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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유럽의 방산강국들이 동유럽 방산시장의 주도권 잡기 위해 의기투합하면서 K방산이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9월 29일(현지시간)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유럽 방산 업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보도했다. 유럽과 우크라이나간 의향서 체결이나 합작공장 설립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방산강국이 직접적인 무기 지원을 줄이는 대신에 확장되고 있는 방산 시장의 주도권을 미국과 한국에 빼기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 등 전쟁 국가들에 무기를 팔기 위한 행보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시각이다.
예비역 육군 소장인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동유럽에 방산수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한국을 이를 예의 주시하고 견제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서유럽의 방산강국들이 동유럽 방산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의기투합을 통해 한국을 밀어내려 하는 움직임 감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영국이 위상이 하락한 방위산업에 대한 정책 변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영국의 점유율은 2013∼2017년 4.7%(6위)에서 2018∼2022년 3.2%(7위)로 순위가 1단계 하락했다. 점유율도 32% 감소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영국은 우주항공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우위를 추구했지만 일반분야는 국내외에 개방해 경쟁 입찰·구매하는 정책을 추진한 탓이다. 지난 6월에는 BAE Systems이 “영국의 대구경 포신(전차·자주포용) 제조능력이 사라졌다”며 이른 정책 전환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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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최근 영국은 정책에 변화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영국은 노후 AS-90 자주포 32문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면서 2032년까지 최신 자주포 116문(약 1조 2000억 원)을 확보하고자 했다. 한국은 ‘K-9A2’로 경쟁에 참여했다. 지난 3월 영국은 계획을 변경해 자주포 전력의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스웨덴산 ‘아처’(Archer) 14문을 계약했다. 이는 영국의 BAE Systems이 아처의 차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자국 방위산업을 우선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이 나온다.
또 BAE Systems는 우크라이나에 사무소를 열었다. 자국산 105㎜ 견인포(L-119)의 현지 생산에도 합의했다. 스웨덴 소재 자회사에서 생산하는 CV-90 보병전투차도 생산·정비에 대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세계 7위인 항공·우주·전투함정·지휘통제통신 등 첨단 분야에 집중하던 글로벌 방산기업이 재래식 포병·장갑차 등에 관심을 갖고 현지 생산에 뛰어든 것은 떨어진 위상을 되찾으려는 의미심장한 행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방 센터장에 따르면 독일도 방위산업의 위상이 하락한 것을 확인하고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2013∼2017년 6.1%(5위)에서 2018∼2022년 4.2%(5위)였다. 순위 변동은 없지만 점유율이 31% 감소했다. 근본 원인은 국방예산의 감축이다. 엄격한 무기수출 승인절차 도입으로 방위산업 위축에 일조했다. GDP 대비 국방예산 비중은 1980년대 2.4%에서 2010년대 1.2%로 반감했다. 이 때문에 전차 강국의 자존심인 ‘레오파르트(Leopard) 2 전차’의 생산라인은 16분의1로 줄어들었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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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센터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후 독일 정부는 특별방위기금(1000억 유로·약 140조원)을 편성하고 재무장과 방위산업 재건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실제로 전차를 생산하는 KMW의 최고경영자(CEO) 랄프 케첼은 한국 방위산업의 유럽 진출에 대해 노골적인 경계심을 드러낸 바 있다. “유럽이 K-2 전차를 받아들이면 F-35 전투기 사례처럼 유럽 방위산업이 불리한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며 “유럽이 단결해 독일·프랑스가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전차’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레오파르트 2A7 전차의 노르웨이 진출은 독일 방위산업계의 이러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이를 앞서 지난해 8월 독일은 한국에 대한 무기수출 승인 절차를 ‘사전 승인’에서 ‘수출 후 보고’로 완화했다. 겉으로는 한국을 배려하는 것 같지마 순진한 판단이다. 방 센터장은 “근본적인 목적은 전체적인 승인절차를 완화해 방위산업을 재건하는 것이며 한국은 그 일부로 포함되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움직임 덕분에 국제 방산시장에서 프랑스는 영국·독일과 반대로 점유율이 증가 추세다. 2013∼2017년 7.1%(세계 3위)에서 2018∼2022년 11%(3위)로 똑같았다. 순위 변동은 없지만 점유율은 55%나 급증했다.
특히 2021년부터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2위로 급부상 중이다. 러시아의 무기 수출이 경제 제재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에 프랑스가 그 공백을 파고들어서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프랑스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당장 주요 방산 업체의 주식을 정부가 일부 보유하고 있다. 에어버스(Airbus) 11%, 탈레스 그룹(Thales Group) 26%, 네이벌 그룹(Naval Group) 62.5%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영국·독일의 방위산업과 다른 특징이다. 덕분에 냉전 이후 무기체계의 수요가 감소하는 어려운 시기에도 일정 수준의 생산라인을 유지하며 견뎌 낼 수 있었다는 게 군가 전문가들의 평가다.
2023년 9월에 프랑스 국방장관이 방산 업체 관계자 20여명을 대동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기동장비 생산업체 아르쿠스(Arquus)는 우크라이나와 장갑차 생산 공장 설립을 위한 의향서 체결까지 했다. 자주포를 생산하는 넥스터(Nexter)도 현지 합작공장 건설 방안을 모색 중이다. 통상적으로 서방이 무기를 지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국 방위사업 챙기기에 열을 올렸다. 무엇보다 프랑스는 한국의 폴란드 진출을 참고하며 현지생산과 기술이전 지원을 약속하며 무기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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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3년이 한국 방위산업이 유럽시장 성공적 진출과 안착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같은 이유라고 방 센테장은 분석했다.
우선 유럽의 기존 강국들은 한국 방위산업의 급격한 도약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구매한 것은 영국·독일·프랑스 등이 변화한 방위산업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시점에 성사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서방과의 본격적인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임 셈이다. 이를 위한 방 센터장은 K방산의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3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급박한 시기임을 간과해서 안된다고 했다. 최근 유럽 강국들이 방위산업 재건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한국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심화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 상황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한국에게 유리하지 않을 수 있어 적시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3년 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Timing)으로 현지화 전략으로 적극 공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지역적 특성이다. 유럽 방산 강국들은 서유럽 시장에 장벽을 강화하고 동유럽 시장을 되찾고자 의기투합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방위산업은 동유럽에 교두보를 확대해야만 이를 기반으로 서유럽이나 미국까지 진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서유럽 방산 강국들의 우크라이나 진출 속도를 내는 만큼, 한국은 폴란드 2차 이행계약 및 루마니아 진출 등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하면서도 서방과의 협력이다. 에어버스 D&S의 CEO 쉴 호른은 “한국항공우주(KAI)에 FA-50 경공격기의 공동 유럽 진출을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는 영국 자주포 시장에 도전하면서 록히드마틴 UK를 포함한 다수의 현지 업체들과 ‘팀 선더(Team Thunder)’을 구성하기도 했다. 서유럽 방산 업체와 사안별로 경쟁할 수 밖에 없지만 유럽 시장의 안정적 진출을 위해 K방산은 NATO(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결속력 등 긴밀한 협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찌됐든 앞으로 3년이 한국 방위산업의 유럽시장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이륙한 여객기는 안정고도를 향해 상승해야 하고 안정고도 유지를 위해 비행의 안전성과 효율성, 지속성 측면에서 높은 기술력과 보유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방위산업은 안정고도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단계다. 따라서 그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유럽 방산강국의 최근 동향에 보다 진지한 자세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방 센터장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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