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으로미 사법부의 새 역사를 연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1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대법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오코너 전 대법관이 치매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인 1981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사법부 유리천장을 깬 오코너 전 대법관은 중도 성향으로 격동의 시기 낙태권 등 민감한 현안 판결마다 대법원의 무게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녀의 재임 기간 대법원은 종종 ‘오코너 법원’으로 불렸다”며 “실제 오코너 전 대법관은 대법원의 넓은 이념 지향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미국 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말 그대로 당대 미국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이었다”고 평가했다.
CNN은 “오코너 전 대법관은 후대 여성 법조인들의 귀감이었다”며 “그녀는 자신이 수호한 낙태권 판결을 한층 보수로 기운 대법원이 뒤집는 현실을 목도한 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30년 3월 애리조나의 목장에서 태어난 고인은 16세에 스탠퍼드대에 입학했고, 불과 19세의 나이에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여성 동기는 5명에 불과했다.
최고 성적으로 로스쿨을 마쳤음에도 주요 로펌에서는 그녀의 채용을 거부했고, 캘리포니아주 검찰사무실에 겨우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73년에는 여성으로 처음으로 애리조나 주상원을 이끌었고, 이듬해 주 판사로 선출됐다.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었지만 대법관으로 취임 이후에는 여성의 인권과 소수인종 보호 등 격동의 시기 미국의 핵심 가치를 지키는 데 있어 중도로서 치우치지 않는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1992년 임신 6개월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도전받았을 당시 특유의 중재 역할을 자임해 낙태권 수호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03년 대학 입학에서 소수 인종을 배려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 결정을 내린 것을 비롯해 투표권, 성소수자 등 사회를 달구는 현안마다 소수자 권리 수호에 무게를 둔 신중한 판결을 주도했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2006년 대법원에서 은퇴했다. 2018년에는 성명을 통해 치매 진단 사실을 밝히고 공개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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