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에 보신탕 몇 그릇이 될뻔한, 그러나 개농장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개들. 다가와 코끝으로 냄새를 맡았다. 숨이 뜨거웠다. 꼬릴 흔들었다. 다행히도 살아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어쩐 일인지 경찰차가 길목을 막고 있었다. 취재 현장에 가는 길이었다. 보조석 창문을 열었다. 폭우가 삽시간에 들이쳤다.
우비를 입은 경찰이 물었다. “어디 가시는 건가요?” 기자인데 취재하러 왔다고 했다. 경찰은 들어가도 될지 확인해보겠다며 무전을 쳤다. 기다리는 동안 의문이 꼬릴 물었다. ‘뭐지, 경찰이 왜 이리 많지.’ 혹시 폭우 때문에 통제하는 건가 싶었다.
잠시 뒤 경찰이 다시 왔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좁다란 흙길을 따라 내려갔다. 안쪽에도 경찰차가 몇 대 있었고, 아예 경찰 버스도 두 대나 와 있었다.
경기 남양주 개농장 전경. 도살장도 함께 하는 곳이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
‘후두두둑’ 사방을 뒤엎는 굵은 빗줄기 소리와 맞물려 묘한 불안이 올라왔다. 좌우로, 앞뒤로, 눈길이 분주해졌다. 차를 세운 뒤 바깥으로 나왔다.
우산 안으로 비가 들이쳐 바지가 순식간에 젖었다. 7월 11일, 초복 날씨가 그랬다. 이날 여기 온 이유도 복날과 관련된 거였다. 거긴 개 100마리가 넘는 개농장이었고, 죽일 수 있는 도살장이 있었다.
태어나 보니 좁다란 뜬장. 불편한 바닥에 발이 빠지고 배변 냄새가 위로 올라오는. 먹는 밥은 음식물 쓰레기. 강추위와 혹서엔 고스란히 노출. 그리 자라 죽여도 될 정도로 커지면, 그제야 바깥에 나오는. 개농장 개들의 삶.
거듭 말하면, 그날은 초복 날이었다. 개들이 죽어 나가기에 아주 적합했던.
“밤새워가며 개들 없어지지 않게 지켰지요”
밤을 새워가며 개들이 다른 곳에 가지 않도록 개농장을 지킨, 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들./사진=남형도 기자 |
철퍼덕거리며 걸을 때마다 발이 빠졌다. 조심해 걸었으나 물웅덩이에 신발이 푹 들어가 다 젖었다. 단념했다.
앞엔 나이 든 남성 하나가 아예 신발을 벗고 걸어갔다. 방향이 개농장 쪽이었다. 그 앞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파란 지붕 아래 모여들었다. 느낌이 왔다. 개농장 주인이거나 관계된 이들일 거라고.
맞은 편에 흰색·분홍·노랑색 우비를 입고 서 있던 청년들. 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들이었다.
오래 봐와서 잘 알고 있었다. 불법 개농장을 찾아다니며 철폐하려는 사람들. 아예 ‘와치독’을 만들어 끈질기게 개농장만 다니며 없애고, 그 안의 개들을 구조하는 이들. 동물 보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축에 속하므로, 기꺼이 사서 고생 중인.
살리려는 이들을 향해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인 줄 알았다며 오해하기에, 기자라고 밝혔다. 케어의 한 활동가가 말했다.
“어제부터 돗자리 깔고 밤을 새워 여길 지키고 있었어요. 개농장 주인이 개들을 몰래 빼낼까 싶어서요.”
막으려 했으므로 촌음을 다퉜다. 새벽 2시 반에도 케어 활동가들이 갔다. 17마리는 살려 남양주 보호소로 보냈다. 아직 90마리가 남았다고 했다. 그러니 하나라도 없어질까 싶어 지킨 거였다. 긴급 격리가 결정됐다. 아침 9시엔 남양주시청 공무원이 오기로 돼 있었다.
“저 X이 뭔데, 어? 케어가 뭔데?”
현장에서의 마찰을 막겠다며 온 남양주 경찰들./사진=남형도 기자 |
굳게 닫힌 개농장 대문. 거기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남양주시청 공문이었다. 이리 쓰여 있었다.
‘현장 방문 결과, 동물보호법 제10조 2항 위반에 따른 동물 학대 행위가 있어 소유 동물에 대한 격리 조치를 통보한다.’
개농장이자 도살장. 현장이 어땠을진 짐작이 갔다. 복날에 개들이 살아 나온다니. 그러나 현장은 그리 수월할 것 같지 않았다. 개농장 쪽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XXX, 나오라 그래. 저 X이 뭔데, 케어가 뭔데, 어?”
개농장 관계자들은 잔뜩 격앙돼 있었다. 죽이고 팔아야 하는 이와 살리려는 이의 대치. 이를 다 봐야 하는 중간에 섰다.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기운이 감돌았다. 이따금 바람이 불었다. 비에 젖어 축축한 바지가 을씨년스러웠다.
