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천재를 품지 못하는 나라② ‘떠돌이 연구생활’ 접고, 영국 건너간 송유근 군 만나보니
천재(天才). 하늘이 내려준 영재라는 뜻으로 어린시절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유한 사람을 일컫는다. 남들보다 일찍 재능을 발견한 영재들이 꾸준히 학습하고 시각을 넓힐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의 목적이다. 하지만 송유근·백강현 등 다수의 영재들은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 길을 잃는다. 한국의 영재 수난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이달 중순 영국 런던에서 서남부로 60㎞ 떨어진 도킹(Dorking)에 위치한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뮬러드우주과학연구소(MSSL). 휴대폰 통신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산속 건물에서 키 181㎝의 건장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장발에 앞머리를 뒤로 바짝 넘긴 사내에게 더이상 소년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8살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고 12살에 대학원 석사에 진학했던 천재소년 송유근 군(26·사진)이었다.
송 군은 “UCL 연구자들과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Sagittarius A) 초거대질량 블랙홀을 연구하고 있다”며 “우리은하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단순 관측하는 게 아니라 이론천체물리 분야에서 설명 불가능한 현상을 설명 가능한 이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군은 지난 8월 방문연구원 소속으로 영국에 건너갔다. 그는 2009년 12살 나이로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대학원 과정에 입학했지만 최장 재학 연한 9년을 넘겨 제적당했다. 9년간 논문표절 의혹, 지도교수 부재 등으로 ‘떠돌이 연구생활’을 하다가 해외 연구자 추천으로 UCL 방문연구원이 됐다. 그는 이런 시련을 전화위복 계기로 삼고 현재 논문 작성에 한창이다.
송 군은 현재 도킹 지역 연구소에서 자전거로 30분 거리 자취방에서 생활 중이다. 화수목은 연구에 전념하고 나머지 시간은 런던에서 열리는 세미나 등에 참여한다고 한다. 현재 MSSL에는 연구자 약 200명이 연구하고 있고 60~70%가 영국에서 공부한 우수인재들이다.
“송유근에 대한 편견 없어…수평적 문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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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군은 “군 제대 이후 (송유근에 대한) 편견 없이 모두 공평하게 연구하려면 해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론천체물리 분야는 팀 단위로 연구하고 싶어도 같이 토의하고 연구할 수 있는 분이 없어 더욱 나오고 싶었던 게 컸다”고 했다.
그는 “연구하는 문화나 과학자들이 소통하는 방식도 크다”며 “한국이 아직 수평적인 분위기라면 영국은 수평적 분위기에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오랜 과학역사가 있어 편견이 덜하고 공정한 편”이라면서 “과학역사가 상대적으로 초창기인 한국도 미래에는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송 군은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데 대해선 “한국에서 연구할 때 쌓아놓은 기반으로 영국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박사 학위는 받지 못했지만 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다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다”며 “저는 단지 시련을 일찍 겪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송 군은 2018년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에서 재학연한(최장 9년) 만료로 제적당했다. 당시 논문 표절 논란에 지도교수가 교체되고 1년 이상 지도교수 없이 공부하는 등 여러 부침을 겪었다. 이후 1년간 대만에서 연구하고 졸업요건인 박사 논문을 썼으나 학위논문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송 군은 향후 박사학위 취득 계획에 대해선 “여러가지 옵션을 검토 중”이라며 “UST에서 모든 교육과 연구를 끝냈기 때문에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빠르게 받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는 결과로 말할 뿐이고 부족하지만 항상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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