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회사·연인…올해의 이별 공유한 ‘잘가 2023’ 모임
“내년엔 성장·사랑·다정·나답게 살기”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게으른 나 자신, 전 여자친구와의 추억, 살, 쿨함, 전 직장에 대한 안 좋은 감정, 내가 맞게 가는 걸까 하는 걱정과 불안. (이별 트리 ‘올해 이별하고 싶은 것은?’ 오너먼트 중 일부)
2023년을 나흘여 남겨둔 27일 오후. ‘올해’와 잘 이별하려는 5명이 서울 서대문구 복합문화공간 넌컨템포에 모였다.
술에 기대지 않는 건강한 이별을 위해 마련된 무알코올 칵테일과 독일식 연말 디저트 슈톨렌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이들은 어떤 2023년을 보냈는지, 또 어떤 2024년을 보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별 커뮤니티 ‘페어웰클럽’ 송모연(27) 대표는 그 자신의 무수한 ‘이별 극복기’를 계기로 모임을 기획했다.
그는 “애인과의 이별이나 퇴사는 물론 룸메이트와 별거를 앞두고도 ‘우리 대화 좀 하자’고 붙잡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며 “‘끊어짐’에 대한 심한 불안으로 상담도 받으며 주고받은 질문들이 도움이 됐는데 이런 경험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직장, 연인, 학교와 이별했지만…새로운 만남도, 성취도 있었다”
이들은 올해 회사, 연인, 학교 등 다양한 대상과 ‘이별’했다고 고백했다.
마케터 겸 에디터 김예은씨는 올해 갑작스러운 정리해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일하던 팀이 사라지면서 회사와는 ‘나쁜 이별’을 했지만 이제 과거는 흘려보내고 미래로 나아가리라 결심했다. 그는 “전 직장에 대한 안 좋은 감정, 일 스트레스로 찐 살과도 이별하고 싶다”며 웃었다.
올해 대학 졸업반인 최현이씨는 연초 ‘작년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다양한 경험하기’란 목표를 세웠다. 현이씨는 “전공인 영상 촬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름 방학 때는 춤 공연도 했다. 최근 졸업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졸업 작품도 공모전 수상을 했다”며 이별을 앞둔 학교에서의 기억을 회고했다.
페어웰클럽 파트너로 모임에 함께 참여한 정혜윤씨는 “상반기까지는 좋은 에너지가 넘쳤는데 7월에 개인적인 일을 겪고서는 오르락내리락하다 연말부터는 무기력해지고 나의 못난 모습들도 마주해야 했다”며 “빨리 2023년을 보내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법. 올해 만난 인연, 새로 시작한 취미, 새로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예은씨는 “올해 소개팅을 세 차례 했는데 두 차례는 애프터 신청을 받고 한 번은 내가 신청해서 결국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면서 “올해 회사는 잃었지만 연애는 얻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프리랜서 마케터 박서현씨는 올해 두 번의 창업 시도를 했다. 역동적인 파도처럼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는 그는 망함 뒤의 흥함을 거듭 경험하며 ‘인생사 새옹지마’란 격언을 몸소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
직장인 손정은씨는 올해 프리다이빙과 차(茶)라는 새 취미를 만들었다. 손씨는 “좋아하는 가수가 간 프리다이빙 여행이 멋있어 보여 프리다이빙을 배우게 됐다. 템플 스테이를 다니면서 스님들이 가진 멋진 다기를 보고 차와 관련한 물욕도 많이 채웠다”고 웃었다.
◇ 다가오는 2024년은…”올해도 나답게, 멋지게”
올해를 돌아본 이들은 2024년을 위한 마음가짐도 다짐했다.
부지런히 졸업반 생활을 하며 자신의 성장 욕구를 깨달았다는 현이씨는 내년에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며 바삐 살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을 한 뒤 에너지 배분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다는 예은씨는 “불태울 땐 불태우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에는 힘을 살짝 빼는 연습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은씨는 올해 목표 중 절반의 성공을 거둔 무역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는 너무 많이 재지 말고 일단 질러보기, 다정하기, 이상적인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기를 내년의 마음가짐으로 삼았다.
서현씨는 올해 프리랜서로서 여러 차례 가치를 ‘후려침’ 당한 경험을 전하며 ‘내 가치 내가 지키기’를 내년 목표 중 하나로 세웠다. 그는 또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나 자신과 더 친해지기’, ‘올해 이별한 만큼 내년에는 진짜 사랑을 만나기’를 소망했다.
혜윤씨는 “내년에도 내 삶의 속도를 지키면서 재밌고 멋지게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올해 이별하고 싶은 목록을 종이에 적어 크리스마스 트리에 오너먼트 형태로 내걸었다. 모임 참석자 외에도 SNS를 통해 사연을 공유한 이들의 이별 물건은 팝업 형태로 오는 30일까지 전시된다.
혜윤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많은 도움이 됐던 게 장례식이었다. 의식을 치를 공간이 마련되니까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기도 하고 이별을 마주할 수 있었다”며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이별들도 의식처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티의 취지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already@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