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게시판에 교권침해 사례 수천건…”학부모-교사 소통 방법 고민”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 A교사는 받아쓰기 지도를 하면서 틀린 문제에 빗금을 쳤다가 학부모에게서 항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마음상하지 않도록 빗금 대신 ‘별 표시’를 하라는 요구였다. A교사는 비슷하게 느끼는 학부모가 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틀린 문제에 ‘별 표시’를 원하는 학부모는 연락을 달라고 알림장에 글을 올렸다. 해당 학부모는 교사가 본인을 ‘표적’ 삼아 알림장을 올렸다며 교장실로 찾아와 소리를 질렀다.
#. B교사는 원격수업 기간 한 학생이 계속 수업에 참여하지 않자 학부모에게 연락했다. 학부모는 교사가 ‘모닝콜’을 해 아이를 깨워달라고 요구했다. B교사가 어렵다고 하자 학부모는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 C교사가 속한 학교는 코로나19 초기에 신학기 교과서를 정해진 날짜에 교문에서 배부하기로 했다. 그러자 한 학부모가 술에 취한 채 전화해 ‘너희가 뭔데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하느냐’며 소리를 지르고 폭언을 퍼부었다. C교사는 이후에도 해당 학부모에게 비슷한 일을 더 겪어야 했다.
#. D교사의 학급에는 아빠의 폭력 때문에 엄마와 함께 이사하면서 전학 간 학생이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해 아이의 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고, 교사가 이를 거부하자 ‘돈 받아 X먹었냐. 내가 아빠인데 말을 안 해?’라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었다. D교사는 한동안 출퇴근길에 해코지를 당할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최근 극심해지는 교권침해에 교직 사회가 들끓어 오르면서 현장 교사들이 그간 겪었던 고충을 쏟아내고 있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달 중순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된 이후 교원노조 등이 개설한 패들렛(여러 사람이 콘텐츠를 공유하는 웹사이트)에는 과도한 학부모 요구사항부터 폭언·폭행까지 그간 교사들이 겪은 교권침해 사례들이 수천 건 올라왔다.
학부모의 요구사항 가운데는 자기 자녀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도 있었지만 병원 진료, 모닝콜, 교사가 직접 깎은 과일이나 직접 끓인 죽 등 음식 제공, 결석 후 출석 인정 등 비합리적인 요구도 많았다.
교사를 아이의 ‘하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울분 섞인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다가 학부모에게 욕설이나 폭언을 듣는 경우, 성적 처리와 관련해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아이의 마음이 상했다’는 항의는 상당히 흔해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부모에게 교사의 죄가 ‘내 아이 기분 상해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학교폭력위원회를 열면서 학부모에게 폭행당했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교사들은 학부모뿐 아니라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의 원칙없는 대응도 질타냈다.
E교사는 싸우던 학생들을 지도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학부모가 항의하며 부당한 요구를 해오자 교감이 ‘흠 잡힐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학부모보다 더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적었다.
F교사는 학생이 학교에서 다쳐 집에 있으니 교사가 와서 보충 지도를 해달라는 학부모 요구를 들었는데 교장·교감에게 떠밀려 그대로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G교사는 장애 학생의 자해 행동을 교사가 고치지 못했다며 학부모가 교사 능력이 부족하다는 민원을 교육청에 넣었는데 교육청에서 자신에게 컨설팅을 받으라고 해 억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교육부도 이처럼 현장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겪는 과도한 요구와 폭언·폭행이 더 심각해지는 것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열린 교권침해 간담회 직후, 이처럼 교사들이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들 질의에 “교육부도 교사분들이 많이 고민하고 여러가지 요구를 하시는 걸 잘 듣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와 학부모 간에 대면은 물론 전화나 SNS 등 다양하게 이뤄지는 소통 방식을 어떻게 개선하면 조금이라도 교권침해를 막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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