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정치X파일’은 한국 정치의 선거 결과와 사건·사고에 기록된 ‘역대급 사연’을 전하는 연재 기획물입니다.
플라톤이 언급한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 대서양 어딘가에 있던 섬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는 그 전설은 공상과학 만화에 자주 등장했다. 지상낙원은 정말로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을까. 아틀란티스를 정말 찾아갈 수 있을까. 수많은 이가 아틀란티스와 관련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웠다.
정치에도 아틀란티스와 같은 존재가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 등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중도 섬’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지향한다는 중도. 주인이 없는 그 섬을 차지한 이가 양당 체제를 깨뜨릴 수 있다는 정치 시나리오다.
이른바 중도론은 전설의 아틀란티스보다는 현실적이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대체로 진보 3, 보수 3, 중도&무응답 4 등의 비율로 나온다. 진보와 보수 비율은 여론조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중도는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30~40% 비율을 보인다.
중도의 지향에 맞는 정당이 탄생한다면 정치의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역대 총선에서 신생정당은 신기루처럼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았던 중도의 섬을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났다.
그렇다면 중도의 섬에 실제로 도달해 총선의 파란을 일으킨 정당이 있었을까. 역대 총선 역사를 되짚어보면 1992년 제14대 총선 당시 통일국민당 그리고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 등이 양당 체제를 흔들면서 제3당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통일국민당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라는 거대한 산이 버텨준 덕분에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도를 공략한 전략보다는 정치 지도자 역량이 민심을 움직였다는 얘기다.
국민의당 역시 정치적으로 중도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호남 몰표를 토대로 총선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국민의당은 25명의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했는데 23명이 호남 지역구였다. 이념 지향점보다는 지역 기반이 총선 선전 배경이라는 의미다.
대다수 신생 정당은 양당 체제 혁파를 창당의 명분으로 삼지만, 대부분은 실패로 귀결한다. 이는 현실 정치와 중도론의 상관관계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국민의 보편적인 정치 인식을 살피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여론조사는 전체 국민의 정치 의사를 반영하고자 설계되지만, 실제 선거는 투표 참여자와 불참자가 나눠진다. 선거 결과는 투표에 참여한 이들의 표심을 토대로 좌우된다.
진보와 보수의 적극 투표층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선거에 참여해 자기 정치 의사를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정치 무관심층이나 저관여층은 적극적으로 투표 의사를 표출하기보다 투표 불참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대 총선 투표율을 살펴본다면 유권자 3명 중 적어도 1명 이상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 총선인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전국 투표율은 66.2%로 집계됐다. 유권자 3분의 2에 해당하는 투표율 66.6%보다 다소 낮은 수치다. 흥미로운 점은 2000년 이후 치른 역대 총선 가운데 2020년 총선 투표율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역대 총선 투표율을 살펴보면 2000년 제16대 총선 57.2%, 2004년 제17대 총선 60.6%, 2008년 제18대 총선 46.1%, 2012년 제19대 총선 54.2%, 2016년 제20대 총선 58.0%, 2020년 제21대 총선 66.2% 등이다.
제17대 총선과 제21대 총선 투표율만 60%가 넘었다. 제18대 총선에서는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선거 때마다 우후죽순 생기는 신당이 중도의 섬을 찾아 도전에 나서지만,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투표에 불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기존의 양당 체제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변수는 있다. 총선에서 사전투표제가 시작된 2016년 이후 투표율은 상승곡선을 보인다는 점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제22대 총선에서 지난 총선 투표율(66%)을 한참 넘어서는 결과를 보인다면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던 유권자들의 영향력은 커질 수 있다.
이는 중도의 표심을 공략하던 정당에 유리한 환경 변화다. 내년 총선을 가르는 여러 변수 가운데 투표율을 꼽는 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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