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넉 달 전 “통합·포용·자중자애” 외치며 물러난 김기현
‘보수위기론’ 속 선거 목전 사퇴한 최병렬·홍준표 사례 판박이
총선 기사회생까지 이어갈까…중진·주류 후속 움직임 주목
(서울=연합뉴스) 류미나 안채원 기자 =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1일 내년 4월 총선 넉 달 남기고 물러나면서 17대, 19대 총선 당시 보수 정당에서 반복된 ‘주류 용퇴’ 릴레이를 떠올리게 한다. 일종의 ‘데자뷔’인 셈이다.
김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입장문을 통해 “우리 당 구성원 모두가 통합과 포용의 마음으로 자중자애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을 더 모았으면 좋겠다”고 밝히며 사퇴를 선언했다.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혁신위원회 조기 해산 등으로 내년 총선 위기감이 고조되며 책임론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대표직 사퇴로 일단 배수의 진을 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김 대표는 아직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여러모로 19대 총선 때와 상황이 흡사하다는 평이다.
2011년 7월 출범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체제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로 넘어갔다.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 간 계파 다툼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다.
홍준표 당시 대표는 그해 12월 19일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 모두 힘을 합쳐야만 총·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전격 사퇴했다. 취임 5개월 만이자, 이듬해 4·11 총선을 넉 달 남긴 상황이었다.
이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내리 4선을 한 대구 달서 출마를 반려하고 비례대표 11번으로 나섰고, 이는 홍 전 대표를 포함한 친이계 핵심과 원로들의 불출마 선언으로도 이어졌다.
당대표직 사퇴 당시 지역구 출마 여부에 대해 입장을 보류했던 홍 전 대표는 역시 이 과정에서 ‘공천 포기’ 선언 후 당에 거취를 일임하는 형식으로 불출마 행렬에 동참했다.
이후 박근혜 비대위는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이듬해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홍 전 대표 개인도 당과 조율을 통해 자신의 지역구이던 서울 동대문을에 재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같은 해 하반기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앞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속에서 4·15 총선을 맞았던 한나라당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점증하는 보수위기론 속에 최병렬 당시 당대표를 포함한 ‘정권 실세’ 인사들의 퇴진이 긍정적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사후에 나왔다.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대표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 등으로 ‘부패원조당’, ‘경로당’ 등의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극심한 상황이었다.
최 대표는 2004년 3월 23일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당시 “어쨌든 국민 지지도가 내려가고 총선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이 오게 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당대표가 취임 9개월 만에, 그것도 총선이 한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미 같은해 1∼3월 박관용 강삼재 등 중진 의원 26명이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후 최 대표, 서청원 전 대표 등이 공천 심사 과정에서 대거 탈락했다.
탄핵 역풍과 부패 스캔들 속에 신음하던 당은 그러나 총선을 통해 ‘기사회생’했다는 평가다.
끝내 1당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비례대표 포함 121석을 확보했고, 박근혜 새 대표의 지휘 아래 84일간의 천막당사 시절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당초 목표했던 개헌저지 의석을 넘기는 등 ‘최악의 위기’를 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혁공천’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대표의 사퇴로 내년 4월 총선에서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 당내 인사는 통화에서 “김 대표의 사퇴가 쇄신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원로, 중진, 선배들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inar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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