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하수도관 누수로 피해…정성스레 키워 수확 기다리다 ‘허탈’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은퇴 후 5년째 아내와 서울 강동구 강일동의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지어온 황선우(64)씨는 지난 가을 정성스레 기른 오이와 상추, 무, 가지 등이 전부 시들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황씨가 전날까지만 해도 잡초를 뽑고 물을 주던 텃밭 주위에 ‘출입 금지’ 띠가 둘러쳐진 건 지난해 10월 6일.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고 저멀리 물에 잠겨버린 밭도 보였다.
도시텃밭을 관리하는 구청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인근 하수도관 누수로 텃밭까지 오수가 흘러들어와 작물이 오염됐으니 텃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도 주지 못해 말라 쪼그라든 오이와 가지, 꽃이 핀 상추만 남겨진 황씨의 구역은 1년 단위로 운영되는 텃밭의 폐장일에 맞춰 지난달 결국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황씨는 “작물을 잘 키워서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건강한 음식을 먹이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10월부터는 누릴 수 없게 됐다”며 “오이부터 차차 수확을 시작할 무렵 사고가 나서 아쉽고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고 말했다.
주부 김모(46)씨도 마찬가지다. 올겨울 김장을 위해 강일동 도시텃밭에서 정성을 쏟아 기른 배추를 전부 못 먹게 되자 맥이 빠져버려 아예 김장을 포기했다.
그는 “큰 애도 학교 끝나고 매일 가서 물을 줬는데 이런 일이 생겨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 중”이라며 “아이들이랑 함께 작물을 심고 풀도 뽑고 농약도 치지 않고 기르면서 아주 뿌듯했는데 이렇게 실망을 줄지는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강동구 규약에 따라 화학비료와 합성농약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도록 해 공이 많이 들어간 터라 주민들의 허탈감은 더욱 크다.
황씨는 “규정에 따라 농사를 지으면 풀이 엄청나게 잘 자라 자주 뽑아내야 하고 벌레도 손수 잡아야 해 상당히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오수가 흘러들어 피해를 본 도시텃밭은 60구획(72㎡)이다. 쪽파와 상추, 오이, 가지 등 일상적으로 밥상에 오르는 채소는 물론 물론 김장을 대비해 배추와 무도 키우던 60가구가 한꺼번에 피해를 본 것이다.
경기 하남시의 하수도관 시설 노후로 누수가 생겨 발생한 사고라는 게 당국 설명이다.
사고 후 석달이 지났지만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민들을 답답하게 하는 요인이다.
사고 한 달 뒤에야 문자 메시지를 통해 피해 보상에 대한 공식 안내를 받았다는 김씨는 “텃밭 폐장일이 지났는데도 여태 아무도 보상을 받은 사람이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남시는 사고 이후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공문을 보내 개별적으로 국가배상 신청을 하도록 안내했다.
이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피해 시민이 관할 지구배상심의회에 신청하고 심의회가 조사를 거쳐 배상 결정을 하면 책임이 있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심의회가 2개월에 한 번씩 열려 시간이 적잖게 걸릴 뿐 아니라 손해에 대한 입증을 피해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제도를 거칠 경우 실제 배상까지는 1년가량이 걸릴 것이란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영조물배상공제(지자체의 시설 관리 하자로 주민 신체나 재물이 훼손돼 배상 책임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가 계약한 손해보험사가 전담해 배상하는 제도)가 이뤄질 경우 조금 더 신속한 배상이 가능하지만, 하수도관에 대해서는 영조물 보험에 들지 않았다는 게 하남시의 설명이다.
하남시 관계자는 “피해자마다 농작물 현황과 피해 규모가 다르다”며 “현재로서는 국가배상 제도로 심의를 받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신청서 작성과 증빙 서류 첨부 등은 (피해자들이) 제출만 하면 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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