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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의심 사고 느는데 제조사 결함은 ‘0건’…쟁점은

아시아경제 조회수  

편집자주차량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순간 가속력이 뛰어난 전기차 보급까지 늘면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우려를 넘어 공포가 되고 있다. 피해자는 차량 결함을 입증하기엔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비판한다. 제조사는 단순 운전자의 오작동까지도 급발진 사고로 둔갑할 수 있다며 제도의 오남용을 지적한다. 본지는 급발진 의심 사고 논란의 원인, 원인 규명 가능성, 궁극적인 대안과 대처요령을 정리해본다. 이를 통해 결론 없이 되풀이되는 피해자와 제조사 사이의 논쟁을 해결할만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저는 급발진 사고가 ‘귀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실제로 보고 경험한 사람은 있는데 실체가 없어요. 과학적인 입증이 그만큼 어렵다는 거죠.”

20년 넘게 교통사고 조사 분야에서 일한 차량 기술사의 얘기다. 전문가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과학적인 원인 규명은 현재 기술로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들은 제조사의 이익을 위해 규명을 피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있다고 주장한다.

사고 이후 법정 공방에서도 마찬가지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나면 민사·형사 소송이 동시에 진행된다. 민사 소송에선 운전자가 제조사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 차량 결함을 입증해야 한다. 형사 사건에선 검사가 운전자의 과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민사소송에서 제조사 책임도 아니고 형사사건에서 운전자 책임도 아닌 모호한 사건들이 있다. 이 회색지대에 있는 사건을 규명하고 책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다.


사고기록장치(EDR)는 믿을만한가?

우선 EDR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피해자들은 급발진 의심 차량의 경우 전자제어장치(ECU)도 고장난 상태인데 과연 EDR의 기록을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ECU는 사람으로 치면 뇌에 해당하는 장치다. 뇌가 다친 사람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있겠냐는 식이다. 반면 제조사는 사고 당시 ECU가 고장났다는 증거 또한 찾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어떠한 증거를 가져와도 운전자는 ‘믿고 싶지 않은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물론 EDR의 신뢰성이 100% 담보된 건 아니다. 하지만 법원은 여전히 EDR 기록을 소송의 주요 증거자료로 채택하고 있다. 때문에 소비자와 제조사 양측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EDR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는 현재 15개인 EDR 필수 기록 항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엔 브레이크 작동 ON/OFF만 기록됐다면 이제는 브레이크를 밟는 힘의 강도를 나타내는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 같은 세부 내역까지 추가한다는 복안이다. 페달 블랙박스 도입 확대·권고도 검토 중이다. EDR 기록에 의구심이 생길 경우 운전자의 발을 찍는 페달 블랙박스 영상과 EDR 기록을 대조해볼 수 있다.


제조사는 급발진 사고를 규명할 수 있을까?

급발진 의심 차량 운전자는 차량 결함 책임 입증을 제조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에 비해 관련 정보 전문·접근성이 뛰어난 제조사가 역으로 ‘결함이 없음’을 밝혀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에선 이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차량 결함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도요타가 미국에서 2009~2011년 시행한 대규모 리콜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자들은 엔진 공기 유입량을 조절하는 스로틀밸브의 제어 장치 고장이라고 주장했지만 도요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도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의뢰해 전자제어장치 결함을 밝히려고 애썼으나 2011년 끝내 도요타의 무죄로 종결됐다. 결국 도요타는 전자장비의 결함이 아닌 가속 페달이 바닥 매트에 끼어 올라오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하며 자체 리콜을 실시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법원에서 의미있는 평결이 나왔다. 배심원단은 급발진 사고 유족이 도요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에게 3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사고의 원인이 차량 전자장치 결함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법원이 인정한 것. 이 사실을 밝힌 주체는 제조사도 미국 정부도 아닌 민간 소프트웨어 컨설팅업체 바(BARR) 그룹이었다. 이같은 사례에서 볼 때 급발진 사고의 입증 책임 전환의 실효성은 따져봐야 할 문제다. 소송 당사자인 운전자·제조사의 참여보다는 제3의 민간 조사 자문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궁극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과학적인 사고조사 기법의 고도화, 운전자의 오조작 가능성을 줄이는 사고 예방 캠페인, 첨단 안전장치 장착 지원, 안전장치 의무화 확대 등을 꼽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3~2018년 발생한 급발진 추정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전체 269건 중 76%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였다. 운전자의 실수로 인한 사고 비중만 낮춰도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페달 오조작 사고 방지를 위한 국제 규범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엔 산하 WP29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관련 전문가 기술 그룹이 꾸려졌다. 내년 5월 신규 UN 기준 문서 제출을 목표로 논의 중이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2017년부터 고령 운전자를 위한 ‘서포트카’ 구매 보조금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서포트카에는 비상자동제동장치(AEBS)와 페달 조작 오류로 인한 급발진 억제장치 등이 탑재된다. 지난해 5월부터는 고령 운전자가 AEBS가 장착된 차량에 한해서만 운전하도록 허용하는 ‘한정 면허’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급발진 사고의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은 만큼 소비자와 제조사 간의 절충안을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며 “페달 블랙박스나 자동차 엔진·전자장비 셧다운 버튼 등 기술적인 보완 방법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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