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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이균용 후보자, ‘개혁’하려면 마음을 얻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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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60·사법연수원 16기)가 지명된 이후 법원 내부에서는 김명수 코트에서 논란이 됐던 문제나 제도들을 개선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법관들에게 이 후보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법관들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논란이 됐던 제도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인력 충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법원 내부에 다양한 의견을 가진 판사들이 공존하는 만큼 변화를 무리 없이 추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판사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개혁’을 추진하되 구성원들과의 소통도 중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부터 손봐야”

지난 6년간 사법부에서 일어난 가장 큰 제도적 변화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제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사무분담위원회 설치 ▲법원행정처 조직·기능 축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손봐야 할 제도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꼽은 판사들이 많았다.

27일 통화한 한 중견 판사는 “가장 시급하게 손봐야 할 건 법원장 후보 추천제다. 법원장을 투표로 추천하다 보니 사법행정권이 사실상 무력화됐다. 사건이 적체되는 데도 법원장이나 수석부장 중에 아무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도 비슷하게 진단했다. “과거에는 실력과 성품 면에서 누구에게든 인정받는 분들이 법원장이 됐다면, 지금은 그런 부분이 부족해도 인기 투표로 법원장이 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법원 내에 포퓰리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각 법원의 수석부장판사에 본인이 법원장 후보로 염두에 둔 사람을 임명하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수석부장판사 임기 2년이 지났는데도 일부러 다른 법원으로 인사를 내지 않고 1년을 더 하게 해 결국 법원장으로 만든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면 소속 법원 법관들과의 접점이 커져 법원장 후보 추천에서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데다가, 대법원장이 수석부장판사를 임명하면 판사들이 ‘다음 법원장으로 임명할 복안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돼 오히려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강화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정치 편향성 논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부장판사는 “법관이 이념에 사로잡혀 재판을 치우치게 한다고 의심받으면 법원이 어떻게 신뢰를 받겠느냐. 대법원장부터 중심을 잡고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법부장 폐지·워라밸이 낳은 ‘재판 지연’

김명수 코트가 가장 비판받는 ‘재판 지연’ 문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를 폐지한 것이 크게 작용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법원에도 정착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풍토가 원인인 만큼 법관 인력 증원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부장판사는 “과거에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을 앞둔 부장판사들이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무리하게 일을 했던 건 사실”이라며 “승진제가 사라진 게 열심히 일할 동기 부여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져온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고법 부장판사를 없앤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이걸 되돌리려면 법률 개정이 필요한 상황인 만큼 부활시키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무언가 이를 대체할 다른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예전엔 나도 판결 선고 전날엔 새벽 4시까지 일하다가 할증이 풀리면 택시를 타고 퇴근하곤 했는데, 지금은 배석 판사들에게 무리한 야근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며 “오히려 지금이 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하는 판사도 있었다.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 지연 문제가 자꾸 이슈가 되면서 판사들이 다 일 안 하고 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지금도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나와 일하는 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법관 선발 방식이 바뀐 뒤 신규 임용되는 판사들의 역량이 점점 떨어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중견 판사는 “법관 임용에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도록 법이 개정됐는데, 로펌이나 다른 직장에서 10년간 잘 정착한 사람이 굳이 법관을 선택할지 의문”이라며 “신속하게 양질의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법관 인력을 늘리는 게 최선이다. 임용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요즘엔 연봉보다 워라밸을 추구하기 위해 로펌을 그만두고 판사로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판사에게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주길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판사들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

한 부장판사는 “사무분담위원회에서 미리 내규에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판사들의 보직을 정하다 보니까 판사 개인의 의사와는 다른 보직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법원별로 설치된 사무분담위원회는 부장판사 회의, 단독판사 회의, 배석판사 회의 등 직급별 판사 회의에서 2명 정도씩 추천된 위원과 당연 위원으로 참여하는 수석부장판사로 구성된 기구다. 재판 배정 등 판사들의 사무분담을 결정한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내가 일할 때 30명이 넘는 판사가 법원행정처에서 재판 지원, 정책 연구 등 업무를 담당했는데, 당시에도 일손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라며 “지금은 10명 정도로 인원을 대폭 축소했는데, 현실적으로 재판 지원이 제대로 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남부지법원장 시절 “능력 있는 법관이 어렵고 힘든 재판을 맡는 것이 맞다”라며 사무분담위원회 설치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서도 평소 부정적인 입장을 주변에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사법부 조직의 운영을 위한 법원행정처의 기능에 대해서도 김 대법원장과는 상반된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이들 제도에 대한 원상회복 내지 개편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큰 방향이 어떤 게 더 좋겠다는 것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것도 고려 안 할 수가 없다”라며 “기존 제도를 폐지했을 때 발생할 부작용이나 이에 반대하는 분들을 어떻게 아우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준비 없이 그냥 폐지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새 대법원장이 판사들의 마음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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