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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무료 목욕탕…”없어지면 안 돼요” 쌈짓돈 내고 청소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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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에는 '비타민 목욕탕'이 있다. 2016년 11월 문을 연 후 줄곧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비타민 목욕탕은 공가를 개조해 만들었다. 한 달 평균 100여명의 주민이 이곳을 찾는다./사진=최지은 기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에는 ‘비타민 목욕탕’이 있다. 2016년 11월 문을 연 후 줄곧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비타민 목욕탕은 공가를 개조해 만들었다. 한 달 평균 100여명의 주민이 이곳을 찾는다./사진=최지은 기자

“목욕하고 나가는 그 기분은 아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좋아! 짱이야!”

김연자씨(가명·74)는 목욕을 마치고 젖은 머리를 털다가 기자에게 양쪽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20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비타민 목욕탕’ 안이었다. 목욕탕이 생긴 후 어떤 게 가장 좋냐는 질문에 “몸이 개운하고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며 웃었다.

백사마을에는 총 120가구가 있는데 대부분 노인이 홀로 살고 있다. 욕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제대로 씻기가 힘들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 600여 명이 힘을 모았다. 2016년 11월 무료 목욕탕이 탄생했다. 지난 6년여간 비타민 목욕탕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곳으로 자리잡았다.

5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와 3명이 들어가면 가득 차는 욕탕이 전부인 협소한 공간이지만 한달 평균 100명이 이곳을 찾는다. 한정된 공간을 많은 이들이 사용하다 보니 회원제로 출석부를 만들어 이용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관리한다.

비타민 목욕탕이 없을 때 백사마을 주민들은 버스나 택시를 타고 대중목욕탕에 가야 했다. 주민 중에는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다. 김씨는 “대중목욕탕에 가기 위해 혼자 버스 타고 나가면 몸도 힘들고 차비와 목욕료까지 돈도 많이 들었다”며 “(비타민 목욕탕은) 집과 가깝고 매주 목욕을 할 수 있으니 삶의 질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비타민 목욕탕 내부. 5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고 뒷쪽으로는 3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욕탕이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서울 노원구 중계동 비타민 목욕탕 내부. 5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고 뒷쪽으로는 3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욕탕이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매주 수요일은 남탕으로, 목요일은 여탕으로 주 2회 운영된다. 당초 주 4회 문을 열었지만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은 뒤 주 2회로 변경됐다. 일부 주민들이 외부로 이사를 가며 이용객이 준 탓도 있지만 치솟은 운영비가 문제였다.

비타민 목욕탕은 서울연탄은행의 지원과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최근 난방비, 가스비 등이 곱절로 오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목욕료의 소비자 물가 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4.2% 올랐다. 37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에너지 비용 감면 혜택에서도 제외돼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비타민 목욕탕은 무료 운영을 고수하고 있다. 백사마을 주민들의 ‘씻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노인이 되면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몸을 청결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들의 집은 온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샤워를 하려면 가스나 난로로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 써야 한다. 날이 더운 여름에는 찬물로도 씻을 수 있지만 추운 겨울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또 씻을 공간도 따로 없어 주방이나 세탁기 옆 한편에서 물을 조금씩 끼얹어야 한다./사진=최지은 기자
주민들의 집은 온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샤워를 하려면 가스나 난로로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 써야 한다. 날이 더운 여름에는 찬물로도 씻을 수 있지만 추운 겨울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또 씻을 공간도 따로 없어 주방이나 세탁기 옆 한편에서 물을 조금씩 끼얹어야 한다./사진=최지은 기자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집은 판자를 덧대 만든 곳이 대부분이다. 온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집에서 샤워하려면 가스나 난로로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 사용해야 한다. 날이 더운 여름에는 찬물로도 씻을 수 있지만 추운 겨울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또 씻을 공간도 따로 없어 주방이나 세탁기 옆 한편에서 물을 조금씩 끼얹어야 한다.

장순분씨(86)는 이날 오전 9시30분쯤 인근에 사는 요양보호사와 함께 비타민 목욕탕을 찾았다. 장씨는 비타민 목욕탕이 문을 연 이래 매주 이곳을 찾는 단골이다. 비나 눈이 오는 날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목욕을 할 수 있는 목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장씨 요양보호사는 “수요일은 남탕으로 운영되는데 어제부터 가자고 하시더라”며 “항상 목욕탕 운영 날만 기다리신다”고 밝혔다.

1960년대, 백사마을에 이주민들이 처음 모이기 시작할 때 이곳에 자리 잡은 장씨는 어느덧 80대 노인이 됐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빼곡히 동전 파스를 붙일 정도로 아픈 곳이 많지만 비타민 목욕탕에 들러 따뜻한 탕에서 몸을 녹이는 게 삶의 기쁨이다. 장씨는 “비타민 목욕탕이 생겨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백사마을 주민들은 목욕탕 이용 후 몇천원씩 쌈짓돈을 꺼내 단지 속에 넣었다. 코로나19로 장기간 휴장하며 후원금이 줄고 공공요금이 인상되면서 조금이라도 운영에 도움이 되고 싶어 자발적으로 만든 모금함이다./사진=최지은 기자
백사마을 주민들은 목욕탕 이용 후 몇천원씩 쌈짓돈을 꺼내 단지 속에 넣었다. 코로나19로 장기간 휴장하며 후원금이 줄고 공공요금이 인상되면서 조금이라도 운영에 도움이 되고 싶어 자발적으로 만든 모금함이다./사진=최지은 기자

백사마을 주민들은 목욕탕 이용 후 몇천원씩 쌈짓돈을 꺼내 단지 속에 넣었다. 점점 후원금이 줄고 공공요금이 인상되면서 조금이라도 운영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금함이다.

목욕이 끝난 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목욕탕 청소를 하고 간다. 김연자씨와 김금복씨(가명·80)는 이날도 목욕을 마친 후 목욕탕을 말끔히 청소했다. 서울연탄은행 비타민 목욕탕 담당 사회복지사는 “저희가 항상 말리는 데도 ‘우리가 썼으니 우리가 해야지’라며 어르신들이 직접 정리해 주신다”고 말했다.

비타민 목욕탕은 백사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백사마을에는 노인정이 따로 없어 비타민 목욕탕이나 작은 교회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비타민 목욕탕 바닥은 난방이 돼 추운 겨울이면 삼삼오오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쉬고 간다. 자리가 없어 목욕탕 문밖에 서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기자가 비타민 목욕탕에 머문 1시간30분 동안도 목욕탕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언니 우리 집에 밥해놨는데 좀 줄까요?” “어머니 세금 내야 하는데 고지서 받으셨어요?”하며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말들이 오갔다.

최근 폭우가 이어지며 산사태 위험으로 다른 곳으로 대피한 이웃 주민에 대한 걱정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금복씨는 “백사마을 주민들에게 비타민 목욕탕은 이름 그대로 비타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위현진 서울연탄은행 주임은 “공공요금 인상 등 사회적인 현상에 따라 부담이 더해질 때도 있는데 어르신들에게 목욕은 꼭 필요한 기본권이다 보니 운영을 멈출 수는 없다”며 “많은 분이 비타민 목욕탕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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