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단’ 정신질환자 범행 잇따르자 정부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강제입원 통해서라도 적기치료 중요”…’병원 밖 대안’ 필요성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최근 전국 곳곳에서 잇따른 흉기 난동 사건 범인들의 일부가 과거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와 관리체계를 다시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입원치료할 수 있도록 국가의 관리 책임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는 잇단 정신질환자 흉악범죄의 대책으로 ‘사법입원’을 들고 나왔다.
◇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까다로워진 강제입원
2016년 헌법재판소가 본인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위헌으로 판결하고 그 결과로 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시행된 후 강제입원 절차는 한층 까다로워졌다.
기존의 정신보건법은 보호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가 있으면 환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입원을 허용했으나 환자 인권을 침해하고 가족 간 갈등에 강제입원 제도가 악용된다는 지적 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기존 법을 전면 개정해 2017년 5월부터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 자의입원이나 동의입원 외에 보호의무자에 의한 ‘보호입원’, 즉 강제입원을 할 경우엔 2명 이상의 보호의무자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가능하게 했다.
강제입원의 적합성을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심사하는 절차도 도입했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자체장이 보호와 진단을 신청할 수 있는 이른바 ‘행정입원’도 법에 규정돼 있지만, 소송 우려 등으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신질환 적절한 치료 중요…국가도 입원 책임져야”
그동안 의료계 안팎에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非)자의 입원이 더 용이해져야 하며, 가족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기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 왔다.
정신건강복지법 이후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강제입원이 일부 줄어드는 성과가 있었지만, 병원 밖에서 정신질환에 대처할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에서 탈(脫)시설만 강조함으로써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치료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생겼다는 것이다.
이번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을 비롯해 정신질환자에 의한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계에서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 등을 요구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9년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안인득이 본인 집에 불을 지르고 계단으로 대피하던 주민들을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더는 정신질환자의 가족에게 모든 짐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안인득 형의 노력에도 현행법상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행정입원 등은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며 “강제입원 등에 대해 국가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화영 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 공격성이 확 떨어지지만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며 “적절한 급성기 치료가 굉장히 중요하다. 환청이나 망상이 생기면 비자의적 치료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사회 회장도 “치료받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일반인보다도 강력범죄율이 낮지만 문제는 치료받지 않는 환자들”이라며 강제입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강제입원 절차가 지나치게 환자 중심인 부분이 있어 주치의 등 전문가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 법무부 ‘사법입원’ 도입 검토…복지부도 TF 구성
지난 4일 법무부는 잇단 흉악범죄에 대한 대응 방침을 설명하며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 등 사법기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는 의료계에서도 비자의 입원의 실효성을 높일 대안으로 거론해왔던 방안이다.
법무부는 “‘묻지마식 흉악범죄’ 등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게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도입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영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이후 비자의적 입원이 굉장히 어려워지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안으로 “판사가 입원을 결정하는 사법입원이나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결정하는 심판위원회 같은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법무부 등과 합동 TF를 구성해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전반을 검토하고, 외래치료 지원제도를 개선하는 등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해나 타해 위험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위험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치료 실효성을 높일 제도를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 인권침해·낙인효과 우려도…”병원 밖 대안 있어야”
다만 2016년 헌재 결정에서도 보듯 비자의적 입원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도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변호사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가족에 의한 입원은 그동안 부작용이 너무 많았다”며 “그동안은 국가와 사회에서 같이 해결책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입원이 도입된다면 판사들이 의료진 말만 듣기보단 어떤 형식을 갖추든 당사자 말을 듣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물론 입원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치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자·타해 위험이 있는 응급상황에선 병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맞지만 강제입원이나 약물치료 외에 사회적 옵션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응급상황까지 가기 전에 정신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대표도 “응급상황에서는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응급’이 아닌 ‘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신적 고통이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흉악범죄자의 정신질환을 부각하고 입원 치료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정신질환자에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데다 더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도희 변호사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개인의 정신병력을 알아보고 모든 게 정신병력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라며 “사회 구조나 환경 문제를 생각 안 할 수 없는데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 몰아가 개인을 어딘가로 보내 안 보이게 하면 된다는 식이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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