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희망의 정치’ 연속기획 초대석
“넘버 원’ 아닌 ‘온리 원’될 것”
정치 철학으로 ‘사랑’ 언급
“사랑 없어지는 순간 귀 닫혀”
2일 오후 충남 천안역 대합실에 마련된 대형 TV 앞. 남녀노소는 저마다의 옷차림이었지만 하나같이 경직되고 무거운 표정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 이후 정치권에선 오랜만에 ‘한목소리’가 쏟아지기도 했다. 문제는 생경히 여겨지는 정치권 한목소리가 끝모를 대립과 분열의 결과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번 피습 사건을 두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의 정치가 빚어낸 비극’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양보와 타협이 실종된,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되는 21대 국회가 커다란 생채기를 또 하나 짊어지게 된 셈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충남 천안갑 지역구에 두 번째 도전장을 던진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국민의힘 예비후보)은 데일리안과 가진 ‘갑진년 희망의 정치’ 특별인터뷰에서 “서로가 서로를 거부하는, ‘비토 크래시’가 21대 국회에서 극대화됐다”고 평가했다. 비토 크래시는 ‘거부’라는 뜻의 ‘비토(veto)’와 ‘정치체제’를 뜻하는 ‘크래시(cracy)’의 합성어로, 반대만 일삼는 극단적 당파 정치를 뜻한다.
신 전 차관은 22대 국회는 달라져야 한다며 ‘강직한 온건주의’에 힘을 실었다. 비전과 실력으로 경쟁하되 토론과 협상을 통한 ‘교집합 넓히기’를 마다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신 전 차관은 “정치는 사랑”이라는 자신만의 철학도 언급했다. “사람과 지역·국가에 대한 애정이 없는 정치인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정치를 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권 외교·안보 전략통으로 손꼽히는 신 전 차관은 1970년생으로 천안에서 나고 자랐다. 남산초·계광중·북일고를 졸업하고 충남대 법대·법과대학원을 거쳐 한국 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으로 외교안보 전문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 조지타운대 법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KIDA 국방정책연구실장·국방현안연구팀장·북한군사연구실장은 물론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외교부 정책기획관, 국립외교원 교수,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등을 역임하며 전문성과 실무 경험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되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는 대체로 차분했다. 다만 ‘국민의힘 혁신’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 대한 기대감을 언급할 땐 단어 하나하나가 단단하게 들렸다.
Q. 외교안보 전문가이니 북한 전원회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예상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2021년) 8차 노동당대회 이후 북한은 대미·대남 강경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정책(노선)을 바꾸려면 국제정세 변화 등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어야 한다. 한데 지금은 기존 북한 입장을 강화시키는 국제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이스라엘 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 입장에서 중국,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을 꾀할 수 있는 기회 요인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대미·대남 강경 발언을 더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남측을 겨냥해) ‘적대적 관계다’ ‘통일은 이제 끝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본다.
Q. 전원회의 관련해 남북관계 관련 언급이 유독 눈에 띈다.
북한의 통일 관련 언급은 ‘열세’를 인정하는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남북관계 70년사를 돌아보면 체제가 더 강하다고 느꼈을 때 통일 이야기를 했다. 북한은 60~70년대에 통일 이야기를 계속했다. 7·4 남북 공동성명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통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한 시점은 80~90년대였다. 우리 체제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이후 통일 담론은 서로 정체돼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이제 통일 이야기를 접겠다고 밝힌 건, 그만큼 체제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Q. 북한이 우리나라를 '국가'로 칭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북한이 '투 코리아(Two Korea·한반도 내 두 국가) 정책'을 시사한 것일 수 있지 않나.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북한을 '나라'로 부르고 있다. 통일 정책이든 대북 정책이든 근본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북한이 (우리를) 국가라고 부른 것은 의미가 크다. 남북 기본합의서에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인 특수관계’라고 규정돼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상호 간 ‘국가’ 칭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북한이 (우리를) ‘국가’라고 한 것은 ‘김정은 체제 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반면 우리가 북한을 ‘나라’로 칭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입장과 북한 입장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Q. 한반도가 투 코리아로 향하는 분위기라면, 여의도는 양당제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예고된 신당의 등장, 어떻게 보고 있나.
