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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패티김이 우릴 감동시키는 법 ..”함성 너무 커 가사 잊어버렸다”

최보식의언론 조회수  

토요일 저녁 시간에 KBS2 ‘불후의 명곡’은 미국 뉴욕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공연을 보여줬다. 거기에 드레스 차림의 85세 패티김이 나왔다..   

그녀는 첫곡으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부른 뒤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다. 혹 그녀의 건강 문제인가 했는데, “안타깝게도 난 노래를 열심히 하겠지만 춤추면서 노래하지는 않는다. 미안하다”라고 조크를 던진 것이다. 여유있는 무대 매너였다.

그녀는 두번째 곡 ‘사랑은 생명의 꽃’을 부르다가 도중에 멈췄다. 천번도 더 부른 자기 노래의 가사가 중간에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팬들이 더 안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패티는 노련하게 “함성이 너무 커 가사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방송은 노래 막간에 아버지가 다른 중년의 두 딸과 손녀들 모습을 비쳤다. 

방송을 보는 아내가 “저 나이에는 하이힐 신고 오래 서있는 게 힘들텐데” 라고 중얼거렸는데, 신기하게도 그게 전해졌는지 패티김은 드레스 자락 아래 하이힐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무대에 설 때는 늘 새 신발을 신고 나왔다”고 말했다. “팬들과 만나는 무대는 신성한 곳이랍니다”라는 녹화 장면도 곁들었다.  

전성기 때보다 음역대가 줄고 좀 거칠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최고의 디바였다.

마지막 곡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를 불렀다. 그 노래는 그녀의 인생을 대신 말해쥬고 있다.  ‘마이웨이’를 부르는 동안 그녀는 또 중간에 가사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새로 하기에는 많이 나갔으니 그냥 계속 부르겠습니다”라며 별일 없었다는 듯 이어서 불렀다. 그 장면에서 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13년 전인 2010년 봄 패티김을 인터뷰했다. 최고의 작곡가 박춘석 선생이 별세한 직후였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 제목은 <'박춘석과 길옥윤 사이에서' 가수 패티김>이었다. 당시 기사를 전재한다.

패티김은 절룩거렸다. 6㎝ 굽의 노란 부츠를 신고서. 얼마 전 타계한 작곡가 박춘석(朴椿石)의 추모 프로그램을 찍다가 계단에서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고 했다.

“전 그분을 정말 존경하고 사랑했어요. 그날 아침 7시쯤 박 선생님의 동생 전화를 받는 순간 ‘돌아가셨구나’ 느꼈죠. 눈물이 쏟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위안이 됐어요. 이제 그 고통에서 벗어났구나. 저는 ‘선생님이 빨리 돌아가시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빈소를 지키며 그렇게 서럽게 울던 분이 무슨 말씀이시죠?

“16년 전 선생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댁을 찾았지요. ‘패티 왔어요 선생님’ 하니, 누워서 고개를 돌려 외면했어요. 손을 잡으니 손을 뺐어요. 자존심 강한 선생님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겠지요. 거의 ‘식물’ 상태였어요. 그 뒤로는 곁에서 선생님의 노래를 불러줬어요. 잡은 손을 빼면 다시 끌어다 잡고,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말씀은 못 해도 들을 순 있었으니까요. 돌아서면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돌아가시면 더 편할 텐데’라고.”

―과거에 전 남편인 길옥윤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와는 감정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군요.

“차라리 쓰러졌을 때 그대로 돌아가셨으면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공연하다가도 선생님의 모습이 스치면 감정에 북받쳐 운 적도 있어요. 하지만 길옥윤씨가 돌아가셨을 때(1995년)는 눈물을 안 보이려고 애썼지요. ‘이혼할 때는 언제고 저렇게 슬프게 울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죠. 그분은 불쌍한 입장에 놓여 돌아가셨기 때문에 참 원망스러웠어요. 천부적 재능을 그렇게 탕진했나. 그분과 이혼할 때 ‘당신을 관리할 수 있는 현명한 여자를 만나라. 비록 이혼했지만 우리는 음악적으로 최고의 콤비니까 일년에 한번 앨범을 내자’고 두 가지 부탁했어요. 물론 그렇게 안 됐지요.”

―박춘석 선생과의 인연이 먼저였지요. 처음 어떻게 만났죠?

“제가 미 8군무대(베니김 쇼)에서 활동할 때 ‘노래 잘하고 키 큰 신인가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선생님이 찾아왔어요. 그때 저는 이미 팝송으로 날리고 있었죠. 그 시절(1962년) ‘초우’와 번안곡 ‘파드레’를 줬어요. 저를 통해 자신의 노래가 불러지길 원했지만, 얼마 안 돼 저는 미국으로 떠났어요. 저는 한국에 없는데도 그 노래들은 라디오에서 계속 흘러나왔어요.”

패티김은“나는 항상 무대에서 대중을 만나며 스타는 좀 거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분 사이에는 전혀 이성적인 감정은 없었나요?

