단골집이 있는 보신탕 매니어였다.
보신탕을 사내들만의 음식으로 여기겠지만, 그때는 회식 자리에 여기자들도 등심 안심 갈비를 따지듯이 개 부위에 대해 논하곤 했다. 그런 문화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싸리집, 감나무집, 버드나무집 등이 유명했는데, 묘하게도 유명한 집은 다들 ‘나무’ 이름을 상호로 내걸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을 것이다.
나는 20년 전쯤 보신탕을 안 먹게 됐다. 별 이유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됐다. 간혹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먹을 게 많아져서 굳이 개고기까지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라는 싱거운 답을 줬다.
하지만 과거의 내 식성을 기억하는 이들은 있다. 몇 년 전 승진한 후배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상호가 소고기집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보신탕집이었다. 후배들은 “최 선배가 보신탕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잡았다”고 했다. 못 먹는 게 아니고 안 먹었던 거니까, 그날 맛있게 먹었다.
이런 보신탕이 강제로 못 먹게 될 것 같다. 개 식용이 법으로 금지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13일 페이스북에 “우리 당이 ‘개 식용 금지법’ 추진을 안 한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국민의힘은 그런 방침을 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신탕집은 이미 거의 사라졌고 가만히 둬도 다 사라질 판인데 이를 굳이 법까지 만들어 금지시킬 필요가 있을까. 먹는 취향의 문제인데 말이다. 더욱이 법률에다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붙여 ‘김건희법’이라며 떠들어대는 건 아첨의 끝판왕이다.
물론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에 앞장 선 측면이 있다. 지난 4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오찬에서 “정부 임기 내에 개 식용을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게 제 본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지 이틀 만에 태영호 의원은 개 식용 금지를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헌승 의원은 지난달, 안병길 의원은 이달 7일 각각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 법을 ‘김건희법’이라고 명명한 뒤 아예 당론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검토했다. 이렇게 하는 게 가뜩이나 ‘비호감’ 김 여사를 더 코너에 몬다는 사실은 모른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을 무슨 신적 존재로 떠받들며 천재적 아부를 하던 자들이 이제는 대통령 부인에게까지 천재적 아부를 한다”며 “명색이 헌법기관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한심한 작태를 보이니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전체주의’로 퇴보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뭔가 좀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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