선거가 10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신당의 등장은 지역 정치판을 동요시킬 수 있다. 양당 체제에서 후보가 되지 못해 출마를 포기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천안갑처럼 박빙인 지역에선 신당이 2~3%만 가져가도 누가 당선될지를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변수가 된다. (신 전 차관은 21대 총선에서 1328표, 1.42%p 차로 고배를 마셨다.)
Q. 국익 차원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줄 필요도 있는데, 과문해서인지 21대 국회와 관련해선 이렇다 할 기억이 없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로서, 22대 국회 입성을 꿈꾸는 예비 후보자로서 21대 국회를 평가한다면.
21대 국회는 어떻게 보면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고 평가한다. 국회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대립 구도가 너무 강하다. 토론을 통한 해결책 찾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거부하는, 비토 크래시가 극대화됐다. 토론보다는 비난이 훨씬 많았고, 정부에 생산적 건의를 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비판이 더 많았다. 그 결과 여야 협치가 이뤄지지 못했고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Q. 비토 크래시로 귀결된 21대 국회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다고 보나. 얼마 전 출판기념회에서 언급했던 '강직한 온건주의자'가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까?
우선 강직한 온건주의자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다. 충청도에선 특별히 하나의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충청 지역에 중도가 많은 이유다. 나도 충청 출신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온건하다고 평가한다.
다만 정치하는 사람은 온건해서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주장하는 비전이 있을 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지 않나. 과제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선 단호하고 강직한 면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합쳐 강직한 온건주의자라고 한 거다.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에 강직한 온건주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 타협이 안 되지 않나. 어느 시점에선 온건한 타협 지점을 찾아야 될 텐데,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게 아니라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실제로 나는 북한 문제에 있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온건주의자로서 대화는 필요하다고 봤지만, 북핵 문제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Q. '정치는 사랑'이라는 철학을 이야기했던데, 좀 풀어서 설명해달라.
사실 정치 경력은 4년 정도로 짧다. 정치가 사랑이라는 건,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체감한 것이다. 공부를 해서 한 방향의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생각도 다 다르다. 또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너무 많다. 다 이해하려면 사람들에 대한 사랑 없이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없어지는 순간 귀를 닫아버리게 된다. 정치라는 게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정말 지난한 프로세스 아닌가. 사람과 지역, 더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기심이 작동해 ‘자기를 위한 정치’를 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트’를 들고 다닌다. (웃음)
Q. 정치적 롤 모델이 있나
특별히 어떤 사람을 롤 모델로 삼지는 않는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되고 싶다. 정치판에선 모두가 다 최고를 바라지 않나. 이것이 우리 정치를 왜곡시킨다고 본다. 다 자기만 빛나려고 하니까.
온리 원, 개성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외교·안보 정책적 ‘마인드 셋(사고방식)’과 현장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사랑) 및 역량이 접목됐을 때 온리 원 정치인이 나온다고 본다. 외교·안보 분야 최고의 전문성을 위해 계속 공부하면서도 비례대표가 아닌 현장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고유한 색깔이 있는 정치인이 되겠다.
Q.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로서 어떤 공약을 가다듬고 있는지.
나중에 발표할 거라 구체적으로 언급은 못 한다. (웃음) 도심 지역은 인프라 건설에 기초한 재개발이 필요하다. 교외 지역은 고령화 사회와 관련해 어떠한 모습을 우리가 추구할지 고민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번 선거는 혁신하는 정당이 이긴다고 본다. 국민의힘에 들어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혁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기대가 크다. 제대로 된 혁신이란 결국 국민의 눈높이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의 혁신이다. 혁신에 있어선 예외를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정인을 너무 우호해도, 배제해도 안 된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공천이 이뤄지고,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풀어갈 정책을 잘 제시하면 총선에서 이긴다고 본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