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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눈물⑤] 악질적 중대범죄 재발 막기 위해서는

투데이신문 조회수  

지난 10월 수원에서는 일가족이 공모한 ‘전세사기’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정모씨 부부는 10여개 법인을 앞세워 수원 일대에서 빌라·오피스텔 등 50여채 건물에서 800여 가구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사들인 뒤 임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전셋값 하락 등으로 이들이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올 11월 기준 정씨 관련해 경찰에 460여건의 고소가 접수됐고, 적시된 피해 금액은 700여억원에 달한다.

피해금액이 2000여억원을 넘는 인천 미추홀구, 대전에 이어 발생한 또 다른 대규모 전세 사건이지만 앞서 발생한 사건보다 피해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삶을 처참히 무너뜨린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 상황과 규모를 비롯해 아무도 몰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5일 진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 동시다발 집회 개최 모습. 각 집회에는 총 800여명 피해자들이 한데 모여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에 의지 없는 국회를 규탄했다.[사진제공=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br /><div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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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진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 동시다발 집회 개최 모습. 각 집회에는 총 800여명 피해자들이 한데 모여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에 의지 없는 국회를 규탄했다.[사진제공=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지난해 서울을 시작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전세사기’ 사태가 올 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수많은 세입자를 어둠의 수렁으로 이끌었다.

전세사기 관련 피해는 인천 미추홀구, 경기도 수원 등 수도권 일대는 물론 대전, 부산 등 각 지역으로도 퍼지며 대한민국을 범죄의 늪으로 빠뜨렸다.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따르면 17차례에 걸쳐 전세사기 사례 1만2537건을 검토한 결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일부를 제외한 인정된 피해자는 지난 20일 기준 1만256명에 달했다.

다만 해당 수치는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들만 집계된 것이지, 추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아직 신청을 못한 사람까지 모두 합하면 그 숫자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사기 사태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피해자 10명 중 7명은 10∼30대 청년층, 즉 사회초년생이라는 사실이 파악돼서다. 막 사회로 발돋움할 때 마주한 범죄 피해 사실에 피해자 중 7명은 결국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이후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 5월 여야는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이하 특별법)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는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6개월마다 점검해 부족한 점을 보완, 개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지만 여야는 정부여당의 긴축재정 방침 등의 문제로 팽팽한 견해차를 보였고, 결국 지난 27일 야당 주도로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가 신경전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피해자들은 경‧공매 해결, 전세대출 상환 압박은 물론 심리적인 고통과 재정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에 본보는 수많은 피해자들 중 수원 지역 △결혼 1년·3년 차 신혼부부 피해자 △40대 가장 피해자 △예비신부 피해자 △두 아이 엄마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사기 피해 규모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묻힐까, 피해구제에서 소외될까 두려워했다. 더욱이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 일가가 고의성이 없었다며 혐의를 지속 부인하고 있어 두려움은 배가 된 상황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수원대책위원회가 지난 10월 13일 경기도 수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및 지자체에 피해자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div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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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수원대책위원회가 지난 10월 13일 경기도 수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및 지자체에 피해자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실질적 피해구제 이뤄져야”…피해자들의 통곡

“법무사, 변호사, 부동산 중개인 등과 상담을 받아도 개인회생 아니면 셀프낙찰이 유일한 답이라고만 하는데, 사실 근데 그 말이 저희한테는 ‘나락으로 가라’라는 말이랑 똑같아요.” (3년 차 신혼부부 피해자 정태훈(가명·34)씨)

“피해자로 인정돼 지원책을 봤는데 모두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했고, 피해자 모두가 지원받을 수 있는 체계가 아니었어요. 관련 간담회에 가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 내용은 자료를 읽기만 하고 넘어간 뒤 경·공매 이야기만 계속 다뤘습니다.” (예비신부 피해자 강소정(가명·27)씨)

본보가 만난 4명의 피해자들은 정부와 지자체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이들은 특별법 제정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인 피해구제 발판이 후속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먼저 피해자들은 사실상 ‘셀프낙찰’과 ‘개인회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토로했다. 피해자가 셀프낙찰을 할 경우 경매를 통해 집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때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할 확률이 높다. 더욱이 구입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을 이중으로 받아야해 또 다른 ‘빚’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개인회생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변제금을 납부하는 동안 최저 생계비로 생활을 해야 하는 등 금융 신용도와 생활에 있어 크게 제한받아 피해자들이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또한 피해자들은 특별법이 제정돼 있어도 법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5월 여야가 극적 합의해 통과한 특별법이 실질적인 대책이 되지 못해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도시연구소 등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피해가구 중 정부의 지원대책을 받고 있는 비율은 17.5%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더불어 지난 6개월간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피해주택 매입실적도 0건으로 나타난 바 있어 반쪽짜리 특별법, 생색내기 지원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제일 원하는 방안은 ‘선(先)구제 후(後) 구상(회수)’다. 해당 방식은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임대인을 대신 먼저 전세보증금을 지원하고 그 금액만큼을 나중에 임대인으로부터 받아내는 순서로 이뤄진다.

최우선변제금도 현저히 낮은 것뿐만 아니라 기준일자가 근저당 기준을 따라가기 때문에 소액 임차인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아 선구제 방식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만일 해당 방식이 세금, 형평성 문제 등으로 어렵다면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정부여당이 전세사기 피해자 및 단체, 여당이 내놓은 대책에 대안 없이 반대만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일부 피해자는 정부가 현재 팔리지 않거나 일부 남는 매물을 LH에서 매입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재임대하는 사업을 하는데, 이 같은 사업을 활용해 피해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했다.

