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장·용산소방서장 기소 여부, 외부 전문가 위원회서 논의
수심위 권고 따라 기소 여부 결정 전망…이태원 유족 “면죄부 우려”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기소할지를 두고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소집한 데는 인명피해가 컸던 사고 관련 책임자들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고민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그간 수사를 맡은 서울서부지검은 물론 대검찰청 내부에서도 김 청장과 최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특히 이태원 참사와 유사하게 다수 인명 피해를 유발한 사고 책임자들에게 법원이 최근 무죄를 줄지어 선고하면서 신중론에 힘이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참사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는 사고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작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항소심 법원은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던 피고인들이 최선의 방법으로 지휘하지 못했다는 점만으로 업무상 주의를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없다”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 역시 이 판단에 동의했다.
3명이 숨진 2020년 7월 부산 초량지하차도 침수 사고 때도 비슷했다.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시 재난대응과장, 동구 부구청장, 동구 담당 계장 등 4명은 작년 10월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검찰은 작년 7월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서도 수사본부를 구성해 수개월간 대대적 수사를 벌였으나 법원은 “피의자가 부담하는 주의의무 등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7명 중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도덕적·정치적 책임은 있을 수 있지만 실무자로부터 보고받고 큰 틀의 결정을 내리는 지휘부에 인명 피해에 대한 형사책임까지 지우기는 어렵다는 게 최근의 판결 추세인 셈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심판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여러 정부 기관의 잘못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참사의 책임을 장관 한 사람에게 돌리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경찰 서열 2위로 평가받는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기소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무죄가 확정되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미 경찰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검찰이 김 청장과 최 서장까지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 이른바 ‘윗선’은 사실상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돼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고심 끝에 이 총장이 내린 결정이 수심위를 소집해 외부 위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다.
수심위는 외부 전문가 위원들에게 검찰이 수사 결과를 설명한 뒤 안건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절차다. 150∼300명의 외부 전문가 위원 중 무작위 15명으로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하며 피의자와 피해자 측이 모두 출석해 심의위원들에게 각자의 주장을 설명할 수 있다.
대검 규정에 따르면 수심위의 권고는 ‘존중’만 하면 되고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수심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왔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이번 사안은 이 총장이 고심 끝에 직권으로 소집한 만큼 가급적 수심위 권고를 따르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검찰 수사의 총책임자인 검찰총장이 사실상 외부 전문가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맡겨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5일 “검찰이 수심위를 통해 김 청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며 “기소 지연행위를 즉시 멈추고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지 않게 조속히 기소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검 관계자는 “서울서부지검은 이 사건과 관련해 처리 방향을 결정한 것이 없다”며 “수심위 의견까지 반영해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과 최 서장의 기소 여부가 결정되면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도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 청장이 사실상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상단’인 셈이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이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을 무혐의 처분하고, 윤희근 경찰청장 또한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했다.
개정된 수사 준칙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재수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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