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청자위원회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위협받는 동물권 관련 유튜브 영상을 삭제한 SBS가 정권을 의식해 아이템을 검열했다고 비판했다. 삭제를 지시한 시사교양국장은 검열이 아닌 공정한 방송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반박했다.
SBS는 지난 9월 제작진이 만드는 유튜브 채널 <애니멀봐>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해 바다에서 살아가는 해양동물들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발뉴스’ 영상을 올렸다가 돌연 비공개 처리해 논란이 됐다. 해당 영상의 삭제는 <애니멀봐> 콘텐츠를 총괄하는 시사교양본부 시사교양국장과 교양 CP가 협의 과정 없이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영상에 출연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측은 SBS가 정권의 눈치를 보고 영상을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SBS가 지난해 12월18일 홈페이지에 올린 9월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시청자위원들은 SBS측에 콘텐츠 삭제 경위와 ‘아이템 검열’이라는 비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구했다. 아울러 영상 복구 계획과 제작진의 제작 자율성 보호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김희영 위원(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은 이날 회의에서 “윤석열 정권이 언론에 가짜뉴스 전쟁을 선포하고 기자를 압수수색해 뉴스가 마치 정부 홍보 영상같이 변해가는 이 시국에 정부 관련 민감한 사안을 소극적으로 다룬다면 SBS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지영 위원(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도 “SBS가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에 제작과 편성에서 배제시키는 경우 어떻게 분별해 결정하는지 궁금하다”며 “SBS가 알아서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군다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답변을 기대한다”고 했다.
손지원 위원(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도 “콘텐츠가 정부 정책 기조에 비판적인 사안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 영상만 문제시했다는 건 SBS가 정부 눈치보기를 하고 있거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며 “삭제 지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내려진 것이라면 사측에 의한 제작진의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고래를 해양생태계 대표 청구인으로 포함해 헌법소원을 내 해당 영상에도 출연했던 김소리 위원(민변,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은 자세한 상황 설명과 함께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김 위원은 “사건의 본질은 보고 누락이 아니라 아이템에 대한 검열 가능성이다. 제작진과의 충분한 협의 과정 없이 삭제된 것으로 보이는 바, 이는 SBS 편성규약 위반”이라며 “발뉴스 세계관에서 해양생물들이 직면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이슈는 자연스럽게 다룰 만한 콘텐츠로 발뉴스 성격과 맞지 않다는 설명은 납득되지 않는다. 댓글창이 논쟁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적 관심사 관련 논의를 촉발하는 건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시사교양본부에서 이 아이템을 정치적 이슈로 바라보고 채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 에 윤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SBS의 적합성 기준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동물 콘텐츠에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납득하기 어렵다. 동물과 관련해 예컨대 개식용 금지법안, 동물의 비물건화 법안 등 정치권 이슈와 연결된 것들이 많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회피하고 그저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만을 다루는 콘텐츠로만 남는다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본 삭제 사태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길들이기, 적정 정보에 대한 통제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며 “제작진의 자체 검열이 강화되는 등 위축효과는 말할 것도 없으며, 향후 간부진에서 문제되는 콘텐츠라고 판단하면 어떠한 이유를 들어 또 삭제될 수 있는 게 아닌 지 우려된다. 별것 아닌 것을 오히려 간부진이 논란을 만든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SBS 측은 ‘검열’이 아닌 공정한 방송을 위한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박상욱 시사교양국장은 “이번 결정은 공정방송을 더 잘 하기 위해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결정했다. 채널 담당자인 내부 PD와 상의했고, 보고 누락이라는 절차 상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며 “발뉴스는 뜨거운 공방이 예상되는 이슈를 다룬다는 방향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채널의 성격에 변화를 주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깊은 논의가 필요한데, 이번엔 그 논의를 위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CP나 프로그램 팀장이 논의를 거쳐서 아이템을 확정하는 정상적인 과정은 검열이 아니다. 시사교양본부의 주체적 결정을 ‘검열’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점은 유감”이라며 “윤 대통령 부부의 출연은 보고를 통해 아이템을 인지했고, 깊이 논의해 결정했다.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책임자가 함께 치열하게 논의해 결정했다는 게 이번 발뉴스와 다른 점”이라고 했다. 박 국장은 영상 복구나 관련 공지 계획은 없으며 다른 채널에서 오염수 방류 이슈를 다루겠다고 답했다.
이에 김소리 위원은 “발뉴스라는 콘텐츠를 어떤 성격으로 생각하냐”며 “윤 대통령 부부의 출연은 논의과정이 충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 발뉴스 역시 논의를 심도있게 진행하면 다룰 수 있는 것인가”라고 재차 물었다. 손지원 위원도 “지금까지 모든 발뉴스, 애니멀봐 콘텐츠는 제작 시 모두 사전 기획회의나 보고 절차가 있었나”라고 물었다.
이에 박상욱 국장은 “발뉴스 콘텐츠의 성격은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정보나 제도 위주의 소개를 방향으로 하고 있다. 공방이 예상되는 아이템은 에러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보고가 돼야 한다”며 “이번에 반대편의 주장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진이 만들었다면 아마도 민변 측에선 콘텐츠의 아주 작은 흠집까지도 찾아서 비판했을 거다. 언론인으로서 예상되는 여러 가지 비판을 고려했고,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끝까지 고민하는 게 우리가 공정방송을 하는 힘이다. 윤 대통령 출연과 마찬가지로 이번 아이템도 미리 고민을 했다면 다룰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희영 위원은 “공방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공방이 가능하다고 보고 어떤 공방을 예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중요하다고 했다. 손지원 위원도 “모든 게 공방이 예상되는 거고, 모든 게 정치적이지 않은 사안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해 더 엄격한 공방의 가능성을 고려했다면 정부의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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