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20일 국회 본회의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쟁점 사안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주 윤석열 정부 ‘2기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예고돼 있어 여야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상 초유의 ‘단독 예산안’ 처리까지 예고하고 있어 연말 정국이 더욱 차갑게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를 시작으로 19일 기획재정부·해양수산부, 20일 국토교통부, 21일 중소벤처기업부·국가보훈부 등 부처별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은 오는 27일 여는 것으로 이날 오전 결정됐다. 특히 전날 대통령실이 교체를 발표한 방문규 산업부 장관의 경우 임명 3개월 만에 ‘총선 차출’을 염두에 둔 개각으로 평가되며, 야당의 비판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개각을 둘러싼 격돌은 예산안 처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오는 20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총예산 656조9000억원 가운데 56조9000억원 규모의 쟁점 항목을 놓고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현재 정부 및 사정기관 특수활동비와 연구개발(R&D), 새만금 등 예산을 놓고 대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특활비를 대폭 줄여 R&D 예산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건전 재정’ 기조를 내세워 맞고 있다. 특히 여당은 지역사랑상품권 등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에 대한 순증액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대 최장 ‘지각 처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여당은 20일 본회의에서 예산안 처리가 불발될 경우 ‘준예산 사태’를 막기 위해 오는 28일 본회의를 마지노선으로 잡겠다는 계획이지만, 야당이 이 구상을 따라줄 가능성은 작다. 민주당은 28일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을 비롯한 쌍특검법과 국정조사 요구안을 강행 처리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예산안을 처리하자고 당부하는 게 상식에 맞느냐”며 “일정 내에 협의가 안 된다면 민주당이 준비한 수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민주당이 정부·여당과 합의 없이 예산안 처리를 강행하게 된다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에 의한 예산안 통과다.
민주당은 이날 역시 정부의 ‘총선용 개각’을 비판하며 정부·여당의 책임을 거듭 따졌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잇따른 개각을 거론하며 “국정 동력을 온통 여당 줄 세우기, 내각 차출, 친윤 사당화에 쏟고 있으니 국정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예산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권력기관 특활비나 순방비용 등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서라도 R&D 투자에 나서는 것이 정부 책임”이라며 “대한민국 발등을 찍을 삭감 집착, 당장 버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번주가 ‘인사청문회 시즌’인데 하나같이 부적격자를 보내놓고 청문회를 하라고 하니 상당히 고통스럽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특혜 의혹이 있는 사람, 논문 표절, 심지어 ‘박근혜 국정농단’ 연루 의혹까지 부적격 사유도 다양하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공급망 불안 해소 등 산적한 현안에도 방문규 산업부 장관을 교체한다고 발표했다”며 “엑스포 실패와 참담한 국격 추락을 경험하게 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경질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2기 내각 인사청문회에 대한 언급, 특히 (방문규 장관 교체에) 내각 임명이 ‘총선 스펙용’, ‘총선 명함용’이냐 하는 비판이 많았다”며 “음주운전, 논문 표절, 다운 계약서 의혹, 폭력 등 여러 문제로 점철된 인사들에 대한 사실관계를 철저히 국민들께 알릴 것”이라고 했다. 예산에 대해서는 “오늘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제대로 정리가 안 되면 수정안을 (단독) 통과시키는 방안도 유력한 수단 중 하나로 검토됐다”고 설명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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