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놓고 與배후설·野자작극설까지…통제불능 음모론 확산
여야 ‘가짜뉴스 엄정 대응’에도 일각서 음모론 편승해 ‘네탓’
전문가들 “정치권이 상대 악마화하며 팬덤정치 폐해 방치…증오정치 동원 멈춰야”
(서울=연합뉴스) 류미나 안채원 정수연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 안팎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혐오 정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1야당 대표가 부산 방문 일정을 진행하던 중 대낮에 흉기로 습격당한 사건을 놓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는 ‘야당 자작극’부터 ‘여권 배후설’까지 각종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상대 정당을 적으로 돌려 악마화하는 정치권의 풍토가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팬덤 정치를 재생산하고 강화함으로써 악순환의 구조를 고착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진단했다.
◇ 피습 나흘째 쏟아지는 가짜뉴스…여야 일각 ‘음모론’ 부화뇌동
지난 2일 이 대표 피습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일부 보수 성향 유튜버들은 ‘가짜 칼’, ‘가짜 피’가 의심된다며 자작극설을 주장했고,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 문제를 놓고선 특혜냐 아니냐 등을 놓고 의료계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피습 사건 이튿날부터는 민주당 당원 게시판, 이 대표 팬카페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 배후설’이 등장했다. 잇단 거부권 행사와 관련한 부정적 여론을 덮으려는 시도라는 주장이었다.
아울러 피의자의 범행 동기가 알려지고 당적 논란까지 불거지자 음모론은 확대 재생산됐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전날 피의자 당적과 관련해 “중대한 범죄의 배후가 밝혀진 경우가 거의 없다”며 논란에 가세했다. 피의자의 단독범행이라는 경찰 발표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여야는 일단 이 대표 피습과 관련한 상호 비방을 자제하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고, 가짜뉴스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모든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극단적 발언으로 후진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논평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정치적 테러도 정파 이해관계에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밝혀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야 일각에서는 음모론에 부화뇌동하거나 혐오 정치의 원인을 상대 당에 전가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 피습 당일인 지난 2일 대전시당 신년인사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 대표 피습을 ‘쇼’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와 현장에 있던 한 위원장이 이를 황급히 제지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민주당에선 당 지도부가 이 대표 피습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이경 전 상근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정치권의 자업자득”…여야 ‘공멸의 길’ 진입 경고
전문가들은 팬덤 정치의 폐해를 방치한 정치권에 책임이 있다고 진단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사회에 번져 있는 진영대립 구도에 편승,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며 자기 지지층 결집만 노리는 정치 풍토가 고착한 결과라는 것이다.
선거철에는 내심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가짜뉴스를 양산하며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마저 조성됐다는 지적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강성 발언을 내놓고 소수의 핵심 지지층을 얻으며 성장하는 것이 정치권의 ‘룰’이 돼버렸다”며 “이번 사태는 자업자득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공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경고했다. 극단적 팬덤 정치에 기대는 정치인, 정당은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 이미지를 더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거에 대한 피로감을 높여 중도와 부동층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특정 진영의 유불리로 국한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강경 지지층만의 목소리가 과다 대표되면 제도권 정치가 무력화되고, 타협과 공존의 민주적인 가치도 상실된다”며 “증오 정치 동원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보다 중장기적인 차원의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양당이 혐오에 기반해 정치를 하고,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진영과 유튜브 등이 뒤섞여 일종의 ‘카르텔’이 만들어진 상황”이라며 “증오 정치를 조장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에 대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해서 주의를 주거나 공천 심사 때 관련 사항을 반영하는 등 제도적 해법을 우선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가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하고, 배제하려고 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라며 “여야가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minar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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