다른 피해자는 정부나 지자체가 최우선변제금이라도 보장해 주려고 노력하고 피해주게 과정에서 부동산, 대출 관련 지식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지원·구제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해 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민원인들이 방문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민원인들이 방문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추징·몰수 보전 조치 전무…가해자 엄벌에 한목소리

“일각에서는 ‘너희가 사기당한 걸 왜 나라에서 구제를 해줘야 하냐’는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이 말이 너무 상처가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사기 피해를 입었는데, 기망하고 속이려 든 사기꾼의 잘못이 맞지 않나요?” (두 아이 엄마 피해자 박연희(26·가명)씨)

“지금 더 큰 문제는 정씨 측에 사기죄 적용이 안 돼 있는데, 이가 성립이 안 되면 특별법 등 적용이 어려울 수도 있고 피해구제에 적절한 경매, 대출 등도 어려울 수 있어요. 반드시 사기죄가 적용돼야 하고 정씨 일가는 물론 사기에 가담한 사람 모두 찾아내야 해요.”(40대 가장 피해자 최성우(가명·47)씨)

전세사기 가해자에게 ‘사기죄’ 등이 적용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전세사기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 부부와 불구속 입건 상태인 아들 정씨 등 3명은 수원지검에 송치된 상태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지난 8일 사기 혐의로 구속한 이들을 수원지검으로 송치했다. 이 사건 관련 고소장은 지난 9월 5일 경찰에 최초 접수됐으며, 이후 접수는 지속 증가해 지난 7일 기준 474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액수는 714억원 상당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수원대책위원회가 정씨 일가 소유 건물 등을 토대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이 사건 총 피해 규모는 12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계됐다.

앞서 정씨는 자기자본을 투자하지 않고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인 일명 ‘무자본 갭투자’로 수원과 화성 일대에서 수십 채의 건물을 매입했다. 이후 임차인 수백 명과 1~2억원대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서 대출금과 임차보증금 합계가 주택 가격을 초과하는 ‘깡통전세’를 놨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씨 부부는 부동산 임대업 법인 등 총 18개의 법인을 구성해 대규모로 임대 사업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아들 정씨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려 임대차 계약을 중개한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정씨 일가의 여죄에 대해 계속 수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이에 더해 정씨 일가가 운영한 부동산 법인 관계자 1명과 해당 사건 임대차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및 중개보조원 45명 등 총 46명을 상대로 경찰 단계에서의 조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정씨 일가가 ‘사기 고의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유지하고 있음에 따라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사기죄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더욱이 정씨 일가가 범죄 수익을 빼돌리는 것을 막는 기소 전 추징·몰수 보전 조치도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의 불안은 배가되고 있다.

현행법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상 사기, 범죄단체조직죄를 저지를 경우 재산 몰수가 가능하지만 정씨 일가가 자행한 전세사기 같은 일반 사기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세사기는 임차인 1명이 5억원 이상 피해를 입는 사례가 드물어 특가법상 사기죄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죄단체조직죄 역시 조직단체가 통솔 체계가 분명하고 구성원들 범행 목적이 같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해 적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정씨 부부의 범죄 수익이 어딘가로 빼돌려질 확률도 높은 상황이다. 여기에 검찰 송치과정에서 정씨 부부는 피해자들 변제 계획에 대해선 끝까지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수원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정모씨가 지난 10월 30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수원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정모씨가 지난 10월 30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또 다른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피해 구제 문턱을 낮추고 사각지대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서 관련 법 및 제도를 보완하고 중개사에 이어 일반 시민들에게도 전세제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종대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는 정부·지자체에 “전세피해자로 인정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운데, 피해자 인정 문턱을 크게 낮춰야 한다”며 “다가구주택의 후순위 임차인, 주택이 아닌 근생,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전세 피해자, 신탁 주택에 신탁사가 아닌 소유자와 임대차계약을 한 피해자 등 사례를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를 발굴·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설사 피해 구제책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라도 각 구제책마다 기존의 대상자 요건을 적용하고 있어 실제 구제책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피해자라면 모든 구제책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제시했다. 먼저 깡통전세가 되지 않도록 일정한 갭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최초 임대차계약 시 집값의 70%(예시)로 전세가의 상한을 정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며 “전세가비율을 직접 규제하기 어렵다면 HUG에서 보증금반환보증 비율을 집값의 70% 상한을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임대차계약 당시 전세권 설정을 의무화한다거나 예를 들어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임대차계약 종료 후 2개월이 지나도록 보증금 미반환될 경우 임차인의 신청에 기해 자동적으로 법원의 명령에 의해 전세권을 등기하도록 하는 방안과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해 임대인이 일정한 현금흐름으로 이러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았다.

부동산R114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공인중개사 윤리 교육 △전세사기 범죄 처벌 강화 △월세 계약 △대국민 홍보 및 교육 등을 재발 방지 대안으로 제안했다.

윤 수석연구원은 “대부분의 임대차 거래는 공인중개사가 개입하다 보니, 우선 중개사의 윤리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며 “되도록 중개사가 임대인, 임차인 양쪽을 대리하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개 중개사가 임대인을 일방적으로 대리하는 경우가 많아 양측을 아우르는 역할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더 나아가 실제 거래 당사자인 국민을 상대로 전세제도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관련 제도 보완을 통해 정부가 전세사기와 같은 서민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한 형벌을 강화해 근절에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으로, 국가적으로 대응을 한다 해도 개개인의 범죄 사실을 미리 파악 및 대응할 수 없을 것을 예상해 보증금을 낮추고, 전세가 아닌 월세 계약 위주로 진행하는 것도 좋다”며 “만일 피해가 노출되도록 그 규모를 낮추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투데이신문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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