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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산재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기관, 환자, 병원 간 유착으로 요약되는 일명 산재 카르텔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 의혹은 여당이 제기하면서 노동계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부는 산재 승인과 관리 과정의 허술함을 발견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에 대한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재 카르텔 가능성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산재 카르텔 정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고용부의 특정감사는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한다. 고용부는 올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산재 위장 급여 수급, 산재 인정 기준 적정, 보상(요양비, 휴업급여) 수준 적정 등 산재보험 제도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감사 인력을 투입했다.
감사의 중간 결과는 환자가 산재를 당한 것처럼 병원과 공단을 속일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찾은 데 의의가 있다. 고용부는 부정수급 의심 건수 320건 중 178건을 조사한 결과 117건에서 부정수급을 확인했다. 부정수급 금액은 약 60억3100만원이다. 산재 신청 및 승인단계에서 근로자 개인 또는 사업자와 공모를 통해 사적 사고를 산재로 둔갑시킨 경우가 있었다. 산재 요양단계에서 장해등급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만들어 부정수급을 한 경우도 적발됐다. 장기요양제도를 악용한 환자들도 대거 적발됐다. 고용부는 419명에 대해 장기요양 연장을 하지 않고 치료 종결 결정을 내렸다.
이 상황은 산재 승인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관리 미흡이 일차적인 원인이란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 동시에 산재를 치료하고 직장을 복귀하기 보다 요양 기간을 늘리려는 환자들도 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경영계에서는 산재승인 문턱이 너무 낮아 이 결과가 일어났다는 비판도 한다.
고용부는 연말까지 감사를 하면서 부정수급 사례를 더 적발할 방침이다. 이후 산재보험제도의 관리 허점을 메꿀 제도 보완에 나선다. 이 장관은 “산재보험 부정수급을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한 현장 감독에 집중하겠다”며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산재보상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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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산재보상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산재 카르텔과 같이 산재 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쓴 데다 산재 인정 문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부 국감에서 한 여당 의원은 “소위 산재 카르텔로 부당 보험급여가 누수되고 있다, 나이롱 환자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못 막으면 건전재정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21일 연 산재환자 증언대회에서는 이런 인식과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동영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부지회장은 “작업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병원 치료를 받는 산재 환자를 나이롱 환자로 인식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학교급식일을 하는 정경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장은 “개인이 산재를 입증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며 “내가 빠지면 내 일을 동료가 한다는 생각에 산재신청도 미룬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현재도 산재 인정이 어려운 제도적 한계를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낸다. 산재 인정이 어려워지면 산재 은폐에서 안전관리 허술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일어날 수 있다. 2019년 공공운수노조 실태조사를 보면 16%는 업무 중 다쳤다. 그런데 산재보험 치료는 15.1%에 그쳤다. 68.6%는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했다. 2020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11만~13만여명이 산재를 인정받고 있다. 일하다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이모씨는 “신청 1년 만에 산재로 인정돼 휴업급여가 큰 도움이 됐다”며 “우리는 나이롱 환자가 아니다, 존재를 부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딸의 뇌종양 산재 신청과 인정 과정을 설명한 김모씨는 “2009년 산재 신청 후 여섯 번의 불승인 끝에 2019년 산재로 인정됐다”며 “산재 나이롱 환자 탓에 혈세가 샌다는 말에 산재 가족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A씨와 아버지를 추락사고로 잃은 아들 B씨도 생계난을 고인의 유족급여로 이겨냈다고 전했다. B씨는 “대통령실 발언은 유족에게, 치료를 받는 사람과 가족에게도 모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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