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7월 이용객 작년보다 75만명 늘어…”바깥 풍경 보며 피서”
전문가 “독거·주거취약 계층 무더위 피할 공간 확대해야”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전철이 최고죠. 에어컨 쐬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서울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오른 지난달 27일 오후 4시께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노약자석에 앉은 장모(77)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씨의 집은 경기도 수원이다. 집을 나선 그는 이날 오전 9시 청량리행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고 했다.
그는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봐 마음 놓고 에어컨도 못 켜니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덥고 경로당은 사람이 많아 답답하다”며 “바깥 풍경도 보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아서 지하철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장씨 외에도 지하철 1호선 객차 한 칸에 있던 시민 33명 중 20여명이 70대 이상 노인으로 보였다.
이들은 좌석 곳곳에 자리를 잡고 신문과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창 너머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거나 이어폰을 낀 채 잠을 청하는 이도 많았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종로3가역 안에서도 노인 10여명이 계단과 바닥에 앉아 3∼4명씩 무리 지어 부채질하며 더위를 달래고 있었다. 이들은 역 안의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를 사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경기도 고양에 사는 강모(74)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로3가역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강씨는 “어디 놀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제일 만만한 곳이 여기 지하철역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강씨는 “여름에는 에어컨 때문에 한 달 전기요금이 15만원씩 뛰어오르더라”며 “젊은 사람들은 돈이라도 벌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10원 한 푼도 나올 구석이 없으니 이렇게 바깥에 나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있던 김모(83)씨는 “바깥 햇볕이 쨍쨍하니 탑골공원에 앉아있을 수도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더위를 이겨낼지 걱정이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영등포구 집에서 나와 지하철 1호선 객차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최모(82)씨도 “혼자 사는 집에는 에어컨도 없고 낡은 선풍기만 2∼3대 있다”며 “지하철 여행을 끝내고 집에 오면 창문이나 열어놓고 더위를 달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아 지하철역이나 전동차 안에서 더위를 피하는 노인은 작년보다 늘었다.
1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1∼25일 지하철 1∼8호선을 이용한 65세 이상 노인은 1천46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천393만명보다 약 75만명 많았다.
심해진 폭염에 더해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유지됐던 작년 여름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 선언 이후 그동안 ‘밀집 지역’으로 분류됐던 지하철에서 폭염을 피하는 노인이 작년보다 늘었다”고 설명했다.
65세 이상은 지하철 요금이 무료여서 금전적 부담이 적은 것도 노년층이 지하철을 찾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지하철 피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년층에 대한 냉방복지 대책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주택 환경이 열악한 노인은 냉방 기구 설치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정부의 냉방비 지원 대책도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독거노인이나 주거취약 노인이 무더위를 편하게 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폭염 민감계층의 건강피해 최소화 방안’ 보고서에서 “노인 등 폭염 민감계층이 (지하철이 아닌) 주거지 인근에서 무더위 쉼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 다양한 자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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