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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 링크는 서울경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란 단어를 들어보셨습니까. 왠지 세금부터 떠오르지만 여기서 ‘세’는 지질학의 연대 구분법입니다. 현재는 ‘홀로세(Holocene)’인데, 20세기 들어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플라스틱·탄소배출·환경오염 등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에, 그리고 지구 역사에 돌이키기 어려운 흔적을 남기는 ‘인류세’에 접어들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
EBS의 최평순 환경 PD님(사진)이 새로 펴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런 인류세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더 넓은 이야기를 조곤조곤 전해주는 책입니다. 사실 책 앞부분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라들, 실종된 꿀벌, 플라스틱 쓰레기의 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지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용사님도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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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환경 문제를 고민하신 만큼 들려주시는 이야깃거리들이 남다릅니다. 게다가 환경 PD로서 전세계 지구 훼손의 현장(+그리고 대안)을 누비고 그 답을 찾아다니셨다 보니 글로도 생생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제 설득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들이대요. 예의를 갖추면서 외치기 힘든 세상에서 좀 센 말을 하고 싶어요. ‘지나치게 에어컨을 켜는 것은 당신의 자녀를 에어컨 실외기 앞에 앉혀놓는 것이다‘와 같은 말이요.” – 188쪽
책을 읽고 나서 최 PD님께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지구용사님들도 이 아랫부분은 독서 후 읽어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구용 : 그래도 최근 5년 간 환경과 관련해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최 PD님 : 많은 분들의 의식이 서서히 바뀌는 것이 보입니다. 제 부모님만 해도 환경에 크게 관심 없으셨는데 생수병이나 플라스틱 쓰레기에 관심이 커지셨거든요.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심리에 맞춰 변하고 있고요. 하지만 국내외 정책과 규제는 오락가락하네요. 식당·카페의 일회용품을 사실상 허용했다거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당초 결정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도 그렇죠. 플라스틱 폐기물 이슈에 한정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흐름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적·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국내의 변화는 답답합니다. EU 기후변화 감시기구는 지난달 지구 기온이 최초로 산업화 전보다 2도 이상 높았다고 밝혔죠. 일시적 기록이지만 전지구적으로 경종을 울리는 수치와 연구가 이어지는데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책을 쓴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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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플라스틱 포장재가 포함된 제품을 덜 산다거나, 분리배출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착한 소비자’로는 한계가 있죠. 정부나 기업의 역할이 훠얼씬 더 크니까요. 소비자들도 스스로 ‘착한 소비자 운동’을 경계해야 할까요? 개개인들이 얼마나 부담을 져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당연히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변화가 혼자의 수준에 머물면, 힘들게 스스로의 습관을 바꾼 의미가 많이 축소되기 때문에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바꿨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저는 고기는 먹지 않는데, 그럼 주변에서 식사 메뉴를 결정할 때마다 물어봅니다. 왜 대체 고기를 안먹냐. 고기 먹는 나는 나쁜 것이냐 등등.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부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텀블러와 손수건을 쓰고 전기를 아껴 쓰고, 채식을 조금씩 시도하는 것 등등 개인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그 변화를 하는 이유에 대해 주변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촘촘히 연결되어있고, 개인의 변화를 소통으로 나눈다면 그 변화가 사회 차원으로도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변화는 감수성에서 시작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연결된다면 그 감수성은 착한 소비자 운동을 넘어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물꼬가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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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셨고 좌절의 순간들도 적잖으셨을 것 같습니다. PD님도 ‘기후 우울’을 겪은 시기가 있으신가요? 좌절보다 희망을 보기 위한 PD님만의 정신 수양법이 궁금합니다.
▶저는 기후 우울을 겪은 적은 없습니다만,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은 사람을 만나면서 극복합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같은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말을 입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실, 환경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지칠 때가 많아요. 절망적인 상황, 우울한 풍경, 답답한 현실을 마주 보면 힘이 빠지기 쉬워요. 제가 힘을 얻는 곳은 환경 프로그램을 만들며 마주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을 보면 희망이 솟아요.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위해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분들을 보면 힐링이 됩니다. 순수한 분도 많고요. 지구적 문제는 특히 돈이 안 되거나, 주류 담론에서 밀리는 문제가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천착하는 분들을 보면서 배우고 힘을 얻습니다.
▲두 권의 책(2020년작 ‘인류세:인간의 시대’도 절찬리에 판매중!) 모두 전세계 곳곳에서 마주친 이야기들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영상으로, 책으로 만들 계획이신가요?
▶현재 기후 과학에 관한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큐프라임 <날씨의 시대>(가제)인데 2024년 2월에 방송 예정입니다. 기후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날씨로 기후를 느끼잖아요. 그래서 날씨에 초점을 맞춰 기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북극, 아마존, 인도양 등 새로운 현장들을 다니면서 좋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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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특히 대화를 통해 사회 차원의 변화로 확장할 수 있다는 대목,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대목에서 깊이 공감했습니다. 지구를 이 모양으로 만든 것도 징글맞은 사람들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세상이 바뀌고, 그 과정에서 힘들 때 토닥여주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지구에 애정이 큰 분들을 만날 때, 종종 ‘지구용사로서 화나는 순간’을 묻곤 하는데요. 텀블러를 챙기고 채식하는 노력을 깎아내리는 이들 때문에 화난단 답이 정말 많았습니다. 혹시 용사님도 그런 순간이 닥치면, 오늘 최 PD님의 이야기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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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돼 있습니다. 쉽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지구 사랑법을 전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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