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단지. 체감온도가 35도에 달하는 무더위 속 건물 외부 재도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뙤약볕이 비추는 가운데 바닥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무심코 손을 덴 아파트 외벽은 흡사 한껏 달궈진 돌판과 같았다. 30여명의 인부는 그늘 하나 없는 아파트 외벽에 수십분씩 매달려 페인트칠을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간간이 쉬러 그늘에 내려온 이들은 연신 물을 들이켜며, 땀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닦아냈다.
2016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했다는 고려인 김쎄료가 현장소장(42)은 “건물 외벽에 매달려 하는 작업이라 그늘도 없고, 벽도 뜨거워져 날이 더우면 평소보다 훨씬 힘들다”며 “날이 너무 뜨거우면 작업시간을 늦추기도 하며 인부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 나온 인부들은 대부분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넘어온 20~30대 젊은 고려인 출신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힘든 노동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옆 건물 외벽 작업을 하는 노동자와 비슷한 높이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러시아어와 우즈베키스탄 언어 등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무더위를 버티기 위한 각종 장비도 등장했다. 모자와 쿨토시는 물론 미니 선풍기가 부착된 조끼까지 동원됐다. 안전상의 이유로 반팔과 반바지 등을 착용하기 어려운 인부들에게는 무더위를 이겨낼 무기다.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인부 한모씨(31·남)는 “날이 너무 더워 몇몇 인부들은 개인 돈으로 미니 선풍기가 부착된 조끼를 3만7000원에 사서 입었다”며 “건전지만 넣으면 작업 내내 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오전 11시40분께 한 입주민이 얼음물을 비닐봉지 가득 챙겨다 인부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인부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어눌하지만 진정성 담긴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자 입주민은 민망한 듯 손사래를 치며 발걸음을 뗐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입주민들이 종종 얼음물과 음료수 등을 챙겨준다”며 “인부들도 물을 챙겨오긴 하지만 날이 더우면 금세 물을 다 먹는다. 그러면 경비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다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낮 12시가 다가오자 인부들은 삼삼오오 그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시 땀을 식히며 오후에 쓸 페인트를 준비하던 중 냉면과 덮밥 등 각자의 취향에 맞는 점심이 배달됐다. 고된 노동을 증명하듯 게 눈 감추듯 식사는 마무리됐다. 그늘 밑에서 꿀 같은 휴식을 즐긴 인부들은 오후 작업을 위해 다시 폭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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