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프리랜서’ 신분으로 4년 동안 일하다 해고 통보를 받은 아나운서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KBS로부터 업무 배제를 당하고 법적 다툼한 지 4년 2개월 만에 나온 확정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아나운서 A씨가 KBS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A씨가 KBS의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21일 확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앞서 A씨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A씨에 대한 KBS의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5년 10월부터 강릉KBS와 계약을 맺고 TV·라디오 날씨와 정보 등 프로그램 진행 업무를 하다 이듬해 내부 테스트와 교육을 거쳐 TV와 라디오 뉴스 아나운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8년부터는 KBS춘천이 주말당직자를 파견 요청하면서 KBS춘천(주말)과 강릉(평일)을 오가며 뉴스진행 등 업무를 했다. 그해 말부턴 KBS(춘천방송총국장에 위임)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저녁 9시 TV 메인뉴스 아나운서 업무를 매일 수행했다. 다음해인 2019년 7월 KBS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A씨를 기존 업무에서 배제하고 계약 만료를 통보하자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가 “KBS에 의해 배정된 방송편성표에 따라 KBS의 상당한 지휘감독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왔다”고 지적했다. A씨는 아나운서부 근무배정 회의에 매번 참석했다. 강릉과 춘천에는 정규직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함께 근무했고, 같은 SNS 채팅방에서 소통하며 일정을 공유하고 당직 근무도 함께 수행했다.
정규직과 동일 업무, KBS가 정한 프로 맞춰 출퇴근
A씨의 출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는데, KBS가 배정한 방송프로그램 편성 시각 앞뒤로 출퇴근했다. A씨는 휴가 일정을 KBS에 보고했고, KBS 지시에 따라 다른 정규직 아나운서가 공석인 업무를 대체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A씨가 KBS에 대해 종속 관계인 아나운서 직원이 아니라면 수행하지 않을 업무도 상당 부분 수행해왔다”고 짚었다. A씨는 KBS 방송편성부장 지시에 따라 개국기념식이나 종무식 사회를 봤다. KBS가 기획한 ‘찾아가는 미디어교육강의’ ‘특강 두드림’ 등 행사에서 아나운서들과 분담해 강의를 하고, 방송사 견학을 온 이들에게 특강도 했다. KBS 구성원으로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점을 들며 A씨가 KBS에 실질적으로 전속(전적으로 속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KBS 2년 넘게 A씨를 사용했으므로 A씨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며 “KBS가 들고 있는 ‘기간만료’ 사유는 근로기준법 23조가 말하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바, 이 사건 해고는 부당해고로서 무효”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지역 KBS와 맺은 계약서에 지휘·감독 관련 규정이 없고 실제로도 KBS가 지휘·감독을 한 사정이 없다며 KBS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A씨 승소 판결했고 KBS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쌓이는 판례 “KBS 제대로 복직시키고 고용구조 바꿔야”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하면서 KBS는 A 아나운서를 복직시킬 의무를 진다. A씨를 법률대리한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는 “KBS는 하루 속히 A씨를 발령 내 정규직 아나운서로 근무를 하게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이번 판결은 현재 방송국에서 정규직 근로자와 다름없이 활동하는 많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들도 정규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내용으로, 향후 유사 사건에서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유사한 결론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최근 수년 간 방송사들이 ‘프리랜서’로 사용해온 아나운서들이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쌓여왔다. 아나운서들은 MBC와 광주MBC, 대전MBC, CBS, UBC울산방송, 연합뉴스TV 등 방송사들을 상대로 각급 법원과 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에 법적 다툼을 제기에 ‘노동자성’ 인정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광주MBC와 UBC 등 여러 방송사가 근로계약 회피를 시도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류 변호사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는 건 지난 수십년 동안 방송사가 유지해온 비정상적 고용구조 때문”이라며 “방송사는 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만큼 개별 사례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고착화된 비정규직 중심 고용구조를 과감하게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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