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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의 사망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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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바, 빌리 홀리데이를 과연 누가 죽였는가? 지독했던 생의 고통이었을까? 술이었을까? 아니면 헤로인이었을까? 최근 영화 <빌리 홀리데이>(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2021)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44살의 이른 나이에 그녀를 죽음의 낭떠러지에서 떠민 게 연방마약국(FBN)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작품은 영국 작가 요한 하리의 마약과 약물 연구서인 <비명의 추격>(Chasing the Scream: The First and Last Days of the War on Drugs) 의 일부분을 영화화한 것이다. 출간 즉시 화제작이 된 이 책에 따르면, 빌리 홀리데이는 연방마약국의 집요한 공격으로 무너졌다. 빌리 홀리데이 사후, 그녀의 친구들과 지지자들도 연방마약국이 죽음에 이르도록 그녀를 몰아세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

▲훌루에서 공개한 영화 ‘빌리 홀리데이’(2021)
▲훌루에서 공개한 영화 ‘빌리 홀리데이’(2021)

빌리 홀리데이는 1930년대 FBI, 그리고 갓 신설된 연방마약국의 눈엣가시였다. 그녀는 흑인의 우상이었고, 당시 흑인 슬럼가를 중심으로 만개한 재즈 열풍과 급진적인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그녀의 노래 ‘낯선 열매(Strange Fruit)’는 흑인들의 고통과 저항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 FBI와 연방마약국이 그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수시로 강요하던 터다. ‘낯선 열매’란 집단 린치를 당하고 교수대에 매달린 채 바람에 대롱거리는 흑인의 시신을 의미했다.

굴하지 않고, 빌리 홀리데이는 계속 그 노래를 불렀다. 연방마약국과 초대 국장 해리 앤슬링거(Harry Anslinger)는 그녀의 노래를 멈추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붕괴시키기 위해 헤로인 중독자라는 걸 이용했다. 감시요원 잠입, 거듭된 협박, 체포와 투옥, 카바레 공연권 불허 등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급기야 헤로인을 몰래 투입하는 위장 증거와 함정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빌리 홀리데이가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멈추던 바로 그 순간에도 연방마약국은 그녀를 체포하느라 실랑이를 벌였다. 다섯 번째 체포였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의 마지막 장면은 수갑이 채워져 있는, 사망한 빌리 홀리데이의 발 크로즈업이다. 죽은 후에도 마약쟁이로 낙인화하고 체포했던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연방마약국으로 하여금 그녀를 몰아세우게 한 걸까? 정말 저항의 노래 ‘Strange Fruit’를 싫어해서 그랬던 걸까?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빌리 할리데이의 ‘낯선 열매 (Strange Fruit)’.
▲빌리 할리데이의 ‘낯선 열매 (Strange Fruit)’.

마약에 치료 아닌 악마화·처벌 정책
중독 양산 시스템은 열어젖혀

해리 앤슬링거는 애초에 금주령 담당자였다. 하지만 금주령 시대가 끝나고 연방마약국이 신설되고 초대 국장이 되면서 기관을 키우기 위해 마약을 대대적으로 범죄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당시 금지 마약인 코카인과 헤로인과의 전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대마초를 비롯해 더 많은 금지 마약의 목록이 필요했고, 마약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의 성과를 입증해 보일 희생양과 본보기들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30년 동안 해리 앤슬링거는 연방마약국(지금의 마약단속국)의 수장으로 복무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했다. 연방마약국이 곧 해리 앤슬링거였다. 케네디를 거쳐 닉슨 정부에 이르기까지 ‘법과 질서’에 기반한 지금의 미국 마약 정책 기틀을 만든 게 바로 그였다. 체포와 단속, 긴 징역형을 시행하며 지금의 마약-감옥 복합체를 구축시켰다. 오늘날 미국를 위시로 하는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마약에 대한 공적 대응이 치유와 회복에 공을 들이는 ‘공중 보건’이 아니라, 처벌과 낙인을 양산하는 ‘응보적 정의’에 고착된 데에는 연방마약국의 공이 컸다. 응보적 정의는 공공재정으로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기보다 그 책임을 모두 개인들에게 전가하려는 우익 정치와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칠 때 만연해진다. 공공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저 마약 중독자들을 악마화하고 낙인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보건 의료의 민영화와 규제 축소로 오피오이드 같은 마약성 진통제 시장을 무정부적으로 열어젖힘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은연중 중독시키고, 펜타닐 등 값싼 불법 마약의 세계로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뻔뻔한 자가당착에 놓이게 됐다. 중독을 양산하는 자본주의는 규제하지 않는 대신, 사람들만 잡아 족치는 응보적 시스템에 주춧돌을 놓은 게 바로 해리 앤슬링거와 연방마약국이다.

