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낙서범 등 검거에 시일 걸리자 ‘증설’ 대두…기기 노후화 지적도
개인정보 무분별 수집 등 우려…전문가 “만병통치약 아냐· 단계별 교체해야”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최원정 기자 = 최근 용의자 검거에 여러 날이 걸리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자 폐쇄회로(CC)TV를 늘려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CCTV를 증설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개인정보 침해를 최소화하고 기기 노후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최근 경복궁 낙서 사건을 계기로 서울 도심 문화재에 대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CCTV를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16일 낙서 피해를 입은 경복궁의 경우 외부 담장에는 CCTV가 14대만 띄엄띄엄 설치돼있어 이를 바탕으로 용의자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모방범행까지 발생하고 용의자 검거가 기대보다 늦어지자 CCTV를 더욱 촘촘히 설치하겠다는 대책이 나온 것이다.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가 병원 치료 중 달아난 김길수도 도주 경로에 CCTV가 많지 않아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특수강도 혐의를 받는 김씨가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자 그의 행방이 묘연했던 사흘간 시민 불안이 커지기도 했다.
수사기관은 CCTV가 범인 검거는 물론이고 범죄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CCTV로 인한 사생활 침해, CCTV 만능화에 따른 인물 식별 오류 같은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국 사이버보안업체 컴패리텍이 세계 주요 대도시 150곳의 공공 CCTV 수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CCTV는 총 14만4천513대로, 인구 1천명당 14.47개꼴이다. 이는 중국, 인도, 싱가포르, 러시아, 이라크의 주요 도시들에 뒤이어 세계 8위 규모다.
많은 CCTV가 한국 치안에 기여하는 면도 크지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약을 키우고 감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CCTV만 있으면 된다는 ‘CCTV 만능주의’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CCTV 영상을 확보하는 경우 CCTV 영상에만 의존해 목격자 진술 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거나, CCTV 대수가 급증하는 동안 모니터링 인력 증가 규모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급한 마음에 CCTV에만 의존해 누군가를 용의자라고 단정해 따라가 잡았는데 아닌 경우 오인 체포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CCTV에 기록된 시간이 틀린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CCTV 노후화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얼굴 식별조차 어려운 저화질 기기를 활용했다가는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시도 통합관제센터에서 운영 중인 CCTV는 모두 54만1018개인데, 이 중 45%인 24만5천255대는 2017년 이전 설치된 노후 CCTV다. 14%에 해당하는 7만6천121대는 2013년 이전에 설치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CCTV 화소나 화각(촬영 영역의 범위)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고, 야간에는 식별에 더욱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CCTV를 무작정 늘리지 말고 ‘양보다 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국내 주요 인구밀집 지역에는 CCTV 대수가 충분히 많기 때문에 더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CCTV는 범인 검거와 치안 유지에 필요악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CCTV를 아무리 많이 늘려도 언제나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CCTV 대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현재 설치된 기기의 화질, 화각, 설치 위치 등을 조사해서 단계별로 교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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