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 서울대 교수가 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사회적 부조리에 노출된 약자들의 고통에 응답해야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장애인·트랜스젠더·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사람들의 시선과 임금, 거창한 구호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소위 정상인이라 불리는 일반인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차별은 존재한다. 가령,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성 장애인은 외부에서 화장실에 가기가 두려워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고, 국물이 있는 음식도 피한다고 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건강검진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흉부 엑스레이는 대부분 환자가 서 있어야 촬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주목받은 김승섭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신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이들의 몸을 망가뜨리는 차별은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함께하며 몸을 긴장시킨다”고 말한다.
일상의 차별은 ‘희망의 부재’로 이어진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한국 장애인의 높은 자살률도 살아갈 희망을 잃어서다. 2020년 기준 한국 장애인 자살률은 10만명 당 57.2명에 달한다. 한국인 전체 자살률인 10만명 당 25.7명에 견줘 2배 이상 많다. 한국인 전체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인 점에 비춰보면, 장애인들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삶을 포기하는 내용의 보도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나온다. 발달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가장 큰 공포는 성인이 된 후 자녀가 살아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트랜스젠더도 살길이 망막한 건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도, 교육을 받기도 쉽지 않다. 2020년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했다가 여대 내 여러 단체의 반발로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A씨의 사연은 그런 사실을 방증한다.
사회적 차별 속에 그들은 음지로 숨어든다. 트랜스젠더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지 그 수도 가늠되지 않는다. 성소수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를 탐구할 수 있는 공공 데이터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정치적 화제가 되는 나라에서, 연구자들은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성소수자의 규모조차 추정해볼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도 열악하다. 어떤 노동자들은 근무 시간에 화장실조차 제대로 갈 수가 없다. 2018년 김승섭 연구팀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함께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2천8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9.8%가 “지난 일주일 동안 필요할 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흔한 이유는 “매장 인력이 부족해서”와 “화장실이 멀다”였다. 이는 회사가 판매직 노동자에게 각 층에 있는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당뇨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거나, 화장실 가는 시간을 늦추고자 물을 먹지 않는 일도 일상이었다고 한다. 응답자 39.9%는 “지난 6개월 동안 필요할 때 생리대 교체를 못 한 적이 있다”고 했고, 20.6%는 “지난 1년간 방광염으로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차별은 이처럼 추상이 아닌 삶의 구체 속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단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김승섭 교수는 그 차별 해소에 마중물이라도 되고자 의사 가운을 벗고, 보건학에 투신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김 교수가 보건학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답답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자를 만나고 차트에 적힌 병력을 읽어보면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 게 분명한데, 병원에서는 약으로 이들의 증상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그 약들은 실제로 증상을 완화하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이들을 종종 삶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돌아가야 할 가정은 과거와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고, 병원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다시 입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다.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주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허망했고, 먹고사는 일의 무게 때문에 검진 시기를 놓쳐, 몸 여기저기 전이된 유방암을 진단받는 여성에게 해줄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다. 의사 일을 하면서 그런 문제들은 계속 쌓여만 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을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임상의사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력을 포기할 수 있을까?”
지속된 질문은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보건학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리고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관해 공부하며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은 종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죽이며 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갇히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만 합니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는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동아시아. 32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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