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저희가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서서 자야겠네요. 어지럽네요 ㅠㅠ”
대법원이 최근 ‘주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하루 최장 21.5시간 노동도 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결한 뒤, 방송스태프들이 스태프 1500여명이 모인 공개SNS방(오픈카톡)에 이 소식을 공유하며 한 말이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이번 판례로 하루 20시간 넘는 살인적 노동환경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주 연장근로 총 20시간’이 일상인 현장에 대한 자조도 나왔다.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노조 드라마스태프지부는 27일 성명을 내고 “대법원 판결은 시대를 역행한다”며 “장시간 노동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방송노동자들이 만들어온 노동환경이 다시 후퇴할 위기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방송스태프지부에 따르면 OTT와 방송 등 드라마 제작 현장엔 이미 ‘하루 13시간, 주 4일’을 일하도록 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주 52시간 노동시간제가 시행된 뒤 이에 맞춰 연장노동을 최대화한 촬영 관행인데, 20시간(52시간에서 4일×8시간을 뺀 값) 연장근로한다는 뜻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일주일간 40시간, 하루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여기에 ‘당사자 간 합의 시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근로기준법과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라 현재의 드라마 촬영 관행은 위법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이를 뒤집어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판결에 따라 ‘조속히’ 행정해석을 변경하겠다고 밝혀 정부가 장시간 노동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방송스태프지부는 “근로감독을 통해 이는 주 12시간 연장근로시간제한을 위반하는 구조임을 여러 번 확인했음에도, 이를 시정할 생각 없이 방송노동자들을 착취해오던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기형적 제작구조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과거의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이 부활할 가능성이다. 방송스태프지부는 “특히 이번 판례로 인해 방송스태프지부가 설립된 이후 사라진 디졸브 촬영, 일 20시간 이상 촬영 등을 제작사가 다시 요구하게 될 것으로 보여 심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3년여 전까지 드라마 촬영 현장엔 일명 ‘디졸브 노동’이 퍼져 있었다. 스태프 노동자들이 영상 연출에서 화면이 서서히 흐려지며 다른 화면으로 전환하는 기법을 뜻하는 ‘디졸브’(dissolve) 처럼, 휴식 없이 밤샘 촬영을 이어가다 쪽잠을 자고 바로 다시 촬영을 이어나가며 출퇴근과 노동·휴게시간 구분이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은어다. 노동조합이 개선을 요구하고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정착하면서 이 관행은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사라져왔다.
김기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이미 드라마 촬영 현장엔 불법 장시간 노동에 제재가 이뤄지지 않던 상황이다. 대법원이 이를 더 악화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 셈이라 현장에 미칠 영향이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지부는 “이미 살인적인 노동시간으로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을 지금보다 더 심각한 장시간 노동으로 떠미는 판결을 내놓았다”며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를 생각하면 이 판결과 민유숙 대법관은 역사적 오명을 남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제작 현장이 지금의 노동환경에서 한 발짝도 후퇴하지 않도록, 그리고 결국 일보 전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온 힘과 수단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6일 논평에서 “이 판결을 기초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노동시간 개악이 날개를 달게 됐다”며 “노동자의 윤택한 삶과 노동자 건강권 확장,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개악 흐름에 규탄과 함께 명백한 반대의 입장을 밝힌다. 민주노총은 ’일일 노동시간 상한 규정‘과 ’11시간 연속 휴식제‘를 실현하는 동시에 치밀하고 집요한 반노동 정책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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