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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논란 억울하다는 최강욱, 어딘가 익숙한 ‘남성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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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발언으로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암컷을 비하하는 말은 아니고,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라며 ‘그럴 의도가 아니’라는 식의 변명을 내세우더니, 당의 징계가 확정된 직후에는 본인을 향한 일각의 비판을 두고 “It’s Democracy, stupid(이게 민주주의야, 멍청아)!”라고 일갈했다. 지난해 일었던 ‘XX이’ 논란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젠더폭력 또는 여성혐오 논란 자체를 부정하는 모양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 전 의원의 ‘억울함’은 공격 기회를 잡은 국민의힘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당 내부에서도 노선을 막론하고 큰 동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터진 막말 리스크에 지도부는 헐레벌떡 최 전 의원의 “부적절한 언행”(이재명)을 질책, “당의 입장과 관계없는”(홍익표) 발언이라 선을 긋고 나섰다. 당내 비주류 의원들로 구성된 ‘원칙과 상식’은 한 발 나아가 “당의 도덕성 상실과 성인지 감수성의 후퇴”를 직격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국회 내 여론에도 도끼눈을 뜰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최 전 의원의 여성혐오 발언과 논란 이후 이어진 억울함의 토로, 거기에 붙는 일부 동료들의 옹호발언까지, 그 모든 장면이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유해한 남성성’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 11월 19일 광주에서 열린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북콘서트에 참석한 민주당 ‘처럼회’ 출신 전·현직 의원들. 왼쪽부터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최강욱 전 의원, 김용민·민형배 의원. 유튜브 ‘나두잼TV’ 갈무리.

당장 지난해 ‘XX이’ 논란을 생각해보자. 총선에 대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부재했던 그때 당시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최 전 의원의 징계를 1년간 유예했다. 해당 발언을 성희롱이라 비판하며 중징계를 요구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강성 지지층의 사이버 테러 속에서 당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최 전 의원의 여성비하, 막말정치를 비판하며 핏대를 세우고 있는 국민의힘이라고 다를까. ‘XX이’ 논란이 있던 그 해 현 정부여당에선 “구조적 차별은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하나의 캐치프라이즈로 자리 잡았다.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 무고죄를 강화해 ‘남성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던, 또한 성희롱과 성추행과 강간과 여성살인의 ‘구조성’을 지적하는 말들을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 몰아붙이던 국민의힘식 남성정치는 박 전 위원장이 당내에서 ‘설치는 페미니스트’라 취급받았던 일의 전 국민적 확장판에 가까웠다.

영국의 페미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라 베이츠는 끝없이 여성혐오의 구조성을 부정하는 이 같은 ‘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당신은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어서, 눈송이 같은 밀레니얼 세대(snowflakes)와 피시충(PC warriors)들이 날뛰게 내버려 두면 누구도 다시는 온라인에서 여성이나 소수집단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소리를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야한 농담 몇 마디에 파르르 떠는 유머 감각 없는 유리멘탈 여자들 때문에 중요한 자유 하나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봤을지도. 하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면 어쩔 것인가?”

▲로라 베이츠, <인셀 테러> ⓒ위즈덤하우스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ily Celibate)에서 비롯한 단어 ‘인셀’은 주로 음지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증오하는 세상'(지노크라시, gynocracy)이라는 사상 아래 활약하는 서구사회 남성 네티즌을 일컫는 말이다. 지노크라시란 여성 또는 여성의 생식기를 의미하는 접두사 ‘gyno’와 통치를 뜻하는 ‘cracy’의 합성어다.

간단히 말하면 지노크라시란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에 지배력을 펼치며, 여성에겐 혜택을 주고 남성에겐 억압을 가하고 있다는 사상이다. 마치 △’별 것 아닌’ 성적 농담이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던 발언 △혹은 그저 ‘비정상적인 악마’ 개인의 성폭력 등에 ‘구조적인 젠더폭력’이라는 관점을 들이댄다며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어떤 정치인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이들은 끊임없이 섹스에 굶주린 여성들이 가장 매력적인 남자와의 잠자리만을 선택하며, 이에 따라 계급화된 성시장 아래서 하위 80퍼센트의 남성들이 부당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노를 공유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신기하게도, 여성이 어째서 사악한 인간 이하의 존재인지 장황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한편, 섹스가 너무 부족하다며 몇 시간씩 떠들어대는” 셈이다.

여성을 사회적 지배계급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오직 성적인 대상으로 환원하는, 이 두 개의 모순적 관점을 연결하는 감정이 바로 ‘억울함’이다. ‘여성살해는 극소수 정신이상자들의 소행일 뿐인데’, ‘강간보다도 꽃뱀 문제가 심각한데’, ‘이 정도는 성희롱이 아닌데’, ‘여성혐오는 허상인데’…

수많은 ‘억울한’ 사례들을 늘어놓으며 “인셀들은 자신을 결백하고 비극적인 피해자로 여기며, 자신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적개심을 품고 있는 암담한 사회의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이 같은 인셀의 심리적 기재 및 사회적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본인을 모태솔로의 20대 남성 알렉스로 위장, 1년간 매노스피어(흔히 극단적인 남성계 커뮤니티를 포괄하는 말)에서 직접 활동하고 그 연구 결과를 엮어 <인셀 테러>를 출간했다.

