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필자는 영화의 배경인 1979년 12·12 군사 반란 후에 태어나 이 사건의 후과를 체감한 적 없는 줄로 알았다. 반란에 가담했던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당시 축적한 재산으로 잘살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혈압은 올랐지만 나와의 접점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하다 필자가 대학생 때 전두환이 이름을 지은 ‘정수장학회’ 수혜자였다는 걸 떠올렸고, 이때 경험이 독립언론을 만들게 된 현재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두환(영화에서는 전두광) 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 만들었다는 정수장학회는 졸업 때까지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큰 혜택을 주지만 장학생 때 기억은 좋지 않다. 장학회 출신 학교 교수님께 ‘시민기자’가 되겠다고 했다가 크게 혼났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가 모토인 오마이뉴스에 관한 책을 감명 깊게 읽었던 터였다. “정수장학회 출신이 어떻게 오마이뉴스에 가겠다 하냐”라며 자신은 장학회에서 요청이 오면 원치 않는 연구를 한다고도 했다. ‘서울의 봄’을 같이 본 아버지는 그때 필자가 ‘장학금 안 받겠다’며 울며 전화한 걸 기억하고 있었다.
좋았던 기억은 아니지만, 그때가 없었다면 ‘뉴스어디’를 창간할 생각은 못 했을 수 있었겠다 싶다. 그날 이후 장학금 출처에 관해 공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산 지역 기업가이자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주식을 갖고 있던 김지태 씨의 부일장학회를 빼앗았다. 언론사 세 곳이 최고 권력 손에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 사후, 전 씨는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꿔 박근혜 씨 등 유족에게 장학회 지분 일부를 넘겼다. 장학금의 출처는 언론을 통제한 세력의 야욕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언론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
뉴스어디는 창간 기사에서 기사형 광고(기사 형식을 빌린 광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 역시 정수장학회 때 경험과 연결된다. 기사형 광고는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다)과 연관이 있는데, 이 음수사원은 박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 전신인 5⋅16장학회에 남긴 휘호다. ‘정수장학회 출신은 오마이뉴스에 가선 안 된다’는 호통을 들은 뒤, 필자와 그때 강탈된 언론사에 주어진 이익은 박 전 대통령이 만든 것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기사형 광고를 지적한 뉴스어디의 보도는 정치권력만큼 강력해진 자본권력이 내어준 물(水)만 좇는 일부 언론사에 대한 지적이다.
몇몇 언론사는 ‘음수사원’을 잘 실천하고 있다. 언론사는 기사형 광고를 실을 때 ‘광고’라고 표기해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중 가장 심각한 사례가 아파트 분양 광고다. 최근 서울 옥수동에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사기로 260억 원대 피해가 발생했다. 지주택은 그 특성상 사업 실패 확률이 커 언론도 이를 다룰 때 위험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뉴스어디 취재 결과 한 매체는 이 아파트에 관한 기사형 광고를 십여 건 싣고도 이 사기 사건에 대해 주요 일간지 중 유일하게 보도하지 않았다. 광고주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음수사원’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필자가 잊고 싶지 않은 건 ‘부일장학생’이다. 방학 때 부산일보 배달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우연히 ‘부일장학생’으로 선발돼 10여만 원 정도 받았는데, 그때 받은 장학증서엔 “본보 배달학생으로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적혀있다. 김지태 씨가 장학회를 소유하고 있을 당시 신문 배달을 하는 청소년을 돕기 위해 장학금을 줬다는 점에서 강탈되기 전 정수장학회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김 씨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언론에서 조명하고 있지 않은 누군가, 더 나은 언론을 바라는 후원자의 바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하며 ‘음수사원’을 실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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