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연속 서북도서 인근서 사격…완충구역 등 9·19합의 무력화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북한군이 지난 5일 서해 최북단 서북도서 인근 이북 지역에서 쏜 포탄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7㎞까지 근접했던 것으로 7일 확인됐다.
북측이 5∼7일 사흘 연속으로 서해 NLL 인근에서 포 사격을 한 것은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NLL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 서해 NLL 인근서 해안포·방사포·야포 등 사격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군은 이날 오후 4시께부터 5시 10분께까지 연평도 북방에서 야포와 해안포 등으로 추정되는 포병화기를 동원해 90여발의 사격을 실시했다.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이 서해 NLL 이북 해상 완충구역에 낙하한 것이 우리 군의 감시자산에 포착됐다.
앞서 북한군은 지난 5일 오전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해안포 위주로 200여발 이상의 사격을 실시했다.
북한은 서해 NLL 방향으로 사격을 실시했고, 발사된 포탄은 대부분 해상 완충구역에 낙하했으며, NLL 이북 7㎞까지 근접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사격 및 기동 훈련이 금지된 해상 완충구역에 북한군 포탄이 낙하한 것은 2022년 12월 이후 1년 1개월 만이었다.
이에 대응해 서북도서에 있는 해병부대는 K9 자주포와 전차포 등을 동원해 대응사격을 했다. 우리 군이 발사한 포탄도 서해 완충구역에 낙하했다.
북한군은 전날에도 연평도 북서방 개머리 진지에서 방사포와 야포 위주로 60여발의 사격을 실시했고, 이 중 일부는 서해 NLL 이북 해상 완충구역에 낙하했다.
◇ 북 도발 9·19 합의 무력화…완충구역도 무의미해져
전날 북한군의 사격은 대체로 북한 내륙 방향 혹은 측방으로 실시돼 서해 NLL 방향으로 실시된 5일 사격에 비해 덜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됐고, 우리 군은 대응 사격에 나서지 않았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고, 해상 완충구역으로 사격도 실시해 군사합의에 따른 적대행위 금지구역이 사라지게 됐다”면서 앞으로 북한군의 포탄이 NLL 남쪽으로 넘어오거나 NLL에 근접했을 때만 대응 사격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 북한군이 이날 발사한 포탄도 서해 NLL 이북 해상 완충구역에 낙하했지만, 우리 군은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다.
다른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북한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 계획에 따라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23일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한 이후 ▲ 군사합의로 파괴된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재무장 ▲ 해상 완충구역 내 사격 재개 등 합의 위반 행위를 계속하면서 9·19 군사합의는 무력화됐다는 게 군 당국의 입장이다.
따라서 9·19 군사합의로 중단됐던 서북도서 해상사격도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지난 5일 북한의 서해 완충구역 내 해상사격에 따른 서북도서 해병부대의 대응사격은 2017년 8월 이후 6년 5개월 만에 실시한 해상사격 훈련이었다.
◇ 북, 남측 총선 앞두고 긴장수위 높이려는 의도?
한편, 북한이 새해 들어 서해 NLL 인근에서 포 사격에 나선 것은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군사적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열린 노동당 연말 전원회의 마지막 날 회의에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고 강조하고, 이튿날 주요 지휘관들을 소집한 자리에선 남북 무력 충돌을 기정사실로 하는 등 대남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군의 서해 NLL 인근 포 사격에 대해 “형식 면에서 우리 군의 (새해) 포사격 및 기동훈련에 대한 맞대응 훈련이고, 내용 면으로 보면 9·19 군사합의 파기에 따라 군사적 훈련 복원 의지를 보여주고 우리 군의 대응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 총장은 “시기 면에선 당 전원회의 직후 연초부터 한반도 군사적 문제의 주도권을 북측이 쥐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당 전원회의에서 재확인한 강 대 강, 정면 대결의 실천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북한군이 유사시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 등 서북도서를 점령, 초토화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 것”이라며 “미국이 올해 대선 국면에 들어가 국제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북한이 핵 보유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시 서해 NLL 무력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 군, 북한 서해 NLL 인근 도발에 강력대응 방침
서해 NLL 인근은 제1차 연평해전(1999년), 제2차 연평해전(2002년), 대청해전(2009년),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 11월) 등 북한의 대형 국지도발이 자주 발생한 지역으로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린다.
북한은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군사령관이 쌍방 합의 없이 선포한 해상경계선이라며 NLL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서해 NLL에 대해서는 그 남쪽으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그은 ‘서해 경비계선’이 기준선이라고 주장하며 무력화를 시도해왔다.
군 당국은 북한의 서해 NLL 인근 도발에 강력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합참은 이날 북한군의 포 사격에 대한 입장자료를 내고 “북한의 계속되는 적대행위 중지구역(해상 완충구역) 내 포병사격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로서 엄중 경고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합참은 또한 “우리 군은 총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만반의 군사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적이 도발하면 ‘즉ㆍ강ㆍ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원칙에 따라 압도적이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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