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취임 후 처음으로 노후주거 정비사업장을 찾아 “도심에 더 많은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재개발·재건축 사업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정비사업 심의 강화로 주택 공급에 한계가 드러나 주택시장 과열 양상이 빚어진 만큼,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동시에 추진해 시장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대통령의 공급 확대 시그널은 공급난 해소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시 중랑구 중화2동의 모아타운 현장을 점검한 뒤 전문가 및 주민들과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등 노후주거지 정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모아타운에 들어설 모아주택은 재개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저층주거지를 소규모로 정비하는 사업이다. 서울시의 종전 사업인 ‘가로주택 정비사업’과 비슷하지만 대지면적 기준을 대폭 완화해 저층 다세대 주택, 다가구 주택을 모아 하나의 단지로 새로 짓는 게 핵심이다. 기존 사업 방식과 달리 개발 기한도 절반 이상 단축돼 단기간 내 도심 내 주택공급이 가능하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노후주거지 개발사업장을 찾아 “30년 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노후 주택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편이 큰 만큼 편안하고 안전한 주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기간에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지를 찾았고, 취임 후 영구임대주택을 찾아 임차인의 보증금 보호 강화 방안을 지시한 바 있지만 도심 내 주택공급을 위해서는 기본 공급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실제 정부는 5년간 270만 가구(인·허가 기준) 공급이라는 로드맵을 세운 상태다. 수요층에 맞춰 신규 공급 물량은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50만 가구)을 포함해 수도권에서만 158만가구가 공급된다. 2018~2022년과 비교해 서울은 18만 가구, 수도권은 29만 가구 공급이 늘어난다.
수도권 내 대기 수요층은 서울 등 도심에서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해 공급될 52만 가구에 주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재건축 활성화 차원에서 재건축 부담금(재건축으로 상승한 주택 가격 일부를 환수하는 제도)을 완화했고 안전진단 기준도 낮춘 만큼 지난 정부와 다른 원활한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 역시 주민과 만나 소규모 정비사업의 필요성, 과도한 재개발·재건축 규제 및 사업 지연에 따른 주민 고충, 도심 주택공급 확대 필요성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공급 확대’, ‘규제 완화’ 등 2개 축에 따른 시장에서의 반응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5년간 65건에 불과했던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올 한해에만 163건이 통과됐고, 연평균 2만8000가구에 불과했던 정비구역 지정도 올해는 6만2000가구로 2배 넘게 증가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의 현장 방문과 정비사업 절차 완화에 대한 ‘원점 재검토’ 지시로, 시장에서 우려하는 공급난에 따른 부작용은 사전 차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8월까지 전국의 주택 착공 물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절반 이상 감소한 상황으로, 인허가 물량까지 40% 가까이 줄어 향후 2~3년 내 공급 절벽이 우려된다. 통상 주택은 착공 이후 2~3년, 인허가 3~5년 뒤 공급(입주)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2~3년 뒤 공급난이 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새 국토부 장관에 지명된 박상우 후보자 역시 ‘3기 신도시 공급 속도’와 함께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거듭 약속했다. 10년 만에 국토부 출신으로 장관에 지명된 박 후보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지금 부동산 시장이 제가 판단하기에는 굉장히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상황이라 기본적으로 규제 완화의 입장을 갖고 시장을 대하도록 하겠다”고 예고했다. 박 후보자는 과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을 맡을 당시에도 서울 강남 3구의 투기과열지구 해제,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일시 면제 등 규제 완화 정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모아타운 방문에 앞서 중랑구의 한 다세대 주택을 찾아 거주 중인 독거 어르신을 살피고 소외계층에 대한 한파 대비 보호 대책을 점검했다. 지난 17일 “한파에 대비해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과 돌봄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지 나흘 만에 현장을 직접 찾은 것으로 동행한 생활지원사의 노고를 격려하며 약자 복지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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