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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사장에게 묻는다 “혹시 KBS를 문화일보로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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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요일, 박민 KBS 새 사장이 머리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과거 KBS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와 ‘생태탕 보도’ 등 4가지가 대표적인 불공정 방송이었다는 것이다. 나와 후임 김의철 사장 시기에 나간 보도였다. 그런데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왜 사과를 하지? 당시 그는 문화일보 직원이었는데, 주제넘은 일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당일 밤 <뉴스9>에서 그대로 받아서 보도했다. 당시 담당 기자나 데스크에게 어떠한 반론 기회도 주지 않고 앵커가 일방적으로 사과방송을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새 사장이 취임한 월요일부터 <뉴스9> 편집과 배열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봐 줄 수 없어 그동안 매일 밤 챙겨보기 위해 9시 5분 전으로 맞춰놓았던 알람을 껐다. 그러다가 주말에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 지난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박민 KBS 사장과 신임 본부장들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KBS 제공
▲ 지난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박민 KBS 사장과 신임 본부장들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KBS 제공

닷새 만에 완전히 드러낸 본색

지난 금요일 국가의 행정시스템이 마비된 대형 재난 상황에서 KBS만 <뉴스9>의 톱을 윤 대통령 소식으로 뽑았다. 지상파는 물론 종편, 심지어 TV조선까지도 당일 메인뉴스에서 이번 국가적 재난을 첫 번째 리포트로 다루었다. 하지만 오직 KBS만 APEC 정상회담을 첫 꼭지로 다루며 대통령의 ‘정상외교’를 홍보했다. 설마 했던 ‘땡윤 뉴스’, 박민의 KBS가 본색을 완전히 드러내는데 1주일이 채 안 걸렸다. 그들이 주장하던 ‘공영방송 정상화’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날 KBS는 국가기간방송의 본분을 내팽개쳤다. 방송법상 ‘국가기간방송’인 KBS는 이에 근거해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상 재난주관방송사로 지정돼 있다.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이 발생했을 때, KBS는 지체 없이 정시 뉴스는 물론 수시로 재난방송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핵심기반’의 하나인 국가의 전산행정망이 마비된 것은 ‘사회재난’에 속한다. 따라서 지난 금요일 KBS는 공영방송의 길에서 확실히 일탈했을 뿐 아니라 국가기간방송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박 사장은 단단히 준비한 듯 임명 받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일을 벌였다. 사장 취임식 전날 저녁, 보직 내정자들(아직 정식 인사발령을 내지 않은 상태였다)로 하여금 제작진에게 편성 변경과 진행자 하차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2TV <더 라이브>를 불방시키고 진행자 최욱 씨에게 더 이상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도 특집으로 대체하고 진행자를 바꿨다. <최강시사>도 마찬가지. 지난 4년 동안 <9시 뉴스>를 진행해 온 앵커도 시청자에게 고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전격 하차 당했다. 이소정 앵커는 KBS 변화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KBS 보도국 내 주요 앵커는 오디션을 거쳐 정해지는 것이 오랜 관례다. 하지만 후임 앵커는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강력한 역풍에 휘말리다

지난 한 주 사장과 그가 임명한 간부들은 권한을 남용했고 방송법(제4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과 사규를 위반했다. 앞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 이러한 무리수는 여기저기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주진우 라이브> 제작진이 거세게 반발하고 이어 라디오 PD들과 시사교양PD들이 ‘비상총회’를 열고 새 사장과 간부들을 규탄했다. <더 라이브> 제작진은 신임 편성본부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입사 13년 차 기자들이 박 사장의 대국민 사과 및 이를 그대로 보도한 <뉴스9>을 향해 실명으로 그 근거가 무엇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전체 기자들이 기자총회를 열어 사장의 ‘보도 사유화’를 질타했다. 또한 KBS홈페이지의 시청자게시판에서도 난리가 났다. <더 라이브>를 갑자기 불방시키고 아예 없애겠다고 하자 시청자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 최경진 KBS시청자위원장이 박 사장이 참석한 시청자위원회에서 방송법 위반과 시청자를 무시한 것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며 경고했다.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질문과 질타에 대해 박민 사장이 뾰족한 답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리고 쿠데타처럼 KBS를 장악하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인사를 못하고 있다. ‘국장임명동의제’를 통해 임명해야 하는 다섯 명의 국장에 대한 인사다. KBS의 보도 및 시사 담당 국장은 소속 부서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사장이 임명할 수 있다. 의결정족수는 재적 과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이다. 하지만 지난 한 주 KBS 사장으로서 보여준 그의 행태는 통과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임명을 강행한다면 노동법을 위반해서 법정에 서야 하고 처벌받을 수 있다. 진퇴양난이다. 아마 지금 그에게 KBS는 거대한 늪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는 KBS를 잘못 봤고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 2023년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한 박민 KBS 사장. 사진=KBS
▲ 2023년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한 박민 KBS 사장. 사진=KBS