“기자 분도 이 이상 넘어가지 마세요. 반발이 심해서”
아예 폴리스라인을 친 남양주 경찰들./사진=남형도 기자 |
남양주시청 공무원이 도착했다. 이제 개들을 꺼낼 차례였다.
남양주 경찰은 수십 명이 왔다. 왜 이리 많나 싶을 정도였다. 개농장 주인이 경찰 정보과장에게 요구했다.
“첫째는 폴리스라인 설치하고, 둘째는 동물 단체가 고함 지르면 집시법 위반으로 저희가 신고할 거고, 거기서 제재 못 하면 직무 유기, 우리 생존권 방해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걸 염두에 두시고….”
그에 따라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쳤다. 그런데 방향이 케어 활동가들 쪽이었다. 방패를 세우고 벽처럼 두른 탓에, 개들이 제대로 나오는지 보려는, 활동가들 시야까지 다 가렸다. 우산까지 많아 더 그랬다. 김영환 케어 대표가 불안해하며 소리쳤다.
현장에서 고성, 욕설을 자주하던 개농장 관계자들./사진=남형도 기자 |
“시야를 확보해주세요! 안 그러면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불법 개농장. 동물 학대로 긴급 격리. 법에 따라 그걸 집행하는 자리. 그런데도 경찰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눈치를 보고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분위기였다. 열악한 환경을 보고 기록해야 했으나, 개농장 안엔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아니, 조금만 가까이 가도 이랬다.
“기자 분들도 이 이상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저쪽(개농장쪽) 반발이 심해서….”
김 대표가 씁쓸해하며 내게 말했다. “폴리스라인을 칠 거면 개농장쪽에도 쳐야 하잖아요. 저쪽이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중립적으로 봐도 그렇지 않나요.”
“장사 안 되냐, 이 X아. 대목인데 대목을 못 봐?”
동물권단체 케어와 개농장 관계자들 사이를 가로막은 경찰. 긴장감이 돌았다./사진=남형도 기자 |
비가 미친 듯이 왔다 줄었다가를 반복했다. 무려 4시간이 흐르도록 개들이 나오지 못했다. 답답해 노태채 남양주시청 농축산과장에게 다가가 묻자 “민주적으로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그에게 묻자마자 경찰이 인터뷰를 막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성이 오갔다.
“야, 이 X같은 X아. 떠들지마 XX아.”(개농장 관계자)
“지금 나한테 욕했죠? 아주머니. 나와서 욕해요!”(케어 활동가)
개농장 주인과 관계자들은 “지금 개고기를 먹고 있다”며 도발했다. 케어 활동가들은 남양주시청에 빨리 격리할 것을 촉구했다. 기빨리는 힘든 과정이고 싸움이었다. 통상 ‘개농장서 개들을 구조했다’는 짧은 결과만 봤으나, 그에 숨은 과정이 이리 길고 고될줄 몰랐다.
오후 1시가 가까워서야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이제 나오려는 듯했다. 개들을 실을 남양주시청 차량이 개농장 입구에 닿았다. 개농장 관계자들은 이 모든 과정을 우산으로, 커다란 천으로 꽁꽁 가렸다. 케어가 방송하는 걸 의식하는 듯했다. 개농장 주인이 말했다.
“장사 안 되냐? 야, 장사 안 되지? 오늘 대목인데 대목을 못 봐? 너 돈 못 버니까 약오르지?”
“조금 전 누렁이 한 마리가, 꼬릴 흔들며 나왔습니다”
초복날 살아서 나온다. 개농장 개들이. 촬영을 못하겠다며 가리는 개농장 주인과 관계자들./사진=남형도 기자 |
케어 활동가들은 높은 곳에서 감시하려 했다. 개농장 개들이 차에 타기 시작했다. 활동가가 말했다.
“오늘은 초복입니다. 조금 전 누렁이 한 마리가 꼬릴 흔들면서 나왔습니다. 도살당하지 않고 살아서 나오는, 감동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도 좋아할 일을 왜 가리고 막아서는 겁니까. 죽이는 걸 부끄러워해야지, 살아서 나오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보이진 않았으나 짖는 소리로 짐작했다. 살아서 나온 게 맞았다. 과거에 봤던, 다른 개농장 도살 영상이 떠올랐다. 당시 끌려온 건 백구였다. 바닥에 버티며 애썼으나 소용없었다. 쇠꼬챙이에 전류가 흐르고, 백구가 지져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그대로 굳었다. 다행히 그걸 막은 거였다. 쉬운 게 아녔다.
케어 활동가들이 남양주시청에 다시 성토했다. “이 작은 차로 언제까지 옮길 겁니까!” 그러자 개농장 관계자가 이리 응수했다. “개 팔아서 외제차 사야지.”