“한창 젊은 남자가 싱싱한 여자를 보고 아무 감정이 없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하지만 저는 못 느꼈어요. 박 선생님은 8살이 더 위였거든요. 저는 미국서 돌아와 길옥윤씨와 결혼했고 그 뒤로는 길옥윤씨가 만든 노래만을 불렀으니까요.”

―나이로 치면 길옥윤 선생은 11살 위였지요. 그런데 왜 박춘석 선생이 아니라 길옥윤 선생에 빠졌나요?

“남녀가 연애하고 부부가 되는 데는 인연이 닿아야지요.”

―당초 ‘국제결혼’을 꿈꾸었다고 들었는데,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요?

“저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국제적인 가수가 되겠다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연히 외국남자와 결혼할 걸로 여겼어요. 미국 영화에 나오는 가정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요. 하지만 미국서 살아보니 언어·습관·사고방식 차이를 실감했어요. 점점 된장과 김치찌개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결혼은 그렇고, 연애는요?

“물론 연애는 해봤죠. 나를 만나자는 남자도 많았죠. 크루즈 초청을 받았을 때, 얼마나 꿈 같은 얘기예요. 그런 쪽에 휩쓸리고 술이나 담배, 마리화나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도, 그런 걸 다 거절한 것은 오로지 노래만 생각했기 때문이죠. 미국에 온 것은 훌륭한 가수가 되겠다는 것인데, 연애를 하면 내 노래에 집중 못해요. 많은 걸 금기사항으로 삼고 대단히 절제했어요.”

―그런 분이 미국서 4년간 있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결혼했지요. 길옥윤 선생이 작곡 작사한 ‘4월이 가면’에 넘어갔다면서요?

“전화로 그걸 들려줬어요. 그건 100% 러브레터였죠. 당시 모친이 위독해 일시 귀국했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길옥윤씨도 귀국한 거예요. 그때만 해도 해외에서 활동을 한 가수와 작곡가여서 화제가 됐어요. 매스컴 인터뷰를 할 때면 우리 둘을 같이 불렀어요. 가요계에서는 질시하는 눈도 있었어요. 그러니 둘이서 외톨이가 됐고 공연을 같이하니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색소폰을 부는 모습도 매력적이었죠. 그가 연주와 작곡을 하고 나는 노래하면 최고의 커플이 될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죠.”

― 패티김씨가 길옥윤 선생과 결혼해 그의 노래만 부를 때, 그걸 바라보는 박춘석 선생은 어떠했을까요?

“길옥윤씨와 나의 콤비는 노래마다 히트를 쳤죠. 그러니 어린애가 장난감을 뺏긴 기분, 자기 애인을 뺏긴 기분이었을 겁니다. 예술하는 사람은 자기 하는 일에 대한 욕심이 많고 질투가 많죠. 나중에 알고 보니 길옥윤씨는 다른 작곡가가 내게 보내온 곡(曲)을 다 돌려보냈죠. 박춘석 선생님도 제게 곡을 주고 싶었지만 아마 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길옥윤씨는 내게 자신의 곡만 부르게 했으니까요. 실제 그걸로도 넘쳐났지요.”

1960년대 초 작곡가 박춘석과 함께.

1960년대 초 작곡가 박춘석과 함께.

―박춘석 선생은 완전히 잊혀졌겠군요?

“자꾸 멀어졌죠. 물론 결혼해서도 셋이서 공연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박 선생님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자존심이 세고 내성적이라 표현하진 않았지만. 이런 서운함으로 선생님은 그 뒤 이미자 남진 나훈아의 전통가요 쪽으로 몰두하신 거예요.”

―길옥윤과 박춘석, 두 분의 음악적 재능을 비교하면요?

“두 분 다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고 음악 열정이 강한 분들이니 비교할 수 없어요. 박 선생님은 트로트를 그렇게 많이 작곡한 분이 어떻게 가곡 같은 노래를 만들어요. 정말 천재적인 곡상을 가진 분이세요. ‘섬마을 선생’ ‘기러기 아빠’를 짓다가 ‘가시나무새’ ‘사랑은 생명의 꽃’ 같은 곡이 나와요. 길옥윤씨는 그 전에 작곡을 좀 했지만, 패티김이라는 가수를 만나 ‘작곡가 길옥윤’으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우리는 최고의 궁합이었지요. 나의 가창력,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옥윤씨만큼 더 잘 아는 이는 없었어요. 나와 헤어지고 난 뒤 그런 명곡이 안 나왔어요.”

―그런 음악적 콤비가 왜 이혼(1972년) 했지요?

“음악적으로는 환상의 콤비였지만, 현실 부부로서는 아니었어요. 그는 만취해 늘 업혀 들어오곤 했어요. 별명을 ‘길삿갓’으로 지어줬는데, 여기저기 권하면 먹고 마시고 잠자고 했어요. 그는 하루하루 사는 분이고, 저는 한 달 일 년을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제가 좀 피곤한 사람이에요. 옆길을 안 가려고 하니까요. 서로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랐던 거죠.”