왜 진퇴양난에 처했나

첫째, 박민 사장은 KBS를 문화일보로 오인한 모양이다. 그가 일하던 문화일보는 사기업이다. 사주의 언론관이 그대로 기사에 반영되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는 다르다. KBS의 주인은 사주가 아니라 시청자들이다. 이들을 위하여 구성원들은 일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의 제1원칙이 취재 및 제작의 자율성이다. 취재·보도하고 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한다. 사장과 보도본부장, 제작본부장 등 임원은 그 시스템을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일을 할 뿐이다. 내 재임 중 오보 내지는 실수도 있었지만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보도한 적은 없었다. 

둘째, 박 사장은 용산만 바라보느라 시청자를 보지 못했다. 아니 시청자들은 대충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박민과 그가 임명한 간부들이 시사 프로그램에 가한 폭거는 편성규약 위반은 물론 시청자를 무시한 일이었다. <더 라이브>의 경우, 지난 10월 ‘한국 갤럽’의 조사에서 ‘시청자가 좋아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다. 지금 폐지를 반대하는 시청자 청원이 엄청나다. 1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더 라이브> 폐지 반대 또는 박민 사장 퇴진 청원이 지난주 금요일 현재 무려 18건이다. 현재 KBS의 ‘시청자청원제’는 1000명을 넘은 청원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모두가 외눈박이로 용산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안중에 없었다. 시청자 청원제도는 2018년 이후 KBS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시청자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셋째, 박 사장은 KBS가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고 있다. 지금의 KBS는 80년대식의 ‘땡전 뉴스’를 하는 데가 아니다. KBS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환골탈태했다. 구성원들이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내부 민주화와 제작의 자율성을 요구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1990년 4월, 당시 노태우 정권이 청와대 대변인 출신을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보내자 모두가 떨치고 일어나 장장 36일 동안 제작 거부를 결행했다. 이 일은 이후 KBS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2010년 결성된 KBS본부노조는 4차례에 걸쳐 총 274일간의 파업을 했다. 불행했던 KBS의 역사다. 하지만 임금과 복지 향상을 요구한 파업이 아니었다. 오로지 취재 및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방송법에 의거해 노사가 합의한 편성규약을 지키라는 요구였다. 점점 내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게 된 본부노조는 8년 만에 조합원 600명의 소수노조에서 2500명에 육박하는 과반 대표노조가 되었다. 그 기간 중 두 명의 사장이 쫓겨났다. 

박 사장이 지금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행 보도 및 시사 담당 국장 5명에 대한 임명동의제는 지난 KBS의 아픈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서 노사가 합의한 제도다. 노조가 일방적으로 요구해서, 사측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제도가 아니다. 또한 KBS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등으로 추락했던 신뢰를 2018년부터 회복시켰다. 2020년부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시사인, 시사저널 등 대부분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KBS가 외부 조사기관에 의뢰해 분기별로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1분기에 1위를 한 이후 2022년 3-4분기까지 줄곧 1위를 지켰다. 지난해의 ‘바이든-날리면 파동’ 이후 MBC에게 신뢰도 1위를 넘겨줬지만 여전히 2위를 지켜왔다. 

당장 사퇴하는 게 맞다

지난 한 주 박민 사장이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당장 시청자와 KBS 직원들에게 사과해야 마땅하다. 아니, 지금까지 드러난 함량으로 볼 때 즉각 사퇴하는 게 정답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의 답변이나 취임사를 아무리 뜯어봐도 그에게서 KBS의 수신료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역량을 찾아낼 수가 없다. 용산 대통령실이 엉터리 여론 수렴 과정을 통해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밀어붙이면서 KBS 내부에서 혼란이 있었다. 일부에서 당시 집행부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용산과 통한다는 그가 사장이 되면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해결은커녕 1986년에 이어 ‘제2의 시청료(수신료)거부 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시청자들의 분노가 거세다. 지난 한 주 밑천을 다 드러낸 사장을 직원들이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KBS 직원들에 대한 ‘갈라치기’ 전략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BS 직원들을 협박하고 순치하려는 의도로 흘려 온 ‘KBS 2TV 민영화’ 카드도 쓰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4당은 조만간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탄핵시키려 하고 있다. 

▲ 양승동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 양승동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공영방송 KBS의 지난한 역사와 이에 기반한 묵직한 저력을 절대 무시하지 말라. KBS 구성원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과거 10여 년 동안 공정방송을 외치며 급여를 희생하고 총 9달 넘게 제작 거부와 파업을 감행했던 그들이다. 그들은 시민과 시청자의 위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박민 사장은 결국 쫓겨나고 주변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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