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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치세력 대북 친애정책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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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2월 28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연말 전원회의'에서 지난 2023년 12월 28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김 총비서는 남북관계를 ‘두 국가 관계’, ‘교전국 관계’ 등으로 규정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다.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론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였다.”

지난 30일 열린 북한의 노동당 전원회의 제5차회의에서 김정은은 남북의 민족적 연대를 부인하고 이를 공식 선언했다. 새삼스레 관계를 재설정한 게 아니다. 다만 그간엔 우리와 국제사회에 대한 기만술책으로 ‘동족’운운했을 뿐이다. 북한 통치집단의 기본적인 대남인식은 변한 게 없다. 그걸 공개·공식적으로 확인시킨 게 김정은의 이날 연설이었다.

“북남,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핵 위기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

이 또한 습관성 허풍이고 협박이다. 이런 과대망상적 선전선동이 북한 체제 존속의 핵심적 기반의 하나다.

세상이 다 아는 그들의 본심을, 새해가 열릴 시점에 협박하듯 드러낸 것은 북한의 주민들에게 통치자로서의 위력을 과시하려는 뜻이겠다. 이전보다 더 강력한 새해 메시지가 필요했기 때문일 터이다. 민심이반 현상이 뚜렷해진 것일까? 허장성세(虛張聲勢)는 위기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내용도 다를 것 같지 않다. 북쪽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면 참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사회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 대 국민의 대결전 속으로 밀려가는 분위기다. 이를 감안하면 국민들에게 핵위협을 가중시키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자극하려는 책략일 수가 있다. 사회적 안보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우리 국민을 이간‧분열시키려는 의도로도 읽힌다(국민 일부의 안보 피로감은 부분적이지만, 역대 진보·좌파정권의 대북 친애親愛정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김정은의 공개 협박은 신냉전 체제 고착화에 따른 핵무장 고수 정책의 공언(公言)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대립은 갈수록 첨예화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체제의 존립을 뒤흔드는 고립과 경제난을 겪고 있던 북한은 국제정세 변화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기회를 맞았다. 중·러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효용이 커졌고, 재구축된 남방 3각 대 북방 3각이라는 동북아 집단 안보구조는 북한에 깡패 짓을 계속할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 하마스의 끝날 기미가 없는 전쟁으로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재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호전적 태도로 인한 안보 경고음이 높아진다고 해도 미국 정부가 기민하게 유효한 대응을 해 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잊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상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김정은의 국내외적 위상은 한껏 높아졌다(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해낸 것이다).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위협을 가중시키더라도 트럼프라면 대화를 선호할 개연성이 높다.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는 ‘나라밖 일’이고 김정은과의 대화는 대단히 매력적인 정치적 퍼포먼스다. 트럼프가 당선되지 못한다 해도 자신의 입지가 더 나빠질 게 없다는 판단을 했을 법도 하다.

문재인 ‘평화의 봄’은 어디 가 버리고

어쨌든 북한 김정은은 자기 집단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냈다. 2,600만 북한 주민을 인질로 잡고 있는 전체주의적 전제군주로서 앞으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 대해 핵위협을 서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핵무기든 미사일이든, 이제는 ‘실험’을 넘어 ‘훈련’의 단계에 접어든 만큼 핵무력으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을 일으킨다고 해서 누가 막고 나서겠느냐는 공갈로 들린다. 이 공갈이 다양한 군사적 위협으로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킬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화철학은 여전한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집단안보체제 가동과 대응적 군사력 강화가 아닌 굴복적 수용이 더 나은 해법이라고 말할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에게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다”고 밝혔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상속자로서 그 역할을 민주당 사람들에게도 주문할 생각인가?


문 전 대통령 자신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협조해 줄 것을 애걸하듯 했다. 그게 유효한 방안이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는가? 그는 작년 4월 27일 열린 판문점 선언 5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문점선언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기적같이 만들어낸 평화의 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김정은과 둘이서만 도보다리를 걸으며, 내용이 비밀에 부쳐진 USB를 건네주면 ‘평화의 봄’이 다시 올까? ‘한반도 운전자’로서 어떤 역할을 했기에 김정은이 ‘동족 국가’임을 부인하게 됐을까? 판문점 선언에서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북 모두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라고 하더니 ‘민족’은 어디 가고 말았나? 그 문서에서 자랑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북한 김여정에 의해 폭파된데 대한 느낌은 어떻게 남아 있나? 도대체 왜 온 국민을 ‘민족주의’라는 고착된 인식의 틀 속에 가둬두려고 그처럼 안간힘을 썼는가?

이재명 ‘더러운 평화’ 선호 여전한가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더 격렬하게 염전사상(厭戰思想)을 피력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생각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27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북한 GDP보다 한국 국방비가 더 많다. 대한민국 군사력은 세계 6위다. 거기다가 한미 군사 안보 동맹이 있다. 이러면 매우 압도적으로 북한을 제압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데도 계속 ‘제압’ ‘억압’으로 가야 하느냐. 얼마나 더 필요하냐. 군인출신이라 그럴 수 있지만 균형감각을 좀 가지라.”

핵무장을 한 북한과 사이에서 우리 국방부 장관이 가질 수 있는 ‘균형감각’이란 어떤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문 전 대통령이나 이 대표나(대부분의 민주당 사람들도) 우리와 북한의 관계를 움직이는 게 상호주의나 함수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세계는 물론 인류사적으로도 독특하고 해괴한 집단이 북한이다. 우리가 아무리 선의로 대한다 해도 김정은의 안전과 체제의 존속이라는 지고(至高)한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면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문 전 대통령의 살갑게 웃는 얼굴에 김여정이 ‘삶은 소대가리’로 응대하지 않던가. 무기에는 눈이 없다. 동족애 같은 게 있을 리도 없다. 특히 북한의 무기에는!

웬일로 민주당이 ‘김정은 위원장의 위험한 발상’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강선우 대변인 명의의 브리핑을 통해서다. 전통적으로 진보‧좌파 정권은 북한에 대해 온정적일 정도가 아니라 과도하게 친애적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을 규탄하다니!

아니나 다를까. 이 브리핑은, 양비론으로 구성됐다. 흔한 말로 ‘모두 까기’를 한 것이다.

“한편으로 ‘힘에 의한 평화’을 내세워 이념적 편향에 치우친 대북 정책만을 고수한 윤석열 정부도 상시화된 위기 국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하자면 총선용 브리핑이다. 김정은의 기고만장이 우리 국민의 용인 한계를 넘어선 것 같으니까 일단 ‘규탄’을 하되 윤 정부의 ‘이념적 편향에 치우친 대북 정책’이라는 비판으로 상쇄시키려 한 인상이다. 이야말로 이념적 편향, 이념적 고착의 발로인 것 같은데, 아닌가?

민주당은 갑진년(甲辰年) 첫날인 오늘부터, 그간 정부의 대북정책 비난 용어로 써온 ‘이념적 편향’이라는 표현은 버리는 게 좋겠다. 북한에 대한 우리와 국제사회의 비판은 북한 체제의 현실적 행태와 의도에 대한 것이다. 국제사회를 향한 핵무기 및 미사일 위협,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야만적 폭정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게 ‘이념적 편향’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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