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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에 나섰지만 2차 가해에 스러져…학폭피해 안전망 구멍

연합뉴스 조회수  

표예림씨 폭로 후 “인신공격 시달려” 호소…결국 극단 선택

표씨, 학폭 공소시효 폐지 청원…”피해자 회복지원 병행해야”

방관과 외면의 시선들
방관과 외면의 시선들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푸른나무재단 관계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2023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위해 ‘방관의 탈’을 쓰고 있다. 2023.9.12 hwayoung7@yna.co.kr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계승현 안정훈 기자 =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서로 연락하고 힘을 합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죠. 하지만 피해자는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해요. ‘알아서 싸우라’는 상황에서 안전망 없이 2차 가해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아플까요.”

강혜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유튜버 표예림(27)씨가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 2차 가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표씨가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법제도를 바꿔보려 고군분투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본인이 보호받지 못하고 인신공격에 시달리다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학교폭력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비한 법제도에 유튜브서 공개 활동…2차 가해 못 막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현실판 주인공으로 알려진 표씨는 지난 10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데는 10여년 전 학교폭력의 상흔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2차 가해가 만연했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표씨는 앞서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유튜버 A씨를 언급하며 “저를 저격하고 다중의 익명으로 인신공격과 흔히 말하는 조리돌림을 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표씨는 4월에도 2차 가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구조됐었다.

피해자가 사망했음에도 온라인에선 진실 공방과 무분별한 신상 공개가 이어졌다.

특히 지목된 유튜버 A씨는 “표씨가 법적 공방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나 우리가 범죄 혐의로 인해 피해를 봤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영상을 올리며 즉각 반박했다. A씨는 명예훼손과 모욕 등 혐의로 표씨를 고소했고 표씨도 A씨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낸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표씨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학교폭력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기 위해 유튜브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해자 처벌이 확실하게 이뤄지기 어려운 법제도 한계로 인해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 절박했던 표씨가 개인 신상을 내걸어야 했고, 이것이 더 심각한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폭력 범죄의 상당수는 형법상의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왕따당했다’, ‘인터넷상에서 폭언으로 충격을 받았다’며 법정에 가도 시간이 지나 증거가 마땅치 않으면 무죄 판결이 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사건을 다수 수임한 김기윤 변호사도 “학교폭력이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정확한 죄명은 없다. 폭행, 상해와 관련된 규율을 말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있지만 이는 학교폭력 인지 후 학교 측 대응 지침을 규정한 것으로 형사처벌 대상을 명시한 법이 아니다. 학교폭력 공소시효 역시 관련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 형법상 폭행죄(공소시효 5년)나 상해죄(7년), 강제추행(10년)을 적용한다.

가해자를 고소할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폭행당한 피해자가 성년이 되면 가해자의 공소시효가 끝나있는 경우가 많다. 표씨도 생전에 이런 이유로 학교폭력 범죄에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리고 피해자 단체와 연대해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처벌이 약해서..'
‘처벌이 약해서..’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대한민국 비폭력 캠페인’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학폭 관련 설문에 답하고 있다. 2023.5.13 hama@yna.co.kr

◇ “공소시효 일부 손보거나 행정소송 개선…심리치료 확대 노력도”

표씨의 노력으로 학교폭력 공소시효 관련 논의가 첫발을 뗐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피해 학생이 성년이 되는 시점부터 학교폭력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방향의 법 개정에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양산교육청 학교폭력 고문으로 활동하는 강태현 변호사는 “미성년 시절 학교폭력 신고가 돼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성년이 되고 나서 공소시효를 산정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말했다.

김기윤 변호사도 “학생이 학생을 때렸을 경우에는 학교폭력이라는 이유로 성인이 된 이후 공소시효가 진행되고, 어른이 학생을 때렸을 때는 바로 공소시효가 시작된다고 하면 이걸 합리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겠나.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한 경우에 한해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대안으로 다른 행정절차를 개선하는 등의 고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변성숙 경기도교육청 변호사는 “학교폭력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경중에 따라서 일부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현행법보다 공소시효를 늘리는 등의 방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 변호사는 “(공소시효 연장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는 학교폭력 행정소송의 처분을 확정하는 기간을 줄여야 한다”며 “지금처럼 일반 행정법 적용을 받으면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이 1∼3심까지 이어지고 졸업할 때까지 재판이 안 끝난다”고 짚었다.

가해자 처벌 강화와 동시에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회복 지원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남기 교수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상담이나 정신적 치료를 받을 때 정부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변상 제도가 있으나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상당히 힘들다”며 “이런 행정절차를 쉽게 만들어놓거나 정말 고통스러운 피해자를 위해 회복 절차를 대행해주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교육부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하겠다고 하는데, 차라리 전문성 있는 민간기관에서 맡는 것이 피해자 입장에서 훨씬 접근하기 쉽고 효과적이다”라고 조언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과 현재 트라우마 극복을 구분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며 “가해자 처벌이 여의치 않다면 그것과 별개로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건강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폭력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강혜승 지부장은 “결국 학교 현장에서 제도적으로 폭력을 예방하고 규제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학교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어 사법적인 영역 외에 교육적 방안으로 문제를 풀어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ryoon@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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