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무 오르막길이라, 택시 타고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9일 오후, 신림역에서 한 20대 청년에게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위치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이 교회는 유기된 아기들을 보호하는 민간 시설이다. 이른바 ‘베이비박스’가 있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
신림동 난곡로 대로변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남짓 올라가면, 교회에 도착한다. 이렇다 보니 교회 측에서는 아기를 품고 올라올 산모를 위해, 택시비를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혼모가 몰래 나타나, 아기를 두고 떠난다고 한다. 미혼모들은 그렇게 오르막길을 올라오며 자신을 향한 자책은 물론, 앞으로 살면서 받아야 할 비난을 떠올릴 수 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떠나는 행위에 대한 의견 대립은 첨예하다. 신림역에서 만난 최민정(24) 씨는 “미혼모들 사연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애를 죽이려고 맡기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떻게든 살리려고 베이비박스를 찾는 것 아닌가, 그런데 유기로 처벌을 더 강화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더 안으로 숨어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관련 법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이라는 견해다. 박형태(36) 씨는 “아기를 유기하는 것 자체가 일단 문제다”면서 “관련 법에 따라 지원을 받거나,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영아 살해·유기가 큰 논란이 일자 관련 처벌이 강화됐다. 지난 1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영아 살해·유기범도 일반 살인·유기범처럼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953년 형법이 만들어진 지 70년 만이다.
영아 유기 역시 기존 영아유기죄의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을 삭제했다. 일반 유기죄의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존속유기죄의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관계자들은 처벌 강화에 앞서, 미혼모를 위한 합리적이며 따뜻한 법 개정을 당부했다. 이날 미혼모 상담실에서 만난 황민숙 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보호상담지원센터장은 “(법 개정으로 인한 처벌 강화로) 미혼모들이 베이비박스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최소한의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출생신고를 강제한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오히려 엄마들이 출생신고를 못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상담실에 있는 샤워실을 공개했다. 황 센터장은 “아기를 두고 갈 때, 이곳 상담실로 엄마들을 이끈다. 그 자리에서 아기의 미래를 얘기하고, 어떤 사연 등이 있는지 가만히 들어준다. 많은 미혼모가 울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하혈이 발생하면, 바로 저 샤워실에서 닦아낸다. 처벌 강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 설명해 드린다”고 말했다.
영아 유기죄 처벌 강화 등 법 개정도 좋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미혼모들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을 합리적으로 살핀 뒤, 그에 맞춰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 센터장이 지적한 출생통보제는 입양특례법이다. 지난 2012년 8월 시행됐다. 이 법에 따라 출생신고가 된 아이만 입양을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출생신고가 된 아기만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된 이후, 미혼모 등 출산 사실 자체를 숨기고 입양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입양 문턱이 높아져 오히려 영아 유기나 불법 거래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는 경찰에 신고된 후 담당 구청을 거쳐 아동복지센터로, 이후 가정 위탁이나 입양, 아동양육시설 등으로 보내지게 된다. 그 기간 센터는 아기를 맡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아기를 다시 찾아가는 부모도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통계를 분석한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뒀다가 다시 찾아가는 부모의 비율이 전체의 30%에 달한다고 한다.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부 미혼모들은 베이비박스를 ‘임시보호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30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건강심사보험평가원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면, 지자체가 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시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 등록을 하는 제도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국가가 직권으로 신고할 수 있다.
출생통보제 관련 관련 황 센터장은 한 미혼모의 말을 대신 전했다. 미혼모 A 씨는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엄마들이 병원 방문을 꺼릴 수 있고, 본인도 그런 상황에 있으면, 병원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황 센터장은 “베이비박스를 찾는 엄마들은 원치 않는 임신 등 불가피한 출산이 대부분이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강제로 출생 사실을 등록하면, 이를 원하지 않는 미혼모들은 과연 어디로 가겠는가,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자 임산부가 익명을 보장받은 채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보호출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 센터장은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사각지대에 놓인 엄마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국회에서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익명출산제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의료진 조력을 받아 익명으로 출산하고,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친생모의 정보를 국가가 밀봉상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아동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2014년부터 합법적으로 비밀출산을 보장하는 독일은, 출산 시 산모와 아이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뢰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2017년 독일 정부는 3년간의 신뢰출산제 성과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1990년대 영아 살해에 대한 감경 규정을 일찌감치 삭제하기도 했다. 영아 유기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 센터장은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을 당부했다. 그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새로운 대안이 나와도 예방이 안 될 것 같다”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박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더 고통받고 슬픔에 빠진 미혼 부모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회에서 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