▲해리 앤슬링거. 미국 DEA 박물관 웹사이트
▲해리 앤슬링거. 미국 DEA 박물관 웹사이트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을 공표한 닉슨 대통령. 영화 ‘Grass’ 트레일러의 한 장면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을 공표한 닉슨 대통령. 영화 ‘Grass’ 트레일러의 한 장면

빌리 홀리데이, 연방마약국이 빚어낸 비극의 희생양

한편으로 해리 앤슬링거는 지독한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그에게 ‘흑인, 재즈, 마약’은 타락의 삼위일체였다. 금주령 시대만 하더라도 대마초가 그렇게 해롭지 않다고 주장하던 그였다. 갑자기 ‘대마초’라는 이름을 ‘마리화나’로 바꾼 것도 마리화나가 멕시코라는 지명과 보다 친화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며, ‘대마초=멕시코’라는 등식을 대중들에게 호도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21세 청년이 마리화나를 흡입하고 도끼로 가족들을 집단 살육했다는 사건을 조작하고 대서특필함으로써 마리화나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데 앞장섰다. 더 나아가 ‘마리화나를 피우면 형제들을 죽이게 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공공연히 퍼뜨리기도 했다.

“마리화나 담배는 흑인들에게 자신들이 백인만큼 잘났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미국에는 총 10만 명의 마리화나 흡연자가 있으며, 대부분은 흑인, 히스패닉, 필리핀인,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사탄 음악, 재즈, 스윙은 마리화나 사용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 마리화나 때문에 백인 여성들이 흑인, 연예인 등 다른 인종과 성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요컨대, 해리 앤슬링거에게 마약과의 전쟁은 재즈를 비롯한 당대의 문화적 자유와 유색인종을 억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현재까지 미국의 마약 정책이 철저히 인종차별에 기반해 있는 것도 해리 앤슬링거의 연방마약국의 기조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단순히 마약과의 전쟁이 아니라, 문화적 자유와의 전쟁, 타 인종과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해리 앤슬링거에게 너무 탐스럽게 반짝이는 열매나 다름없었다. 흑인의 우상 빌리 홀리데이를 헤로인으로 무너뜨리면 재즈와 흑인 모두를 마약과 엮어 낙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연방마약국의 덩치를 키우고 그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쌓아올릴 수 있게 된다. 그 탓에 헤로인을 빌리 홀리데이 소지품에 몰래 집어넣는 함정 수사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에 차디찬 수갑을 찬 채 죽음을 맞이한 빌리 홀리데이의 운명은 연방마약국의 딴따라에 대한 지독한 혐오, 실적 과시에 대한 광기, 인종 혐오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마약과의 전쟁의 철저한 희생양이었다.

치유 아닌 징벌 일변도, 마약수사 놓고 세 겨루기
대중 연예인 표적 삼자 언론이 달려들다

물론 한국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마약 문제에 대해 치유와 회복적 관점이 아니라 사법적 징벌만 횡행한다. 한국의 검경에게 마약에 대한 ‘질병’의 관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2.5%만이 치료의 기회를 가진다. 그저 악마화와 단죄의 채찍질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최근, 경찰의 수사권 조정 이후로 마약 수사를 놓고 검찰과 경찰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던 터였다. 검찰은 수사권 축소로 마약 수사에 차질이 생겼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손발이 잘려 “마약 수사를 위축시켰다”며 이에 가세하는 형국이었다. 경찰로서는 실적의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게 마약과의 전쟁이 확대됐다.

▲지난해 6월 기자들 질의를 듣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지난해 6월 기자들 질의를 듣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아니나 다를까, 증거도 불충분한 상황에서 줄줄이 유명 연예인들을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이 자신들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최적의 본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약의 흔적을 찾겠다며 피를 뽑고 머리카락을 뽑으며 밤샘조사를 시행했다. 물증도 확보하지 않고 피의사실을 공표한 정황이 나오고 공개 출석을 종용해 수차례 포토라인에 서게 했다. 빌리 홀리데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연방마약국처럼, 실적 쌓기와 조직 보위에 눈이 돌아간 채 사정없이 몰아쳤다. 최소한의 인권 보호 규칙 따위도 발로 걷어찼다. 덩달아 언론들은 피 냄새를 맡은 흡혈귀들처럼 달라들어 피의자의 모든 사생활을 물어뜯고, 유튜버들과 대중들 역시 비루한 정의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관음증을 만끽했다. ‘마약과 접촉한 악마’라는 공모된 낙인화가 있기에 이 모든 피비린내나는 폭력의 카니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 관련 보도 갈무리. 포털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지난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 관련 보도 갈무리. 포털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치유와 연결이 아니라 처벌과 고립만 존재하고, 경찰 조직이 조폭들처럼 실적과 조직세 확장에 혈안이 되고, 공적 기능을 상실한 언론들이 좌표를 찍고 달려드는 흡혈귀들이 된 세상에서 대중 연예인은 그렇게 손쉬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연약하고 가장 달콤한 열매가 될 수밖에 없다. 빌리 홀리데이의 저 노래처럼, 대롱대롱 흔들리는 열매가 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교수대에 매달린 채 흔들려야 이 무도의 폭력이 멈추게 될까. 2023년 12월, 재능 넘치던 한 배우의 우주가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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