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3년은 기상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뜨거워진 지구는 인류에 이전과 다른 극단화된 기후를 보여줬다. 지구촌 곳곳은 전례없는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를 겪었다. 기후위기는 정치, 경제, 산업 등 인류 생활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지난 1년 동안 기후리스크와 국제대응뿐 아니라 기후스튜어드십, 기후테크, 워터리스크 등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산업, 금융 현장의 트렌드들을 취재해 심층 보도했다. 그 중 핵심 이슈를 되짚어 본다. ① 기후재난 심화에도 인류는 허둥지둥, 숙제는 2024년으로 ② 세계 큰손들의 기후행동 본격화, ‘기후스튜어드십‘ ③ ‘워터리스크’ 한국도 예외 아니다, 삼성 등 대응 분주 ④ 물 문제는 이제 국가 안보, 워터리스크 대응에 진심인 국가들 ⑤ 수십조 투자 끌어들이는 시장, 기후테크가 뜬다 ⑥ 묻혀가는 기후위기 대응 법안, 다음 국회서 빛 볼 날 기다린다 |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에 따른 직접적 피해인 물 위험, 워터리스크(Water Risk)가 한국 기업들에도 현실로 다가왔다. 워터리스크란 물이 기업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개념이다.
부족해도, 넘쳐도 문제인 물 문제에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29일 물 관련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올해 워터리스크로 국내 기업들이 받았던 잠재적 재무 영향이 수십조 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단체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질의에 응답한 국내 기업들에 따르면 지난해 이 기업들이 워터리스크로 마주한 잠재적 재무 영향은 13조5900억 원으로 집계됐다.
CDP는 물 경영 수준을 평가하는 ‘워터 시큐리티(Water Security)’, 탄소배출 정보공개 프로그램 등 글로벌 환경 정보공개 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영리기구다.
그런데 올해는 산업 전반에서 물이 우리 기업들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올해 기업들이 워터리스크로 당면했던 잠재적 재무 영향은 지난해 집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철강업계를 보면 지난해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덮친 태풍 힌남노 피해를 복구하고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됐다.
화학업계에서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올해 5월 초까지 1년 가까이 가뭄에 따른 물 부족에 신음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첨단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워터리스크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됐다.
올해 영국 자산운용사 애버딘(Abrdn)은 반도체 기업 투자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워터리스크’를 제시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기후펀드 가운데 하나인 ‘글로벌 기후’환경 펀드’는 7월 말부터 높아진 워터리스크를 이유로 TSMC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8단계로 이뤄진 반도체 공정에는 주요 단계마다 세척, 이온제거 등에 매우 많은 물이 사용된다. 지름이 6인치(약 150mm)인 웨이퍼 한 장을 만드는 데만 무려 1.5톤의 물이 사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삼성전자는 용수 재이용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인근 하천이나 댐에서 추가로 확보하는 취수량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라인 증설에 따라 2030년 DS부문 사업장의 하루 취수 필요량이 2022년 기준 취수량(1억5398만8천 톤)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용수 재이용량을 최대한 늘려 2021년 수준(1억4426만9천 톤)으로 동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취수량을 늘리지 않으면 그만큼 수자원을 반도체 공장이 아닌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지역사회, 국가 차원의 물 관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반도체 기업이 엄청난 양의 물을 쓰는 만큼 폐수를 처리해 내보내는 방류수 관리 역시 중요한 워터리스크로 꼽힌다.
CDP로부터 2022년 물 경영 분야 최우수상을 받은 SK하이닉스는 이천캠퍼스에서 방류수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는 하루 8만여 톤의 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통해 3단계의 과정을 거쳐 방류수를 내보낸다. 단계를 세분화한 것은 유기성 폐수, 무기성 폐수, 산폐수 등을 종류와 상관없이 완벽하게 정화하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는 외부 전문기관과 매월 1회 수질 측정, 매분기 1회 수생태계 변화 관측을 진행하는 등 내보낸 방류수의 수질 관리도 지속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1984년 이천캠퍼스 설립 뒤 깨끗한 방류수를 통해 메말라 있던 죽당천 수량이 늘고 이에 먹이사슬이 갖춰지며 수생태계가 복원됐다.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의 김현정 연구원은 “반도체 시장 확대에 따른 생산 증대는 기업의 물 환경 영향력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평가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적극적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 사용이 많은 반도체업체들의 물 확보 노력은 경기도 용인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용인에는 삼성전자가 300조 원을 투자하는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게 된다.
철강업계 맏형인 포스코는 지난해 포항제철소가 겪은 힌남노 피해의 복구 및 재발 방지에 바쁜 상반기를 보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해 9월6일 힌남노에 따른 냉천 범람 탓에 침수피해를 입었다. 무려 가동 49년 만에 처음으로 고로 가동이 중단됐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피해를 본 지 135일 만인 올해 1월20일 완전 정상 조업 체제에 돌입했다.
이어 올해 5월에는 포항제철소 정문부터 3문까지 1.9km 길이 구간에 차수벽을 세웠다.
일부 구간에서는 차수벽 바깥 배수로 확장 및 내부 배수로 신설 등의 설비개선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포스코는 더 나아가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에서 제한하겠다는 최상의 목표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자연재해 예방, 피해복구, 생산 보호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담은 ‘업무연속계획(BCP)’를 수립했다.
화학업계에서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입주한 여수산단의 가뭄 대응에 고민이 깊은 한 해를 보냈다.
여수산단에 공업용수를 하루 최대 67만 톤 공급하는 주 수원인 주암댐은 지난해 6월27일부터 올해 5월8일까지 300일이 넘는 역대 최장기간 가뭄을 경험했다. 주암댐은 4월 초 역대 최저 저수율인 20.3%를 기록했다.
여수산단 입주 석유화학기업들은 물 사용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초 올해 하반기로 예정됐던 정기보수 일정을 상반기로 앞당기는 방식으로 임시방편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 때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장기화한 가뭄 탓에 공장을 아예 멈춰야 한다는 우려까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5월부터 내린 비로 가뭄은 해갈됐다. 다만 6월 말~7월 말 주암댐 인근에는 900mm가 넘는 역대 최대 장맛비가 내렸다. 1년 사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뭄과 폭우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석유화학업계는 여수산단 가뭄을 주요 경영 리스크로 꼽고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여수산단이 국가산단인 만큼 정부, 지자체 정책과 연계해 하수 재이용 및 해수담수화 설비를 통한 수자원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CDP의 글로벌디렉터인 수 암스트롱 브라운 박사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기후변화가 상어라면 물은 상어의 이빨’이라는 말이 있다”라며 “그만큼 우리는 물을 통해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낀다”며 워터리스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