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 배드파더스에 유죄를 선고한 것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판결”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 2부는 4일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 씨에게 벌금 100만 원 선고유예 결정을 내린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이들이 양육비를 정상지급할 경우 이를 삭제하는 활동을 했다.
이와 관련해 사단법인 오픈넷은 4일 논평을 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드러내는 판결이자, 타인의 비위사실을 고발하는 모든 활동을 형사범죄화한 것”이라며 대법원에 유감을 표명했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 활동이 공익적 목적 보다는 비방의 목적이 크며, 사적 제재에 가깝다는 것을 유죄 이유로 꼽았다. 이에 대해 오픈넷은 “‘신상공개를 통해 양육비 지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기 위한다’는 목적은 현재 양육비이행법상의 양육비 미이행자 명단공개로 국가 역시 직접 ‘제도화’하여 추구하고 있는 ‘공익적’ 목적”이라며 “양육비 지급 문제는 개인 간 채권, 채무 문제를 넘어 공적 관심 사안이 될 만큼 사회구성원 다수가 겪고 있는 공공의 사회 문제이며 아동의 생존권과도 결부된 공적 문제”라고 밝혔다.
오픈넷은 “배드파더스는 3년 동안 900건에 가까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고,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2021년 신원공개, 운전면허정지, 출국금지 등 양육비 미이행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에 크게 일조하는 공익적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앞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부와 배심원 7인은 배드파더스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오픈넷은 “엇갈리는 판결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유무죄를 결정짓는 ‘공익 목적’이란 개념이 얼마나 판단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며 “아동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하여 공익적 목적이 넉넉히 인정될 수 있는 활동마저 형사처벌 대상이라 판시한 본 판결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이번 재판으로 미투 운동, 갑질 폭로 등 사회 감시·고발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지난해 유엔은 대한민국에 ‘명예훼손’ 자체에 대한 비범죄화를 권고했다. 국회는 국제사회의 권고대로 현재 계류 중인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폐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당도 5일 논평을 내고 “(배드파더스는) 국가가 하지 못한 역할을 대신했던 활동은 분명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법원도 이를 인정하여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며 “대법원의 판결은 양육의 책임은 개인들이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구조적 문제는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그대로 순응한 판결”이라고 했다.
진보당은 “이른바 ‘명예’보다, 아이의 생존권 보장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라며 “이번 판결로 양육비 이행과 관련한 공익활동이 위축된다면 그것 또한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다. 양육비 지급을 더욱 강제할 수 있도록 국가가 선지급하고 이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즉각 제도화하라”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도 5일 사설 <‘배드파더스’ 유죄 판결, 정부는 양육비 선지급 제도화해야>를 통해 “정부는 무책임한 부모에게 감치명령 없이도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담아 양육비 이행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약이 없다”며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이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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