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방문 중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긴급 수술을 받았다.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대다수 언론에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공격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디지털타임스 논설실장은 “테러는 규탄받아 마땅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 짓는”것이 곧 “이재명 대표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만드는 일이라며 문제 삼았다. 해당 논설실장은 “이 대표의 테러에 반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세태를 보며 우리사회의 한 없는 경박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배우 이선균 사망 이후 경찰과 KBS 등 언론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경찰이 입증되지 않은 수사 내용과 그의 사생활을 공개했고 KBS가 이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론과 달리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겨레는 이러한 ‘궤변’엔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테러에 “국민의힘도 민주주의 거론, 무개념의 소치”
3일 이규화 디지털타임스 논설실장은 칼럼 <테러가 들춰낸 우리사회 한없는 경박함>에서 “한 개인의 범죄지만 우리사회 분노제어기제가 고장 났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정치권에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를 ‘민주주의 위협’으로 규정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 대표 테러에 대해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테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고, 국민의힘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피의자에게) 배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배후가 있어 조직적으로 이 대표를 제거하려고 했다면, 양상은 전연 달라진다. 양당과 정치인들의 말대로 그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하지만 정상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일탈을 놓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 민주주의 파괴행위는 더더욱 못 된다. 그건 한 개인의 야만적 비행이지 민주주의와는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한 정신이상자의 테러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면, 그런 허약한 민주주의는 애당초 존재할 수도 없었다”며 “이재명 대표에 대한 한 개인의 적개심으로 발생한 테러를 거대 어젠다로 치환하는 건 잘못됐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거론한 국민의힘도 비판했다. 이 실장은 “민주당은 그렇다 치자. 국민의힘까지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역시 무개념의 소치다”라며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데로 연결 짓는 건, 그 말이 갖는 함의를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그가 이렇게 우려하는 이유는 뭘까. 이 실장은 “이 대표에 대한 테러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고 위협이라고 한다면, 은연중 이재명 대표는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다. 무의식중에 국민들 뇌에 그렇게 박히게 된다”고 했다.
끝으로 이 실장은 “이 대표를 공격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허무는 것처럼 과한 언사를 써선 안 된다”며 “이 대표의 테러에 반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세태를 보며 우리사회의 한없는 경박함을 느끼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라고 칼럼을 마무리했다.
디지털타임스는 이번 테러를 ‘비정상적’인 한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면서 ‘민주주의 위협’으로 연결하는 주장을 경계했다. 그러나 해당 칼럼에서 이 대표를 향한 테러가 민주주의 공격일 때, 이 대표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다는 주장은 일반적이지 않은 해석이다. 현재 정치권과 언론의 우려는 ‘이재명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어떤 정치인에 대한 테러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디지털타임스를 제외한 신문에선 테러가 발생한 구조적 배경과 정치문화에 초점을 뒀다.
조선일보는 사설 <이재명 대표 피습, 반복되는 정치 테러 반드시 근절해야>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누구를 상대로 하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유권자와 가까이 접촉해야 하는 정치인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범죄”라고 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과 불특정 다수의 접촉이 잦아지는데 정치인들이 테러 위협에 휩싸이면 제대로 된 선거운동이 어려워진다. ‘민주주의의 꽃’, ‘축제’에 비유할 만큼 중요한 국회의원 선거조차 불안감 속에서 진행된다면 민주주의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지난 번 송영길 대표 습격 사건 때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마치 국민의힘 쪽에서 공격한 것처럼 주장하는 글을 올렸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만약 총선 기간 중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선거가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은 극단적 대립이 일상화된 우리 정치권을 되돌아보게 한다”며 “여야 할 것 없이 진영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청산 대상으로 삼는 풍토가 퍼져 있다”고 진단한 뒤 “정치인들도 이번 일을 극단적 정치 문화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야당 대표 흉기 피습, 민주주의 위협하는 ‘증오 정치’>에서 “대한민국이 어쩌다 정치 테러를 걱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지난 대선 과정에서 진영 간 대립은 거세졌고, 진영 내부에서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상대를 향한 증오가 ‘말폭탄’을 넘어 급기야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표출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역시 이견을 적대시하는 극단적인 분위기에서 폭력이 발생했다는 진단이다.
한겨레는 “갈등과 이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것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인데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막말과 증오를 일삼았던 일부 정치인들은 모두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언행을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터”라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총선을 앞두고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면 폭력의 에너지가 또 어떤 형태의 테러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미 이 사건을 두고 각종 억측과 정치혐오를 담은 댓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라고 우려했다.
한겨레, ‘연예인=공인’ 비판
이춘재 한겨레 논설위원은 <‘연예인 공인론’의 불순한 의도>란 칼럼에서 배우 이선균씨의 죽음과 관련해 윤희근 경찰청장의 발언 “수사를 비공개를 진행했다면 (대중이) 용납하겠나”와 KBS 측의 “사회적 관심이 커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해명을 비판했다. 이 위원은 “두 궤변의 밑바탕에는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공인에 대한 수사와 보도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공인의 사전적 정의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여기서 공적인 일은 국가적 자원 분배, 정책입안, 시장 질서 유지 등 공동체 이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했다. 즉 공인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기업인 등을 뜻한다. 따라서 국민은 이들이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재산, 납세내역 등 공개를 요구하고 권력 남용에 대해 비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예인은 이런 ‘공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고 단지 이름과 외모가 널리 알려져 인지도가 높을 뿐”이라며 지난 2022년 대법원이 한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누리꾼에게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연예인의 사생활이 아무리 공적인 관심사라 할지라도 공익과 관계가 없으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했다.
이 위원은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주장은 ‘진짜’ 공인의 비리 행위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연예인)으로 돌리는 데 종종 악용된다”고 지적했다. 2011년 ‘연예인 탈세 의혹’의 사례를 들었는데 이 위원에 따르면 부동산 투기가 의심되는 장관들 청문회를 앞두고 해당 의혹이 제기됐지만 뒤늦게 국세청이 ‘세무사의 단순 실수’라고 진화에 나섰다. 해당 연예인들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장관은 무사히 국무위원이 된 사건이었다. 이 위원은 “이번 연예인 마약 수사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자녀 학교 폭력 사건과 겹쳤다”며 “우연의 일치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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