책를 통해 저자는 △왜 이들이 백인 남성 ‘역차별’과 신이 내린 ‘섹스권’을 주장하는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이들이 내세우는 ‘유머와 밈’이 얼마나 위험한지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이들의 범죄를 어떻게 부추기는지 △이들이 정치권을, 정치권이 이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인셀들이 ‘총’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지 생생하게 통찰한다.

바다 건너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인셀’에 대한 저자의 탐구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이 문제가 비단 먼 나라의 신기하고 위험한 현상이 아닌 2023년의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가령 여성의 생식기와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귀족계층을 이르는 단어 ‘천룡인’을 합성한 국내 남성계 커뮤니티 은어 ‘보룡인’은 인셀들의 핵심 정체성 ‘지노크라시’가 국내 일부 커뮤니티에선 이미 만연한 정체성임을 짐작케 한다.

2022년 국내 남성커뮤니티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언론에서까지 다뤄졌던 ‘설거지론’, ‘퐁퐁남’ 등 신조어는 어떤가. 성경험이 부족하지만 경제적 능력을 갖춘 남성과 성 경험이 풍부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여성의 연애·결혼을 설거지에 비유한 해당 신조어들은 인셀 커뮤니티 내에서 통용되는 ‘베타호구(beta cucks)’론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서구사회에선 억울함을 토로하는 인셀 중 일부가 현실의 여성살해 범죄를 일으키면서 인셀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4년 남성 유튜버 엘리엇 로저가 “모든 타락하고 건방진 금발 잡X들을 도륙”하겠다며 캘리포니아대학교 여학생 클럽에서 6명의 여성을 총기로 살해한 사건 ‘로저의 대학살’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서구사회의 인셀들과 또한 인셀문화에 둔감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많은 언론들이 이 같은 범죄를 다루며 여성혐오와 여성살해 범죄 사이의 연관성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누락시켰다”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 작년 7월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에 대해 “젠더문제가 아니”(김현숙 여성가족부장관)라고 일축하거나, 올해 8월 신림 등산로 살인사건에 있어 아예 침묵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 이 8월 25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의 말처럼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여성을 멸시하는 인터넷 속 모든 행위가 “테러, 살인, 폭력, 심지어는 여성혐오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문화가 “인터넷 공간 바깥으로 일순 도약하여, 오프라인으로 스르르 진출하고, 술집을 뚫고 들어가고 길거리를 활보하고, 식탁 나무다리를 조심조심 휘감고 올라오고, 권력의 회랑을 기웃대고, 제도와 일터에 참호를 파고, 토크쇼와 뉴스룸을 향해 그 촉수를 뻗치고, 뿌리를 깊숙이 내리다가 결국 우리 모두의 의식구조 안에 자리 잡을 경우”를 경고한다.

대선 국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던 여당의 ‘페미니즘 때리기’ 전략이, 이달 초 경남 진주시의 한 편의점에서 일어난 ‘숏컷 여성 테러’ 사건과 절대 무관치 않다는 국내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시작으로 2020년 즈음부터 이어지고 있는 여당 측 ‘안티페미’ 정치전략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정 경기지사 등 권력형성범죄에 대한 온정적 대처로 이미 지탄받은 바 있는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층을 필두로 당내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내부총질’ 또는 ‘설치는 암컷’ 따위로 폄하하는 경향이 여전히 건재하다.

심지어 지난해 대선에서 막판 여성 결집을 통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접전을 치뤘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또한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주장이 담긴 온라인 커뮤니티 ’홍카단’ 글을 공유하면서 국민의힘 측 ‘이대남 결집’을 벤치마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강간 합법화를 지지하는 인셀계 인플루언서 다리우시 발리자데 사이의 ‘영향력 교감’ 사례를 짚으며 극우세력 혹은 여성혐오자들의 ‘정치권 침투’ 현상을 꼬집기도 한다. 국내에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재임시절 정치권에 진입한 국민의힘 최인호 관악구의원이 ‘남성 역차별’론을 주장하며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홍보해왔다는 사실이 지난 8월 밝혀진 바 있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는 ‘정치’는 종종 최강욱의 발언보다도 유해할 수 있는, 그리고 더 쉽고 더 강력한 혐오 또한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여성혐오적 비난을 정치적 풍자로 활용한 <더러운 잠> 사건이 그랬고, 인셀식 커뮤니티 정서를 ‘이대남 결집’의 도구로 활용했던 이 전 대표의 세대포위론이 그랬다.

저자의 말처럼, 이 같은 흐름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낮은 수준의 여성혐오에 무감각해진 바람에 완전히 절정에 이른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곤 한다. 최강욱 전 의원의 ‘암컷’ 논란에 대한 여야의 질타가 그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선거공학적’ 질타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 위기를 너무 많이 봐왔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대통령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 전 대표가 지난 2021년 7월 서울 광진구 건대 맛의거리에서 ‘치맥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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