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했던’ 35세 김오랑의 죽음이, 김오랑의 영혼이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정의를 위해 싸울 용기를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치인 유승민이 12일 경남 김해의 고(故) 김오랑 중령 흉상 추모식에 다녀온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미심장한 소회를 전했다.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이 아닌, 여당 원내대표 출신이 아닌, 대선 후보 출신이 아닌, 군인 유승민의 기억 그리고 교훈이다. 정치인 유승민은 군인 김오랑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군인 시절 유승민은 영화 ‘서울의봄’ 배경이었던 12·12 사태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군사 반란이라고도 하고 쿠데타로 부르기도 하는 바로 그날 정치인 유승민은 수도 방위를 책임지는 부대인 ‘수도경비사령부’ 일병이었다.
정치인 유승민은 “김오랑 중령을 떠올리면, 1979년 12월 12일 그날 밤 서울 중구 필동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의 일병 유승민이 겪었던, 그 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입 밖에 꺼내지도 않고 망각하려 애썼던, 그날 밤의 현장으로 소환됐다”고 전했다.
12·12 사태는 정치인 유승민에게 어떤 기억이었을까.
“그날, 저녁밥을 먹고 내무반을 청소하고 평소처럼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리고 무장 대기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영문도 몰랐으나 사색이 되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주워들으며 조금씩 쿠데타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에 있는 30경비단에 쿠데타 수뇌부가 다 모였고 우리 부대 지휘관인 33경비단장도 자기 혼자 거기 가 있고 필동에 있는 우리는 부단장의 지휘하에 장태완 사령관의 명령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사령관이 야포단과 토우중대에게 30경비단을 겨냥한 사격준비를 지시했다느니, 필동의 33경비단과 헌병단 병력들이 사령관의 명령만 떨어지면 청와대로 쳐들어가 30경비단과 전투에 들어갈 거라느니, 별별 얘기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밤은 수경사, 특전사 예하 부대들과 병력들이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편을 갈라 국군이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추악한 하극상과 어느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계산하느라 평소와 너무 다른 장교들의 당황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고 야포는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새벽이 되어 사령관실에 모인 별들을 수경사 헌병단이 모두 체포해갔고 그 체포과정에서 저항한 장군 한 사람은 헌병이 쏜 총탄에 부상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더니, 곧이어 중대장이 ‘상황 끝’이라 했습니다. 상황이 끝났다는 말은 쿠데타군이 이겼고 우리는 졌다는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정치인 유승민이 전한 내용은 1000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 서울의봄 스토리를 연상하게 한다. 배우 정우성이 그리고 정해인이 연기했던, 그 상황을 군인의 눈으로 직접 보고 겪었던 어느 정치인의 전언이다.
정치인 유승민은 “동이 트기 전 잠시 눈을 붙인 우리는 아침 일찍 연병장에 다시 집합하여 9사단장에서 수경사령관이 된 노태우 사령관의 취임식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치인 유승민은 “북악 스카이웨이 부암동 탄약고에서 가져온 탄약을 원위치하느라 트럭을 타고 필동에서 단성사 앞길을 지나 광화문 앞을 지나는데 전방을 지켜야 할 9사단 병력이 광화문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이듬해의 서울의 봄, 광주의 봄은 이렇게 어긋난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 유승민은 군인 김오랑이 전사했던 상황을 뒤늦게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12·12 쿠데타 44년입니다. 경남 김해 고(故)김오랑 중령의 흉상 앞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새벽에 비가 뿌리더니 개였습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한다. 모든 권력은 폭정으로 치닫는다’ 우리 헌법 1조가 규정한 민주공화국은 권력의 폭정을 막아내고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故 김오랑 중령은 군사반란에 맞서 권총 한 자루로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사수한 참군인입니다. 군인 김오랑의 어깨에 ‘역사의 하늘에 뜬 별’을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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