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로 알려진 영국 출신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새 작품이 영국 런던 거리에 공개된 지 한 시간도 안 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난당했다.
영국 비비시(BBC),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지난 22일(현지시각) 낮 12시30분께 런던 남동부 페컴 지구의 한 교차로에 설치되어 있던 뱅크시의 작품을 남성 2명이 공구로 뜯어낸 뒤 훔쳐 달아났다.
앞서 이날 낮 12시께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작품을 찍은 3장의 사진을 올려 자신의 작품임을 확인시켰다. 빨간색 ‘정지’ 표지판 위에 군용 드론 3대가 날아가는 모습이 담긴 작품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뱅크시가 작품을 인증하자마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작품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남성 2명이 나타나더니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가 공구를 이용해 기둥에서 표지판을 거칠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얼굴조차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진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 사람들은 “세상에”, “정말 짜증난다” 등의 말을 하며 탄식했지만 남성들은 뱅크시의 작품을 손에 들고 금세 자취를 감췄다.
사건이 발생하자 런던 경찰은 도로 안전을 위해 ‘정지’ 표지판을 교체했고, 23일 밤에는 남성 1명을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뱅크시 수집가이자 갤러리 관장인 존 브랜들러는 “해당 작품이 경매에 부쳐진다면 그 가치가 50만파운드(약 8억3천만원)에 이를 수 있다”고 비비시에 말했다. 그는 언론의 관심이 작품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며, 가격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뱅크시가 ‘반전’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뱅크시는 우크라이나 등 세계 거리 곳곳을 몰래 찾아가 전쟁, 기아, 난민, 환경, 국가권력 등 인류가 처해 있는 위기의식을 담은 벽화를 선보여왔다. 2017년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벽에 가로막혔다’는 뜻을 가진 미술관 겸 숙박시설인 ‘월드오프’(Walled Off) 호텔을 열었는데 이곳에서도 이번 작품과 비슷한 드론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뱅크시는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가로막는 분리장벽이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을 “세계 최악의 전망을 가진 호텔”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공공 장소에 설치된 뱅크시의 작품은 여러 번 도난당한 바 있다. 뱅크시는 2015년 11월 발생한 파리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2018년 1월 파리 바타클랑 극장 철문에 그림을 그렸는데 2019년 1월 철문이 통째로 도둑맞았다. 이후 용의자들이 붙잡혔고 지난해 30대 남성 3명이 수감됐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수도 키이우 외곽의 건물 벽에 그려진 뱅크시의 벽화를 훔친 혐의로 8명이 구금되기도 했다. 두 작품은 모두 무사히 회수됐다.
한겨레 이유진 기자 /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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