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특정감사 중간결과 발표…117건·60억원 부정수급 확인
부정수급자에 ‘부당이득 배액 징수·장해등급 재결정·형사고발’
이정식 장관 “산재 보상 부조리 발본색원할 것”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병원에서 일하는 A씨는 집에서 넘어져 다쳤지만, 병원 관계자에게 사무실에서 넘어진 것으로 거짓 진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산업재해보험 보상금 5천만원을 받아 챙겼다.
추락 사고로 양하지 완전마비 판정을 받은 B씨도 산재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 없이 걷는 것은 물론 쪼그려 앉을 수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산재 나이롱 환자’, ‘산재 카르텔’ 등의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1일부터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를 벌이고 20일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 ‘술 먹고 다쳤는데’ 산재보험금…요양급여 타면서 일 하기도
노동부는 각종 신고시스템 등을 통해 접수되거나 자체 인지한 부정수급 의심 사례 320건을 조사해 현재까지 조사가 완료된 178건 중 117건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부정수급 적발액은 60억3천100만원이었다.
사례 중엔 A씨 경우처럼 산재 신청·승인 단계에서 재해자 단독으로 혹은 사업자와 공모해 사적으로 발생한 사고를 업무 중 다친 것으로 조작한 경우가 있었다.
한 배달업무 종사자는 업무와 관계없는 음주운전 사고로 다친 후 산재 요양을 신청해 1천만원을 받기도 했다.
장해 진단과 등급 심사에서 등급을 높이기 위해 장해 상태를 과장하거나 허위로 조작한 사례들, 요양 기간에 휴업급여를 수령하면서 다른 일을 하고 타인 명의로 급여를 받는 사례들도 적발됐다.
목공인 C씨는 골절 등으로 4천여만원을 수령했는데, 요양 기간에 본인이 공사를 계약하고 사업을 운영했음에도 휴업급여를 청구한 것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에 대해 부당이득 배액 징수, 장해등급 재결정,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 장기요양 ‘나이롱 환자’ 419명 적발해 치료 종결
이번 감사에서 노동부는 부정수급 적발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기요양환자들도 집중 점검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개월 이상 요양환자가 전체의 47.6%, 1년 이상 환자가 29.5%에 달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에 장기요양 환자 진료계획서를 재심사하도록 했고, 그 결과 1천539명 중 419명에 대해 요양 연장을 하지 않고 치료종결 결정을 했다.
노동부는 병원에서 합리적 기준 없이 진료 기간을 장기로 설정하고, 승인권자인 근로복지공단이 관리를 느슨하게 한 것이 불필요한 장기요양환자를 만들어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근로복지공단의 진료계획서 연장 승인율은 99%였다.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해 20∼30개 상병(傷病)을 한꺼번에 신청하기도 했다.
재해자 입장에서는 산재 승인의 경제적 보상이 상당하기 때문에 과도한 신청을 통해 상병 인정 가능성을 높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 연말까지 감사 후 제도 개선…”산재 부조리 발본색원”
이번 특정감사는 올해 국정감사 등에서 산재 나이롱 환자나 산재 카르텔로 인해 산재보험 재정이 샌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이런 문제 제기는 지난 정부에서 산재 문턱이 낮아져 나이롱 환자 등이 급증했다는 주장이 바탕이 됐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입증 책임을 완화해 인정 범위도 대폭 넓혔다”며 “그 결과 작년말 기준 최근 5년간 업무상 ‘사고’에 따른 산재 승인 신청 건은 41% 증가한 데 비해, 업무상 ‘질병’ 산재 승인 신청 건은 147%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무상 질병은 산재로 승인받기 어렵지만, 승인을 받으면 경제적 보상이 상당해 부정수급 유발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부정수급 뒤에 근로복지공단을 포함한 조직적인 ‘카르텔’ 세력이 있다는 의혹도 나왔지만, 노동부는 일단 이번 중간결과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하진 않았다.
이 장관은 “산재 카르텔 가능성에 대해서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며 “아직 감사 중이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워낙 커서 중간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고 그것(산재 카르텔)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노동부는 근골격계 등 일부 질병에 대해 현장조사를 생략하는 ‘추정의 원칙’ 적용을 놓고 문제가 제기된 사항도 검토 중이다.
‘추정의 원칙’은 작업 기간과 위험요소 노출량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현장조사를 생략하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처리 기간을 단축한다는 취지지만, 무분별한 산재 승인을 유발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특정감사 기간을 한 달 연장해 이달 말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이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산재 부정수급과 제도상 미비점은 기금의 재정건정성 악화로 이어지고,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이 될 것”이라며 “철저히 조사해 부정수급을 포함한 산재 보상 관련 부조리를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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