“5마리씩 넣어, 한 마리 더”
살아서 나온 개농장 개들. 두려워하면서도 시선은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염려 없이 보호소로 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남양주시청 공무원이 탄, 정확히는 개들이 탄 차량을 따라갔다. 장맛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퍼부었다. 온몸이 젖어, 차 에어컨을 틀었다가 추워서 꺼야 했다.
도착한 남양주시 동물보호센터는 개농장과 가까웠다.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가 센터 안에 들어갔다. 케어 활동가들이 들어가 확인하려 했으나, 왜인지 관계자들이 막았다. 가까스로 안에 들어왔다.
개농장 관계자들이 꽁꽁 가려둔 천을 치웠다. 안엔 개들이 있었다. 안도했다. 잔뜩 겁먹은 눈으로 구석에 쪼그려 있었다.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들은 그제야 개들이 들어갈 장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땅을 밟는다. 뜬장에서 평생 살다, 죽을 때에만 나왔을 개들이./사진=남형도 기자 |
다 만든 뒤에 개들을 빼기 시작했다. 두려워하며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근육질 남성이 오더니, 우악스럽게 개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앞발 하나만 쥐고 있는 힘껏 빼고, 올무까지 목에 걸어 거칠게 뺐다.
개들을 넣을 장마저 넉넉지 않았다. 좁다란 장 하나에 대형견을 4마리씩 욱여넣었다. ‘너무 좁은데’, ‘동물보호센터가 왜 이런 식으로 하나’ 싶을 때, 관계자가 이리 말했다.
남양주 동물보호센터에서, 좁은 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개들./사진=남형도 기자 |
“5마리씩 넣어, 한 마리 더.”
그리고 그걸 실행했고, 개들은 옴짝달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겨졌다.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나며 개들이 머무는 장이 늘었다고.
처음엔 두려움만 가득했는데, 조금 지나니 금세 꼬리도 흔들고 호기심을 보였다. 좋은 거였다, 살아 있단 건./사진=남형도 기자 |
그럼에도 좋았다. 살아 있었기에. 다가와 호기심에 냄새를 맡으려는 녀석이 있었다. 숨이 뜨거웠다. 꼬리가 살랑거렸다.
“여러분, 포기했답니다”
격리기간 동안 개들을 혹여나 또 빼돌릴까 싶어, 현장을 지키는 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들과 시민들. 무더위, 축축한 습기, 졸음, 고단함을 지운 이들. 어떤 생(生)도 존중하는 마음이 높고도 애달프다./사진=동물권단체 케어 |
불과 5일. 긴급 격리 기간이 그랬다. 남양주시청 공무원에게 추후 계획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 맘에 걸렸다. 주인이 반환 요청을 하면 돌려줘야 한다고. 누더기 같은 동물보호법이 그리 허술했다.
케어 활동가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 그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개들이 다시 개농장으로 돌아갈 수 있단 걸. 졸음을 참으며 숱한 밤을 낮처럼 지키는 날들이 이어졌다. 꺼내는 과정도 힘들었고, 지키는 것 역시 그랬다.
반드시 살리겠단 노력. 그리 개 소유주들에게 ‘포기 각서’를 받아냈다. 동물보호센터 앞을 지키던 케어 활동가가 외쳤다.
몸을 포개고 또 포개며 살았을, 고단했을, 개농장 개들이 고단한 잠에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여러분, 포기했답니다!”
더는 죽을까봐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다는, 현장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장장 10일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다 견딘, 케어 활동가는 이리 말했다.
“현장은 전쟁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장난 아니죠. 알고 따져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구조한 개 90마리는 미국 동물보호단체 ‘도브 프로젝트’에서 기증받기로 했다. 한국에서 임시 공간을 찾은 뒤 빼낼 계획이다. 그 말을 듣고 이젠 살겠구나 싶어 가슴을 쓸었다.
나란히 온기를 나누며. 이젠 죽기 위해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고./사진=남형도 기자 |
그 순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나란히 몸을 포개 의지하던, 살아난 개들의 모습이.
개농장 구조 과정에서 사라졌다가 발견된 보더콜리./사진=동물권단체 케어 |
에필로그(epilogue).
남양주 개농장서 살던 까맣고 하얀 보더콜리가 있었다. 구조하는 과정에서 탈출해 사라졌었다.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했다.
며칠 뒤에야 그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발견된 곳이 맘 아팠다.
보더콜리는 다시 개농장에 돌아와 있었다.
죽이려 했던 곳도 자기 집이라고…거기에 다시 온 거였다.
죽을뻔했던 남양주 개농장의 보더콜리. 이젠 괜찮다. 좋은 가족 꼭 만나기를. 힘들었던 기억은 아스라히 희미해지기를./사진=동물권단체 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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