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정보 폐해를 말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대통령선거 투표조작설 명예훼손 사건이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폭스뉴스 기자가 많이 보인다”며 “올해 7억 8700만 달러 배상금 때문에 공짜 식사를 거절할 수 없어 왔다”라고 꼬집은 그 사건이다.
사건 개요를 짧게 요약하면 트럼프 측 인사들이 2020년 대선 당시 폭스뉴스에 출연해 도미니언보팅시스템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선거를 도둑맞았다’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 도미니언보팅시스템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결과 1조 원의 배상에 합의한 내용이다.
우리 언론은 수정헌법 1조가 상징하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언론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가짜뉴스’ 폐해를 강조하는 사례로 종종 언급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허위조작정보를 퍼뜨린 언론사의 배상 책임을 어떻게 입증했는지 그 과정이 핵심이다.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때려잡기’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폭스뉴스는 기자가 허위 주장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고 트럼프 측 인사들의 투표조작설을 전달했을 뿐이며 사실로 단정하지 않은 의혹을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나온 증거는 폭스뉴스 주장을 탄핵했다.
첫째, 도미니언보팅시스템 알고리즘은 조작이 불가능하며 문제가 없음을 여러 전문가를 통해 검증했다. 둘째, 폭스뉴스가 이런 허위 사실을 알고도 음모론을 확산시켰다는 것이 법정에서 폭로됐다.
폭스뉴스 진행자들은 투표조작설 방송을 하면서 ‘제정신이 아니다’, ‘진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이런 사실은 도미니언보팅시스템사가 폭스뉴스 직원들에게 수천개 이메일을 보내 허위 사실을 광범위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모으면서 드러났다.
허위조작정보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처럼 허위사실에 대한 이견 없는 검증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하며 언론이 허위임을 알고도 보도했다는 ‘사실상의 악의’를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즉 허위조작정보라고 최종 판단해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것은 증거를 바탕으로 한 흔들리지 않는 법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 가짜뉴스라고 지목된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 보도에선 입증된 것이 없다. 녹취 보도의 핵심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을 대검 중수부가 수사할 때 왜 대장동 사업 부실 대출 건은 수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혹인데 허위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뉴스타파가 이런 의혹이 허위라고 인식했다는 정황도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김만배와 신학림 사이 허위로 인터뷰를 조작했다는 대화 내용이라도 나와야하지 않겠나. 검찰이 두가지를 입증해야지만 허위조작정보를 퍼뜨린 언론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뉴스타파에 대한 시정요구를 포기하고 서울시에 신문법 위반 검토를 요청한 것도 법적 근거가 없음을 실토한 셈이다. 방통심의위는 뉴스타파 보도를 정보통신망법을 적용해 “선거에 혼란을 줬다는 점에서 사회혼란 정보로 본다”고 주장한다. 이미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시정요구를 한다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방심위 결정 사항이 향후 위법으로 드러나면 인터넷언론 심의 제재 냄새라도 풍길 수조차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 직원들조차도 심의 제재 근거가 없다며 고충을 토로하겠는가.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방심위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서울시의 일관된 입장은 수사 결과를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재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니 핑퐁게임처럼 제재의 주체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간단하다. 공익적 목적의 정당한 보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로 보여주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가짜뉴스 제재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때려잡는 것이고, 압수수색과 같은 수사 방식은 정권의 협박일 뿐이다. 가짜뉴스 문제에 있어서도 ‘윤석열식 법치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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