―차라리 결혼을 안 했으면 그와의 관계가 더 좋았을 걸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까?

“결혼하는 순간부터 그런 후회가 있었어요. 그는 결혼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패티김·길옥윤’ 이나 ‘패티김 남편’이라는 말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이혼 후 말년에 일본으로 도피생활을 했죠. 그러다가 병이 났어요. 그분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저도 많이 애썼어요. 이혼한 부부로서가 아니라, 같이 음악을 했던 선배·동지·친구로서 말이죠.”

―길옥윤 선생과 이혼한 뒤 박춘석 선생과 다시 콤비로 합친 거죠?

“선생님은 속으로 ‘내가 패티를 다시 갖게 됐구나’ 하며 반가워했을 겁니다. 자신의 클래식한 곡을 나만큼 소화해주는 가수는 없었으니까요. ‘못 잊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가시나무새’ 등이 모두 70년대 중반 이후에 나왔죠.”

―박춘석 사단에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씨와 비교되곤 하지요.

“우리는 비교할 수 없어요. 나와 너무 다르니까. 외모도 가창력도 성격도 다르니까요. 저는 이미자가 노래를 너무 잘하는 것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하고 싶어요.”

―패티김씨도 트로트를 부르면 잘 부를 수 있죠?

“저는 재즈도 했었고 칸소네, 라틴 노래도 많이 불렀어요. 하지만 트로트는 안 돼요. 노래 창법이 너무 다르니까요. ‘한오백년’이나 ‘칠갑산’ 같은 창(唱) 스타일은 잘 불러요. 제가 고등학교 때 창을 배웠고 콩쿠르에 나가 1등도 했어요. ‘거기에 빠지면 기생 된다’고 아버님이 말려서 국악으로 못 갔어요. 그 뒤 외교관과 스튜어디스가 꿈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쩌다가 가수가 됐죠.”

―그런 창을 하던 분이 팝송 가수로 시작했고, 가장 서구적인 가수가 됐군요.

“팝송을 부르는데 고음에서 창을 하던 식으로 내질렀어요. 영어발음도 좋았죠. 난 가수가 될 운명이었어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지요. 나는 노래를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살아왔어요. 숱한 유혹과 재미, 즐거움을 포기했지요.”

―대중들은 그렇게 안 보는데요.

“외모로는 강하고 화려해 보여 그렇죠. 남들이 안 믿을 정도로 저는 일편단심인 편이에요. 길옥윤씨와의 결혼 생활이 불행했지만, 그 시절 다른 남자들과는 악수 외에 손 한번 안 잡았어요.”

―이혼한 뒤에는요?

“그 뒤로야 내가 ‘테레사 수녀’도 아닌데. 지금 남편과도 35년째 결혼을 유지하고 있어요.”

―현재의 남편(이탈리아인)이 청혼할 때 “당신이 아이를 낳아주면 아이 몸무게 만한 보석을 선물하겠다”고 했다면서요. 이런 프러포즈에 안 넘어갈 수는 없겠지요?

“딸 아이를 낳아 7.5캐럿 사파이어를 받았아요. 그것만으로 넘어간 게 아니에요. 나와 만난 뒤 50일간 매일 100송이 장미를 보냈어요. 남편은 내 팬으로 만난 사람이에요. 부부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저를 위해서 한국에 와서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따로 떨어져 살아요.”

―과거에 “패티김은 용돈 떨어지면 국내에 공연하러 들어온다”는 말도 있었어요.

“가장 치명적이고 기분 나쁘고 불쾌한 게 그런 얘기예요. 저는 한 번도 미국 시민권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한국에 정착한 지가 20년이 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미국에 살면서 한 번씩 들어와 노래 부르는 줄 알아요.”

―도도하고 오만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요?

“타고난 성격도 그렇지만 스스로 관리를 위한 거죠. 스타는 좀 거만해야 하지 않나요. 대중목욕탕에 갈 수 없는 거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면 팬은 실망해요. 나는 항상 무대에서 대중을 만나지 사람이 많은 곳은 피했어요. 무대에선 꽃과 조명, 박수를 받지요. 그러나 숙소로 들어오면 내 혼자예요. 그때 밀려 닥쳐오는 고독, 외로움은 형용할 수 없죠.”

―자신도 모르게 세월이 많이 지났죠. 일흔둘이면?

“노래하는 사람은 나이를 안 먹어요. 9일부터 전국 순회공연을 해요. 무대에 서면 내 나이는 사십대예요. 여전히 힘이 넘쳐나고 열정이 있어요. 좀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멋진 연하의 남자와 불꽃 튀는 연애를 해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요즘 머리색이 하얗게 변했던데?

“50대 초반에 은발이 됐는데 그동안 염색했어요. 특이하게도 완전히 백금색이에요. 패션 잡지에 화보 세 번을 찍었는데, 모두들 섹시하다고 했어요.”

내가 세상에 나기 일년 전부터 무대에 서온 이 멋진 여가수는 덧붙였다.

“혹시 늙어보인다고 할까 봐 걱정했어요.”

최보식의언론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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