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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마로 변한 대한민국… ‘폭염 중 휴식’ 법은 국회서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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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경기도의 한 마트에서 29세 김모씨가 업무 도중 숨졌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올랐던 이날, 김 씨는 냉방장치가 가동되지 않는 주차장에서 쉼 없이 카트 관리 업무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 판정을 받았다.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가 사인이었다.

최근 폭염으로 인한 사망 및 온열질환자가 급증한 가운데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5월 20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21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7명)의 3배에 달한다. 정치권은 김 씨의 사망 후 뒤늦게 국회에 계류 중인 8개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폭염 시 작업 중단’ 산안법 개정안 8개 계류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동서울 우편물류센터를 찾아 “기준을 초과하는 폭염에는 작업을 중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며 “더위가 오기 전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직 못해 노동자들께 송구하다. 이달 중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산안법 개정안은 8개다. 국민의힘 김성원·박대수 의원, 민주당 이소영·이용빈·전용기·홍영표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각각 법안을 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고열·한랭·다습 작업을 하거나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 적절하게 휴식하게 하는 등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권고 수준에 그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이 부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성원·이소영 의원안은 폭염 및 한파 시 지방자치단체장이 사업주에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따르지 않는 사업장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도 있다. 김 의원안은 3000만원 이하, 이 의원안은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명시했다. 폭염 등에 따른 작업 중지에 대해 임금 손실분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들도 있다. 김 의원과 이 의원 안 외에도 이용빈 의원, 이은주 의원, 홍영표 의원안이 해당 내용을 포함했다.

이은주 의원안은 특히 근로자의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조치에 ‘기상 여건이나 작업 여건에 따라 필요한 시설 설치’까지 명시했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이 우려되는 경우 사업주가 에어컨 등 냉방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지난 6월 사망한 김 씨의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윤미향 의원은 근로자의 작업 중지 조항이 ‘권고’에 그치지 않도록, 관리감독자가 조치한 내용을 고용노동부에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들 법안은 빠르게는 3년 전(이소영 의원안·2020년 7월)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에서 한 차례 정도 논의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 5월 법안소위에서 박화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은 “기상이변에 따른 작업 중지나 조치 결과 보고 의무 등은 저희가 생각할 때 기존에 있는 규정”이라며 “이 조항은 굳이 개정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장이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조항에 대해서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들어오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법이 있지만,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 임금 감소나 공사 기간 연장 등의 부담으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법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야당의 관련법 ‘8월 통과’ 제안에 여당은 ‘정부의 행정 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산안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별도로 해당 상임위 간사를 통해 의견을 모아보겠다”면서도 “다만 법 개정을 통해 하기엔 폭염이 8월10일까지 가장 심하다고 하는데, 법 개정으로 당장 신속히 조처할 수 있는 사항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 행정적 조치를 우선 검토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재난의 일상화… ‘근본 대책 마련’ 필요성 대두

폭염과 한파, 집중호우 등 기후 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근로 환경뿐 아닌 근본적인 피해 방지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50여명의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극한 호우, 주말 새 15명의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극한 폭염 모두 기후 재앙의 순간이었다”며 “지난 몇주 간 기후재앙으로 우리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용 의원은 ▲탄소세 부과 ▲탄소세 세수 기본소득에 활용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한 공공투자 확대 등을 제안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기후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본회의 자유발언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의 특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우리 정부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기후위기에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불가역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올해 국회를 통과한 법인세 전 구간 1% 인하, 기업 투자세액공제 등을 철회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장 의원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에 적절한 탄소 가격 형성과 기후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세법을 올해 예산부수법안으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기후위기 취약계층 보호대책 개선방안’ 보고서는 “현행 법률에 노숙인, 옥외근로자에 대한 대책뿐”이라며 폭염·한파 취약계층 보호 대책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새로운 법 제정이나 탄소중립 기본법 개정을 통해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정의 및 범위를 법제화하고, 관련 국가계획 수립·예산지원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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