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이 내달 초중순께 방역 완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병원 등 시설에 적용된 마스크 착용 의무를 권고로 전환한다. 병원들은 한여름 때아닌 멀티데믹’(여러 감염병 유행)이 현실화하자, 당분간 마스크 착용 유지 등 추가 방역지침을 마련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은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르되 고위험시설의 경우 착용 의무를 유지할 예정이다. 서울삼성병원은 마스크 착용 권고 이후 1~2주 정도 착용 의무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은 추가 방역조치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논의 중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병상 규모가 크고, 전국의 면역력이 약한 중환자가 모이기 때문에 3년 넘게 유지해왔던 마스크 착용 의무가 갑작스레 풀린다면 감염자 폭증 우려가 큰 건 사실”이라고 했다.
병원들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를 걱정하는 이유는 최근 코로나19 등 호흡기 감염병의 유행세가 심상찮아서다. 18~24일 코로나19 일평균 확진자 수는 3만8809명으로 직전주(2만7955명) 대비 38.8% 폭증했다. 지난 19일엔 하루 확진자만 4만7029명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한겨울이었던 1월11일(5만4315명) 이후 약 6개월 만에 최다 확진자 수다. 코로나 유행이 줄어야 하는 한여름에 겨울과 비슷한 수준의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플루엔자(독감), 감기 등 호흡기 감염병 유행도 이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28주차(7월9~15일) 독감 의심환자는 의원 외래환자 1000명당 16.9명으로 집계됐다. 이번 독감 유행 기준인 4.9명의 3배가 넘는다. 통상 6월 말 여름이 되면 독감 유행 역시 감소하지만, 올해의 경우 되레 증가세가 관측됐다. 지난해 9월16일 발령된 독감 유행 주의보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독감이 여름까지 유행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며 “코로나 3년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자연면역을 얻지 못한 데다, 예방접종률 하락에 따른 인공면역 감소, 휴가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침, 콧물 등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감염 환자와 폐렴을 일으키는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감염 환자도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등 여러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자, 고위험군이 많은 병원·감염취약시설에서의 마스크 착용 해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의 경우 최근 치명률이 0.03%까지 떨어졌지만, 80세 이상의 누적 치명률은 1.84%, 70대는 0.43%로 높은 수준에 속한다. 지난 9~15일 코로나 사망자 43명 중 32명(74.4%)이 70대 이상 연령대에서 발생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기관, 감염취약시설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실내에서 이런 형태의 전파와 유행을 하는 바이러스를 본 적이 없다”며 “(의료기관 등에서) 코로나를 독감처럼 관리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고위험군이 많이 모이는 병원급 등 공간에서는 호흡기 감염병이 숙질 때까지 마스크 착용을 당분간 의무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은 현재로선 계획된 방역 완화 조치를 선회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질병청 관계자는 “병원 등 시설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전환되더라도 개별 병원이 별도의 방역 지침을 마련해 환자, 방문객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코로나 확진자, 고위험군 등의 이용 가능성이 높은 시설을 방문할 때 해당 시설들이 제시하는 방역지침을 준수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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