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토대로 선박 재현…설계 28번 바꾸고 연습 항해 7천600㎞
나무 찾아 강원까지·선박안전법 규정도 고려…”다음 목표는 거북선”
(쓰시마=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밖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쳤고, 안에는 판옥 12간을 설치해 주방과 창고, 앉는 데, 잠자는 데, 밥 먹는 데가 모두 구비돼 있다.’
조선 숙종 45년(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승문원에 속한 벼슬)으로 사행길에 올랐던 신유한(1681∼1752)은 그가 탄 배를 이렇게 기록했다.
여러 배 가운데 사신의 우두머리 격인 정사(正使)가 탄 배는 위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반적인 배보다 더 크게 만들었고, 화려한 장식을 더했다.
옛 문헌과 그림을 보고 만든 배로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갈 수 있을까.
2015년 설계를 시작으로 약 4년간 조선통신사선 재현 프로젝트를 맡았던 홍순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보는 사람마다 진짜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고 회상했다.
정사기선(정사가 탄 배)을 재현한 배는 이달 1일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 쓰시마(對馬·대마도) 히타카쓰(比田勝)를 거쳐 다음 날 같은 섬 남부의 이즈하라(嚴原)에 도착했다.
이즈하라에 정박 중이던 5∼6일 만난 홍 연구사는 “여러 고선박을 조사·복원하는 작업을 하면서 통신사선도 꼭 해보고 싶었다. 2012년부터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며 준비 과정 등을 들려줬다.
선조 40년(1607)부터 순조 11년(1811)까지 보낸 통신사가 총 12차례.
선박 평면도가 있는 ‘헌성유고'(軒聖遺槁), 정사가 탄 배를 그린 ‘근강명소도회 조선빙사(近江名所圖會 朝鮮聘使) 등 여러 자료가 있었지만, 재현 과정은 사실 만만치 않았다.
설계의 기본이 되는 단위 ‘척'(尺)을 어떻게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명나라에서 사용되던 척도인 영조척 30.65㎝와 1466년에 개혁하면서 사용하게 된 31.22㎝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후 과정 또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홍 연구사는 “조사·연구를 거쳐 밝혀진 내용도 조금씩 보완하다 보니 설계 도면을 24번 바꾸고 실제 작업을 하면서 4번 더 변경했다”며 “가장 심혈을 기울인 배”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든 배의 규격은 길이 34m, 너비 9.3m이고 돛대 높이는 22m에 이른다.
당시 해양유물연구과장으로서 프로젝트를 이끈 이은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목재 확보가 가장 어려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소장은 “최종적으로 금강송 900여 그루가 쓰였는데, 당시 전문업체에서도 그만한 나무는 못 구한다고 포기하기 일쑤였다”며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강원 삼척부터 태백, 정선, 홍천, 인제 등 벌목 현장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찾아갔죠. 사정을 이야기하길 몇 차례. 결국 70∼150년 정도 자생한 금강송을 모두 구했죠.” (홍순재 연구사)
이후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2017년 6월 목수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 뒤, 진수식까지 약 17개월은 일사천리였다고 한다.
이 소장은 “배의 외형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하되, 현행 ‘선박안전법’에 규정된 목선의 구조 기준, 선박설비 기준 등에 맞출 수 있도록 모두가 합심했다”고 말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배를 완성한 만큼, 2019년 항해가 무산됐을 때는 아쉬움도 컸다.
연구소는 8월 첫 주에 열리는 ‘쓰시마 이즈하라항 축제’에 참여해 재현한 선박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당시 한일 관계 악화로 불발됐다.
홍 연구사는 “매년 5월 부산에서 열리는 조선통신사 축제에 참가해 전남 목포에서 부산까지, 또 신안 가거도에서 충남 태안까지 약 7천600㎞를 항해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올해 드디어 이뤄졌다. 배를 완성하고도 꼬박 5년을 기다린 끝에 성사된 항해였다.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은 홍 연구사를 포함해 문화재청·부산문화재단 관계자 등 9명을 태우고 대한해협을 건넌 뒤 5∼6일 열린 이즈하라항 축제에 참가해 주목받았다.
축제 기간 주민 약 210명이 배를 직접 둘러봤다. 약 212년 만에 바다를 건넌 ‘평화의 사절’을 알리기 위해 NHK 등 현지 미디어도 취재하러 왔다.
홍 연구사는 “조선통신사 배를 타고 오겠다는 다짐을 5년 만에 지켰다. 이제부터가 진짜 항해”라며 웃었다.
배 재현을 위해 물심양면 도왔던 연구소 전·현직 관계자들 역시 이번 항해가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염원했다.
이은석 소장은 “조선통신사선은 과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했다”며 “이즈하라뿐 아니라 앞으로 시즈오카(靜岡), 오사카(大阪) 등 일본 곳곳으로 항해가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구소장을 맡아 배 재현 과정을 모두 지켜본 이귀영 백제세계유산센터장은 이번 항해가 “조선 문화의 부활”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서 “한일 양국의 마음을 실어 나르는 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축제를 마친 홍 연구사와 일행은 7일 귀국 뱃길에 올랐다.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을 피해 당초 예정보다 일찍 귀국길에 올랐으나 이즈하라에서 부산까지 꼬박 13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예상보다 길어진 여정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높은 파도와 너울에 배 점검이 최우선”이라고 원칙을 고수했다.
연구소의 다음 재현 대상은 무엇일까.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쓰던 조운선부터 어선, 발굴 선박, 조선통신사선 등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여러 선박을 연구하고 되살렸죠. 다음 목표는 거북선이겠죠? 하하” (웃음)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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