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축대붕괴 이재민 “작년에도 집 무너질 것 같았다”
상도동·신림동 주민들, 모래주머니 쌓고도 ‘잠 못드는 밤’
(서울=연합뉴스) 송정은 최윤선 기자 = “‘쿵’ 하고 자동차가 들이받는 듯 큰 소리가 났어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 근처에 있는 축대가 무너져 대피한 주민 50대 A씨는 “집이 걱정돼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계속 뉴스만 봤다”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오전 만난 A씨는 “집에 두고 온 약이 있다”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구청이 임시대피소로 마련한 남가좌동의 한 모텔에서 밤을 지샜다고 했다.
또다른 이재민 김모(26)씨는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서 보니 무언가 부서졌다며 대피하라고 했다.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경찰이 대피소로 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체육관에 모여서 잘 거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전날 오후 6시35분께 거센 장맛비에 축대 벽면 3.5m가 떨어져나가 인근 20가구 주민 46명이 급하게 집을 빠져나와야 했다.
붕괴사고 현장에서는 밤새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이날 오전 8시께 복구작업이 시작됐다.
축대가 무너진 장면을 목격했다는 연희동 주민 한남선(75)씨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고 돌과 바위가 골목으로 흘러 내려왔다. 신고하려는데 앰뷸런스가 왔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주민들은 일대 재개발 문제로 낡은 건물과 시설물들이 방치돼 불안한 상태였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작년에도 비가 많이 와 헌 집들이 허물어질 것 같았다”며 “구청에 재개발을 빨리 해달라고 했지만 계속 지연됐다. 우리 집은 재개발 구역도 아닌데 피해를 봤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도 “재개발 한다고 집들을 부숴놓은 지 몇 년 됐다”며 “건물이 부식해 비가 올 때마다 벽에서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인근에서 전자기기 매장을 운영하는 정두영(60)씨는 “동네가 오래돼 기울어진 건물도 있다. 그동안 비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집들이 비다 보니 점점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 저지대 주민들도 지난해 물난리의 악몽이 되살아날까 봐 밤잠을 설쳤다. 주민들은 빗줄기가 잦아든 이날 오전까지도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박모(71)씨는 배수펌프를 설치하고 모래주머니로 현관을 막아뒀지만 불안한 마음에 최근 사흘 동안 편한 순간이 없었다고 했다. 박씨의 집에는 지난해에 이어 지난 11일에도 빗물이 들이쳤다.
박씨는 “작년에 집이 물에 잠겨 동사무소로 대피하던 중 아내가 맨홀로 빨려 들어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며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주 내내 휴대전화로 날씨만 들여다보고 피해는 없는지 뉴스를 살피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도동 반지하에 사는 신모(55)씨는 “작년에도 저녁 늦게 침수 피해가 나 안심할 수 없었다. 뉴스를 틀어놓은 채로 밖에 한 번씩 나가 골목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관악구 상황도 비슷했다.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사는 양모(61)씨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해 걱정돼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밤을 새우다가 새벽 5시에야 잠이 들었지만 3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양씨는 “병원에 입원한 이웃이 반지하 집을 걱정해 그 집도 함께 확인하느라 어젯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는 구청 직원이 복도에 들이찬 빗물을 퍼내고 있었다. 이 직원은 “세입자가 집 안에 있는데 문을 열면 집 내부로 물이 들어갈까 봐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s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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